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냥이로소이다 - 웬만해선 중심을 잃지 않는 고양이의 바깥세상 참견기
고양이 만세 지음, 신소윤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같은 해 봄 나는 내가 태어난 집을 떠나 다른 집으로 입양됐다. 지금 나의 반려인이 된 그들도 그때는 젊은 부부였다. 고양이 여러 마리가 뛰어다녔던 이전 집과 다르게 늘 고요했다. 이따금 귀에 거슬리는 게 있다면 고양이와 다르게 시끄럽고 낯선 개의 발걸음 소리. 그렇게 나는 지금의 반려인들과 검은 개 한 마리와 가족을 이루게 됐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시끄럽지만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얄미운 사람 아기 한 명도 우리 곁에 엉덩이를 밀어 넣으며 일원이 됏다. - '프롤로그' 중에서

 

 

고양이의 바깥세상 참견기

 

책의 저자 만세는 고양이다. <한겨레> 애니멀피플팀 명예 동물기자로 육아냥이자 때때로 마감냥이기도 하다. 천방지축 사람 아기를 부모보다 오래, 하루 종일 붙어 보살피며 육아 노하우를 쌓고 있고, 게으른 반려인을 대신해 때때로 청탁 원고도 쓴다. <한겨레21>에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절찬리 연재했고, 현재 <한겨레>에서 <육아냥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옮긴이 신소윤만세의 반려인이자 고양이 집사로 <한겨레> 기자이다. 2011년, 고양이 만세를 기르면서 직업이 하나둘 늘었다. 깊은 밤, 책상에 불을 켜고 고양이 만세의 이야기를 옮긴다.

 

사람들, 즉 냥이의 반려인들 눈에 비친 고양이의 삶은 세상에 팔자 좋아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인 만세의 하루는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반려인과 함께 기사 마감을 하고, 반려인 부부 대신 아기 지우를 돌보며, 마치 백수처럼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고있는 개(제리)를 형님으로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느긋하게 살려고 해도 냥이 만세의 현 거주 환경이 이를 전혀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반려인 부부와 귀찮은 아기, 이도 모자라 늘 시끄러운 개 형님까지 있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매일 외출했다가 귀가하는 것을 반복하는 반려인 부부는 택배 상자를 무척 사랑해 집 안을 어지르고 치우길 거듭한다. 반려견 제리 형은 식탐이 많고 반려인의 관심을 받고자 늘 노력한다.

 

처음 냥이가 이 집에 왔을 때 덩치가 큰 반려견 제리 형보다 몸집이 좀 더 크게 보이면 만만하게 보지 않을 것 같아 만세 짓을 자주 하다보니 이를 목격한 반려인 부부는 자연스레 '만세'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던 것이다. 냥이 만세는 처음엔 그들이 낯설었지만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사랑을 쏟기에 이내 마음의 문을 열었으며, 또 제리 형은 반려인들이 없는 시간에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는 존재이고, 귀찮긴 해도 늘 좋다고 고백하며 안기는 사람 아기임을 알기에 이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식빵 굽기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고양이는 비린내가 나는 생선을 무척 좋아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냥이 만세는어릴 적부터 고기만 먹고 자란 탓에 생선을 매우 싫어한다. 우리 인간이야 성장하면서 이것저것 새로운 맛에도 도전해보지만 고양이는 일반적으로 한번 길들여진 맛에만 반응한다고 한다. 그래서 냥이는 한 살 무렵이면 입 맛이 완성된다. 

 

고양이들은 명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식빵을 굽는다. 놀라지 마시라. 이 식빵은 우리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그런 식빵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고양이를 관찰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잘 아는 일일 것이다. 일단 바닥에 배를 깐 다음, 앞발은 앞으로 끌어당기고 뒷발은 배와 허리를 받친다. 이 모양을 위에서 보면 잘 구워진 식빵처럼 반듯해 그렇게 불린다. 식빵 굽기란 결국 '멍 때리기' 또는 '명상'인 셈이다.

 

식빵 굽기라는 취미 외에 냥이는 '숨기'도 즐기는 편이다. 기분이 무료하면 집안의 커튼과 가구 사이, 또는 상자 안에 꼭꼭 숨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냥이는 외출을 싫어한다고 이해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 냥이는 여행을 좋아한다. 자신의 분신인 털을 날려 보내거나 반려인들의 옷에 묻혀서 세상을 구경한다.

 

 

 

육아냥은 기다림에 능숙하다

 

고양이는 자기중심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기를 돌보는 육아냥들은 기다림에 능숙한 편이다. 마치 사이렌을 켠 것처럼 아기가 울어댈 때면 침대 발치에서 가만히 기다렸다가 울음을 그치면 아기 곁으로 조용히 다가가 슬쩍 얼굴을 비빈다. 심지어 아기가 무지막지하게 자신의 몸을 치댈지라도 육아냥은 이를 참을 수 있다.

 

언제나처럼 거실에 배를 깔고 앉아서 멍때리고 있는데, 외출을 하고 돌아온 아이가 후다닥 달려와서는 육아냥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평소 같으면 귀찮고 무거워서 힘을 다해 이를 뿌리치고 도망갔을 테지만 이날 만큼은 왠지 기다려줘야 할 것 같았다. 장난처럼 끌어안았던 아이는 자기 얼굴을 한참 동안 냥이의 등에 가만히 대고 있었다.

 

 

 

 

인간은 모든 것에 군림한다고 착각한다

 

인간은 모든 것에 군림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착각일 뿐이다. 사실상 냥이는 그 위에 캣 타워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냥이들은 이렇게 느낀다. '인간들은 시간을 쪼개 쓰며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복잡한 일은 더 복잡하게 만들며 살고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은 고양이 만세의 애정 가득한 시선을 통해 동물과 인간의 이야기와 그들의 속마음을 들려주면서, 인간과 동물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특히,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