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저녁을 모두 김치찌개로 먹었습니다. 아침에 먹을 땐 아니었는데 저녁에 또 김치찌개를 먹자니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김치찌개는 제가 처음 만들어본 요리였습니다. 계란후라이나 라면을 제 손으로 만든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그런 걸 요리라고 부르지는 않지요. 최소한 20분 이상 걸려야 요리했다고 자랑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만든 첫 요리가 바로 김치찌개였습니다.
부산이 고향인 저는 직장 때문에 서울로 올라와 방 한칸을 얻어 살았습니다. 그러다 괜찮아 보이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을 가는 동안 비로소 그녀가 제 타입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격차이의 크기만큼 우리는 싸움을 했고, 싸울 때마다 정은 점점 떨어져 갔습니다. 결혼 6개월 때 벌어진 추석 대혈전을 끝으로 전 그녀와 부부로서의 감정을 정리했습니다. 침대 대신 소파에서 자는 나날이 이어졌고, 전 결국 짐을 싸서 집을 나왔습니다. 어차피 처가에서 사준 집인지라 제 몫을 주장할 수가 없었던 거죠.
밤은 깊어가는데 어디서 자야 할지 막막하던 그날을 전 잊지 못합니다. 자유를 찾았다는 기쁨보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제 마음을 지배했습니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허름한 여관에서 이틀을 보낸 뒤, 저는 결국 원룸을 얻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첫날 저녁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만만해 보이는 김치찌개를 끓일 생각을 했습니다. 아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녀가 불러주는대로 노트에 깨알같이 적었습니다.
"일단 기름을 넣고 돼지고기를 구워. 고추장을 넣고 물을 부은 뒤...."
마늘을 사러 슈퍼에 가야했고, 돼지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김치찌개, 한숟갈을 떠서 입에 넣었을 때 전 깜짝 놀랐습니다. 찌개가 너무도 맛있었기 때문에요. 첫 작품에서 이렇게 훌륭한 찌개가 나오다니, 전 그간 불신해왔던 저 자신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 뒤에도 몇번 찌개를 끓였지만, 처음만한 맛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갈라선 걸 알게 된 어머님이 저희 집을 찾아오시는 바람에, 더이상 요리를 할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어머님이 이것저것 반찬을 해서 보내주시고, 모자라는 건 시장에서 사서 차려먹습니다.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이 집에서 먹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만.
그 뒤 전 한번도 김치찌개를 끓이지 않았습니다. 어제 저녁 식당 아줌마가 끓여준 찌개를 먹고 있자니 제가 처음으로 김치찌개를 만들던 생각이 나서,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처음 만든 찌개보다 더 맛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