어제 슈퍼에 갔다오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한 여자가 올라탄다. 날 보고 멈칫하다가 한발을 들여놓는 그녀. 난 그녀를 안다. 우리집이 501호고 그녀 집은 503호. 대단한 미인은 아닐지라도 귀염성 있게 생겼다. 왜 하필 지금 만났을까.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머리조차 안빗은 내가 그녀에게 어떻게 보일지 한심하기만 했다.
출근을 할 때, 혹은 밤늦게 들어올 때, 그녀를 몇번 보기는 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녀와 가까이 서 보거나 엘리베이터를 타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사랑이 이루어지기도 하던데... 낡은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올라갔고, 그녀와 난 어색한 침묵을 견디고 있었다. 이런 침묵은 사람을 숨막히게 만든다.
"501호 사시죠?"
침묵이 싫은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는지, 먼저 말을 건낸 것은 그녀였다.
"아, 네... 그쪽은 503호죠?"
그녀가 낮게 "네" 하고 말했다. 다시 침묵. 피차 더 할 말도 없었다. 그녀와 난 단지 같은 층에 살고 있을 뿐이고, 우연히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을 뿐이니까.
"찡!"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15층까지 간 것처럼 긴 시간으로 느껴진다. 그녀가 먼저 내렸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숙인 채 그녀 뒤를 따라서 내렸다. 그녀는 열쇠로 문을 땄고, 난 그녀에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생각해보니 2년 가까이 애인 없이 지낸 것 같다. 가끔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편했던 시간이었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녀와 가진 우연한 만남에 왜 이토록 신경을 쓰는가? 그녀가 좋은가? 이 질문에 난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모른다'
난 다시금 묻는다. 니가 좋아한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 그녀가 너 따위를 좋아할 것 같아?
난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 그녀는 아무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서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헤어진 뒤 한참 동안 가슴이 뛰었던 것은, 내가 그만큼 외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름의 일상으로 분주하다면 그런 사소한 만남에 의미를 부여할 여유가 없었을 테니까. 하하, 하고 웃어넘기며 어젯밤 빌려온 만화책을 읽는다. 주말은, 어찌되었건 편하고 자유롭다.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