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경제학 -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생활밀착형 경제학 레시피
유성운.김주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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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한 장의 지도에서 시작됐습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위 '걸그룹 세력도'라는 지도입니다. (중략) 솔직히 소녀시대의 팬으로서 생각보다 소녀시대의 영토가 작다는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결국 지도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빅데이터를 분석한 통계를 바탕으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지도를 말입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생활밀착형 경제 기초상식

 

책의 저자 유성운은 현재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다. 어린 시절 인디아나 존스를 꿈꿨으며,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입사한 언론사에서 10년 넘게 버티고 있다. 중앙일보에서 현재 정치부 기자로 국회에 출입하고 있는데, 이 책을 계기로 머지않아 다른 부서로 보내질 것 같다. 공저자 김주영은 다음소프트 데이터 엔지니어로 대학을 졸업한 후 우연히 입사한 이 회사에서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달하는 일을 해왔다.

 

흔히 십이십대가 아닌 아저씨 팬을 걸그룹은 '삼촌팬'이라고 부른다. 소위 걸그룹 덕후인 두 저자는 2007년 소위 2세대 걸그룹의 시초라 불리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등장한 뒤 마음 한구석에 궁금증으로 남아 있던 의문을 각종 사회경제학적 이론의 틀을 빌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생활밀착형 경제원리 중 반드시 알아야 31개의 사회경제법칙을 풀어나간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걸그룹 멤버수가 점점 증가하는 이유는 링겔만 효과 때문이며, 걸그룹이 시청률 3%의 가요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버핏 효과 때문이다. 걸그룹에도 8020의 파레토 법칙이 적용되고, 레임덕이 있으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프로듀스101'의 'PICK ME' 노랫말에는 지프의 법칙이 적용된다.

 

걸그룹 세력도는 단순히 인기의 척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경제 이론과 고도의 심리전이 담겨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한 기본지식이 전무한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복잡한 사회경제문제를 명쾌하게 풀어낸다. 즉 총 31 꼭지의 이야기들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경제 이론, 법칙, 원칙, 용어, 그리고 효과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선점효과

 

유명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청담동 주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첫째로 '캐스팅'이다. 과거 강남역이나 가로수길 등에서 소위 '얼짱'을 포함한 유망주들을 픽업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영화배우 정우성, 이정재, 전지현 등이 그런 사례이다. 둘째로 청담동에 엠넷이 있어서다. 엠넷은 가요계에서 가장 큰 파워를 지녓기에 자연스레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여기로 모여 들었다. 셋째로, 편리한 협업 때문이다. 작곡가, 프로듀서 등이 강남에 거주했고, 스튜디오를 위시한 각종 시설이 주로 신사동 일대에 분포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청담동 지역으로 속속 분화되고 있는 중이다.

 

수확체증의 법칙이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스탠퍼드대학교 브라이언 아서 교수가 주창한 이론인데, 이는 도입 초반 시장에서 차지한 작은 우위가 결국 뒤집기 어려운 결과로 자리잡는다는 걸 보여준다. 키보드를 살펴보자. 현재 자판의 배열방식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악명이 높다. 자모음 배치가 거의 연결되지 않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엉터리 배열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시 타이피스트가 자판을 빨리 치면 엉퀴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래서 1873년 공학자 크리스토퍼 숄스는 모음(a,e,i,o,u)을 멀리 떨어뜨려 놓아 빠른 타이핑시 엉키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 1932년, 오거스트 드보락이 모음 등을 가운데에 집중적으로 배열한 드보락 키보드를 출시했다. 이 키보드로 타이핑 속도가 혁신적으로 개선됐지만 현재까지 살아남은 키보드는 오히려 종전의 악명높은 키보드(쿼티)이다.

 

왜 그럴까? 타이피스트들은 맨 처음 출시된 쿼티를 줄곳 사용해 왔기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를 수용한 반면 새로 출시된 드보락 키보드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매우 인색했던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비디오 녹화 재생도 이와 유사하다. VHS 방식과 베타 방식이 공용으로 사용되었고, 심지어 베타 방식이 기술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받았는데도 시장에서의 최종 승리자는 VHS였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좀 더 먼저 출시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경제학에선 '선점효과'라고 부른다.

 

 

걸그룹도 상위 20%가 지배한다

 

MBC TV는 최근 몇 년간 설과 추석 연휴 때의 특집 방송으로 <아육대>를 준비, 방영해왔다. 아육대란 아이돌 육상대회으 약칭이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걸그룹이 정말 많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소녀시대 같은 최고 인기 그룹은 불참하지만 신인 걸그룹들은 대거 등장해 얼굴을 알린다. 이렇게 많은 걸그룹이 마르지 않고 출현하는 것은 아마도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 걸그룹의 예를 살펴보자. 걸스데이의 소속사는 드림티엔터테인먼트다. 이 회사의 경영고싱 자료에 따르면 2013년도의 매출액은 31억 9,900만 원, 순이익은 8억 7,600만원이다. 그런데, <진짜 사나이>에 멤버인 혜리가 출연해서 대박을 친 2014년도에는 거의 2배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매출 60억 1,700만 원, 순이익 19억 800만 원).

