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즐거움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3
The School Of Life 지음, 이수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따뜻한 물로 목욕하기, 갓 구운 빵 한 조각, 친한 친구와 나누는 대화, 한밤의 깊은 단잠, 이런 것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은 세상의 칭송도,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현대인들은 '큰 기쁨'만 좇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범한 것을 폄하하는 낭만주의적 시각을 물려받아, 독특하거나 손에 넣기 어려운 것, 이국적이거나 낯선 것이 우리에게 더 큰 즐거룸을 줄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서문' 중에서

 

 

작은 기쁨, 무시하지 말라

 

살다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묘하게도 기쁨이라는 것은 개인적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종잡을 수 없는 무언가다. 왜냐하면 개개인이 추구하는 삶은 방식은 제각각 다양하기 때문에 값비싼 것을 구입했거나 선물 받았을 때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적은 비용으로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는 평범하고 작은 것에서도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소소한 즐거움이란 우리들이 느끼는 행복감이나 기쁨의 양이 작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실 소소한 기쁨도 커다란 기쁨과 다르지 않다. 당연히 대접받아야 할 행복의 원천이니까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크고 화려한 행복만 좇느라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52가지 작은 기쁨의 원천을 소개한다. 그저 사소하고 소박한, 그런 즐거움이다. 예컨대 고용한 어둠 속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 달콤한 무화과의 맛, 아끼는 낡은 스웨터 등처럼 일상 속에서 맛볼 수 있는 그런 작은 기쁨들이다.

 

책의 저자 THE SCHOOL OF LIFE는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다양한 문제의 원인이 자기 이해, 연민, 의사소통의 결핍에 있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인생학교는 문화를 통해 감성지능을 계발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면서 문화적?감성적 삶을 위한 중요 주제들에 관심을 갖고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배움과 위로와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책을 출간하고 있다.

 

작가 알랭 드 보통과 그가 설립한 인생학교 팀은 1년이 52주이니까, 한 주에 하나씩 이 책을 통해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각 순간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소소한 즐거움이라고 해서 결코 그 행복의 양이 적거나 보잘것없어서가 아니다. 무화과 맛보기, 갓 구운 빵 한 조각, 침대에 누워 이야기 나누기, 일요일 아침 등 우리 삶에 만족을 더해주는 평범한 것들이 그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외면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소소한 즐거움은 더 이상 소소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보다 큰 감동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생선 가게

 

생선 가게에 가면 변화에 대한 소박한 계획을 마음속에 그려보게 된다. 생활에 여유가 좀 생기면 문턱이 닳도록 이곳을 찾아오겠다는 계획 말이다. 어떤 해산물 요리는 눈 감고도 할 만큼 능숙하게 차려내게 될 것이다. 생선 가게에 들어가면, 연어를 졸이고, 바닷가재 샐러드를 뒤적이고, 올리브오일을 뿌리고, 친구들을 초대해 부야베스(생선과 조개를 넣은 프랑스식 해산물 스튜-옮긴이)를 대접하는 자신의 모습을 잠시나마 상상하게 된다. 담백하고 영양 만점인 해산물 요리를 노상 만들어 먹고, 비리지만 매혹적인 생선 요리의 풍미에 푹 빠져 사는 미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기도 한다.

 

 

깊은 밤 깨어 있는 시간

 

온 세상이 어둠에 잠긴 밤, 잠자리에 들었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고 눈만 멀뚱거린다. 하는 수 없이 잠자리에서 나와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클래식 명반을 틀거나, 고전 영화를 감상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자아와 대면하면서 깨어 있는 시간의 즐거움을 맛볼 때가 있다. 일상의 규칙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이미 꿈의 세계로 들어갔기에 이런 기쁨을 모를 것이다.

 

반면에 가끔씩 일상의 루틴에서 벗어나 깊은 밤에도 아랑곳 않고 깨어 있으면서 의미있는 의식을 치르는 동안 그동안 잊고 지냇던 내면의 자아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한층 더 성숙해진다.

