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우스님이 쓰신 테니스 페이퍼를 보고, 나도 거기에 관련된 글을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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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스포츠도 그랬지만, 남자 테니스에 비해 여자 테니스는 오랜 기간 홀대를 받아왔다. 파워 넘치는 남자 경기에 비하면 여자 경기는 박진감이 영 떨어졌으니까. 인기가 돈으로 연결되는 게 바로 프로, 그래서 여자 우승자의 상금은 남자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남녀의 상금이 같아진 것은 여자 경기의 인기가 올라간 최근 몇 년 사이다.


1. 70년대

전통적으로 여자 테니스는 파워보다는 우아함을 더 중시했었다. 스트로크의 강도가 아닌 절묘한 코스선택이 승부를 갈랐고, 서비스를 넣는 사람이 크게 유리할 게 없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파워테니스의 기치를 든 여성이 등장했으니 그녀의 이름은 바로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였다. 윔블던 9회 우승을 포함, 18회의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따낸 그녀는 여성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강한 스트로크를 갖추고 코트를 평정했다. 그 시절 그녀의 라이벌은 전통에 걸맞는 예쁜 테니스를 구사하던 크리스 에버트였다(그랜드슬램 18회 우승). 미국인의 연인이란 호칭을 들을 정도로 미녀였던 에버트는 체코 출신인 나브라틸로바와 숨막히는 접전을 펼쳤는데, 그 둘의 경기는 아마 ‘미녀와 야수’의 대결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을 거다. 에버트가 힘이 좋았던 나브라틸로바와 어떻게 대등한 경기를 펼쳤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힘이 좋았던 나브라틸로바는 “여자 경기도 5세트 경기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선수들은 “난 3세트도 힘들다” “너나 해라, 5세트!”라고 그녀를 공격했었다. 그녀가 레즈비언이었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그녀는 매우 남성에 가까운 여성이었다. 에버트가 은퇴한 뒤 나브라틸로바는 독주를 시작한다.


2. 80년대

사실은, 독주를 시작하는 줄 알았다는 게 올바른 표현이다. 그때 슈테피 그라프가 나타났으니까. 그라프는 87년 나브라틸로바와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두 개씩 나눠가졌는데, 그 덕택에 그해 말 세계 1위에 등극하게 된다. 2위로 밀려난 나브라틸로바는 “순위 매기는 게 불공정하다”며 불만을 터뜨렸지만, 그라프는 이듬해인 88년 4개의 그랜드슬램 대회를 모조리 휩쓰는-올림픽까지-활약을 펼치며 나브라틸로바를 머쓱하게 만든다.


377주 동안 세계 1위에 머물렀고, 통산 21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따낸 그라프의 특기는 강력한 포핸드 스트로크. 그 강도가 나브라틸로바보다 훨씬 더 셌으니 어느 여자가 그걸 받겠는가. 서비스의 속도 또한 일반 여자들의 그것을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가히 적수가 없었다. 가브리엘라 사바티니, 아란차 산체스 등 예쁜 테니스만 치던 애들은 그녀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 선수가 있었다. 유고 출신의 모니카 셀레스. 그녀는 강력한 백핸드로 그라프의 백핸드를 공략, 그녀를 무릎꿇게 했다. 그녀가 그라프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에게 칼로 찔리는 일만 없었다면 셀레스와 그라프의 대결이 관심을 모았을 테지만, 그 불행한 사건 이후 그라프는 다시금 세계 정상을 차지했고, 여자테니스의 인기는 점점 떨어졌다. 그건 그라프에 맞설 적수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그라프가 미녀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도 큰 이유였다.