 

한편, 20:80의 법칙이라 불리는 '파레토 법칙'이란 경제용어가 있는데, 이는 상위 20%가 전체 부富의 80%를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법칙은 걸그룹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참고로 이 그래프를 보면 이해하기에 쉽다. 그래프는 각 그룹별 멜론 차트 진입 횟수와 차트의 누적 점유율을 보여준다. 1위인 다비치는 577회, 2위인 소녀시대는 542회 진입했다. 총 212개 발표곡 중에서 트와이스(22위), 달샤벳(23위)까지 상위에 속한 23개 걸그룹이 80%를 차지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10.8%(23/212)가 80%의 비중을 점하고 있다.

 

 

그만큼 걸그룹의 수명은 짧은 편이다. 2세대 걸그룹이 나타나고 2년 동안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로 양분된 걸그룹은 이후 카라-티아라-2NE1(2010~2011년), 에이핑크-걸스데이-씨스타-AOA(2014~2015년) 등 지속적으로 바뀌었다. 소녀시대를 제외하고 상위 5위 안에 들어간 걸그룹이 2년 이상 자리를 유지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의 걸그룹 멤버는 왜 9명 이상일까?

 

걸그룹의 멤버는 몇 명이 이상적일까?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런데, 분명한 추세는 최근에 들어 멤버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SES와 핑클이 활동하던 1세대 걸그룹의 경우는 대부분 3~4명이었다. 5인조였던 베이비복스가 가장 많았다. 이후 슈가, 쥬얼리, 밀크, 디바 등 대부분 4명을 넘지 않았다.

 

2세대 걸그룹인 9인조 소녀시대의 등장 후 애프터스쿨(9명), 레인보우(7명), 티아라(7명) 등 다수의 멤버를 자랑하더니 최근 트와이스로 걸그룹 패권이 이동한 3세대에 들어서서는 트와이스(9명), 아이오아이(11명), 우주소녀(13명), 프리스틴(10명) 등 10명을 넘기는 걸그룹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왜 이렇게 멤버 수가 증가하는 걸까?

 

여기에는 '규모의 경제'라는 원리가 녹아 있다. 멤버 수가 늘어나면 돈이 더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늘어나는 것은 맞지만 한 명이 늘어날 때마다 1/n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대량생산 시스템과 같은 이치이다. 4인조 걸그룹으로 준비하다가 2명을 더 충원할 경우 이미 정해진 숙소에 2층 침대를 들이면 숙소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수도세, 전기세 등은 조금 더 증가될 것이다.

 

9인조 소녀시대의 장점을 살펴보면, 윤아는 드라마로, 태연은 라디오로, 티파니는 음악방송 MC 등으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팬덤의 증가와 함께 이로 인해 반사적으로 매출의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링겔만 효과'는 프랑스 농공학 교수 막시밀리앙 링겔만이 내린 결론인데, 수레를 끄는 2마리의 말 능력이 한 마리가 끌 때보다 2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걸그룹에서 모든 멤버가 노래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10여 명이나 되는 멤버가 모두 노래를 잘할 필요가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여기엔 비교경제학의 개념이 도입된다. 즉 비교우위의 원칙에 적용해 보면 태연에게는 노래, 효연에게는 댄스를 계속 연습시키는 게 이득이다. 왜냐하면 40일 동안 태연은 노래에서 4단계의 레벨을 올릴 수 있고, 효연은 댄스에 올인하면 역시 4단계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프의 법칙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문헌학자인 조지 킹슬리 지프는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에 비해 두 번째로 자주 쓰이는 단어의 사용 빈도수는 절반에 불과하고, 세 번째로 자주 쓰이는 단어의 사용 빈도수는 1/3로 이어지는 식의 규칙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지프의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이런 식이라면 평소 많이 사용하는 어휘는 사전에 수록된 단어의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즉 이 정도만 알아도 일상 대화엔 충분하다는 얘기가 된다.

 

지프의 법칙에서 착안해 실제로 2007년 이후 발표된 걸그룹 노래에서 주로 등장하는 단어들을 추려 봤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단어를 추려 보니 대명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는데, 지프의 법칙에서도 그의 연구에 따르면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관사였다. 'the'가 7%가 등장했고, 그다음으로는 'of'로 3.5% 정도 사용됐다고 한다. 대부분의 걸그룹은 '짤막한 음악 구절'을 반복하는 소위 '후크송'으로 팬들을 사로잡는다. 아이오아이의 'PICK ME'처럼 말이다. 이는 바로 지프의 법칙과 연관이 있다.

 

 

걸그룹의 성공과 실패 속에는 마케팅이 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걸그룹은 그래도 단연 소녀시대와 AKB48이다. 하지만 두 걸그룹의 위상은 매우 다르다. 일단 두 그룹이 각기 한국과 일본 내에서 1인자 역할을 하는 것은 논외로 하자. 소녀시대가 동남아와 미국, 유럽, 남미까지 팬덤을 갖고 있는 데 반해 AKB48은 일본 밖으로 나가면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 이처럼 한국의 걸그룹이 훨씬 경쟁력이 높다. 이는 혹독한 스파르타식 교육과 훈련이 한 몫을 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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