그라프가 파워테니스를 구사했던 그시절에도 다른 여자들은 여전히 예쁜 테니스만 쳤다. 메리 조 페르난데스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서브도 상대가 받기 좋게 편안하게, 스트로크도 아주 얌전하게 구사했고, 미녀였다. 난 그녀가 어떻게 세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는지 지금도 신기하다. 뭐, 그 당시 그런 테니스가 대세였으니까 그랬겠지만. 아무튼 예쁜 테니스로는 그라프를 이길 수 없었다. 마르티나 힝기스가 잠깐 그녀를 위협하는 듯했지만 몇 년 그러다 곧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라프의 독주에 환멸을 느꼈다. 그때.


3. 대망의 2000년

윌리엄스 자매가 나타났다. 그녀들은 기존의 테니스 선수와 이런 점이 틀렸다.

첫째, 서비스 속도. 빠른 서브를 넣는 그라프도 170킬로대가 고작이지만, 윌리엄스 자매는 웬만한 남자선수에 맞먹는 190킬로대의 서비스를 넣다.

둘째, 그라프를 능가하는 엄청난 스트로크, 게다가 백핸드까지!

셋째, 체력과 탄력. 코트를 누비는 그녀들을 바라보면서 난 야생마를 떠올렸다. 마이크를 갖다대면 “히히힝!” 하고 울 것만 같은 그녀들을 이길 자가 누구란 말인가.


파워 테니스 하면 둘째가라할 린제이 데이븐포트도 오랜 유망주 세월을 접고 여왕 경쟁에 뛰어들었다. 예쁜 테니스의 명맥을 잇는 에넹과 클리스터스가 합류했고, 미모와 실력을 갖춘 사라포바가 나타났다(굳이 분류하자면 사라포바는 파워 테니스에 더 가깝다). 남자 경기가 거의 서비스로 판가름나던 데 식상한 팬들은 여자 경기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여자 테니스가 지긋지긋한 랠리의 연속인 데 반해, 이들의 경기는 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화끈한 것이었다. 랠리 10개를 넘기는 걸 보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닐 정도로. 그러니 매번 우승자가 바뀐다. 2년 전에는 벨기에의 에넹과 클리스터스가 우승을 나누어 가졌고, 작년 대회는 러시아 선수들이 그랜드슬램 대회를 휩쓸었다. 이번 윔블던에서는 비너스 윌리엄스가 우승을 했지만, 다음 대회에서 누가 우승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자 대회의 다음 우승자가 로저 페더러라고 예측이 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파워를 갖춘 여자 테니스의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4. 에필로그: 남자

남자 경기가 파워 넘치는 테니스로 바뀐 건 오래 전의 일이다. 70년대 비외른 보리, 80년대 빌란데르를 비롯한 스웨덴 선수들, 90년대 스페인 선수들과 안드레 아가시에 의해 예쁜 테니스의 명맥이 이어져 왔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강력한 서비스를 내세운 젊은 선수들에게 남자 코트가 점령되기 시작한다. 80년대 선수인 베커, 90년대의 샘프라스와 이바니세비치에 이어 2000년대 선수인 앤디 로딕과 마라트 사핀 등은 강력한 힘으로 각종 타이틀을 휩쓸었다. 이들의 경기는 대개 이렇다.


로딕이 서브를 한번 넣는다. 심판이 외친다. “피프틴 러브”

로딕이 두 번째 서브를 넣는다. 심판이 외친다. “서틴 러브”

이러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남자 경기는 점점 인기를 잃는다. 그러다.


로저 페더러가 등장했다. 경기 내내 냉정을 잃지 않으면서 칼날같은 스트로크로 상대를 제압하는 페더러는 파워 테니스에 식상한 팬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아가시를 보면서 감탄했던 것 이상으로 팬들은 페더러의 경기에 넋을 잃는다. 하지만 페더러가 아무리 화려한 테크니션이라 해도, 그가 잃었던 남자 테니스의 중흥을 가져올 것 같진 않다. 로딕과의 2005년 윔블던 경기에서 3-0의 완승을 이끌며 3연패를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페더러는 지나치게 강하다. 당분간 그를 꺾을 선수가 있긴 한걸까,라는 의문이 들며, 우승자가 정해진 대회에 관심을 가질 팬들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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