 

 

 

호텔 방에서 홀로 보내는 밤     

밤이면 밤마다 쉬이 잠들지 못하고 몇 주씩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지옥이다. 하지만 낯선 나라의 외로운 호텔방에서 겪는 불면증에는 치료약이 필요 없다. 그것은 약간의 괴로움을 동반하지만 영혼에 꼭 필요한 소중한 시간이다. 꼭 생각해봐야 하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사색이 넝쿨처럼 뻗어나갈 기회를 얻는다. 당신은 고국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며, 30명으로 이루어진 팀의 멤버다. 이메일은 10분마다 수십 통씩 쏟아져 들어온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만큼은, 긴 복도 끝에 있는 작은 상자 안에 들어온 이 순간만큼은 그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돌볼 수 있다. 바로 당신 자신에게 집중하는 일이다.

 

 

무화과

 

무화과, 사실 생긴 모습은 별로다. 그렇지만 달콤한 묘한 맛이 있다. 빨간 속살을 입 속에 넣노라면 입안에서는 오독오독 씹히는 묘한 질감이 있어서 정말 매력적인 과일이다. 나는 오래전 여름 휴가 때 전라도 사찰 여행에 나섰다가 꽉 막힌 도로에서 상인이 권하길래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이 과일은 태곳적에 팔레스타인이나 시칠리아에서 번성했고, 그 지역 민족들의 우화에 단돌로 등장했다고 한다. 

 

퍽 묘한 일이다.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만나는 일을 그저 우연에 맡긴다. 게다가 즐길 기회가 찾아왔을 때도 다른 것이 우리를 방해하기 일쑤다. 앞에 있는 사람과 나누던 대화가 이제 막 탄력을 받기 시작하고, 아기 침대에 누워 있던 어린 조카가 앙앙 울어대기 시작한다. 혹은 다른 음식과의 조합이 영 꽝이다(옆에 있는 진하디 진한 초콜릿이 무조건 이긴다. 무화과랑은 게임이 안 된다).

 

 

 

어둠 속에 누워 함께 나누는 대화

 

밤이 길다는 동짓날 밤, 전기가 귀한 산골 집은 칠흙같이 어둡다. 이 어둠 속에서는 불과 몇 센티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도 상대방의 코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어둠은 나와 상대방과의 간격을 오히려 더 좁혀준다. 불이 모두 꺼진 캄캄한 어둠은 우리들의 원초적인 불안감을 잠재워준다. 어둠 속의 대화는 차단과 은둔의 분위기를 한층 깊게 만든다.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그는 술꾼이다. 버려진 커다란 술통을 집으로 삼아 아테네 길거리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는 혼자 있을 때 기꺼이 하는 행동이라면 사람들이 많은 공공 장소에서도 떳떳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놓치고 있는 점이 잇다. 지극히 사적인 시공간이 인간에게 커다란 해방감과 자유를 선사한다는 사실 말이다.

 

어둠 속에서 친밀한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삶에서 매우 특별한 순간이라 할 만하다. 그 순간 우리는 홀로 있을 때와 동일한 해방감을 누리면서도, 동시에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어둠 속에서 옆에 누워 있는 이의 엉더이나 허벅지를 만져본다. 두 사람의 발가락이 마주 닿는다. 엉뚱한 상상은 금물이다. 지금 이 순간은 성적 욕구가 배제된 몸짓이다. 섹스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오래된 스웨터

 

낡은 스웨터는 어린아이에서 성인으로 가는 과정이 아니라 노년으로 향하는 길을 우리들에게 상기시켜주는 물건이다. 이는 어떤 대상에서 처음의 매력이 점차 없어지면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 식고 정이 떨어지는 경향과 정반대 현상을 보여준다. 즉 낡은 스웨터에 관한 한, 우리의 애정은 시간이 갈수록 조용히 쌓여만 간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우리 안에는 이 낡은 스웨터처럼 소중함을 인정박고 싶은 소망이 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오래된 스웨터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 누군가가 우리의 낡고 보기 흉해진 몸과 괴팍해진 성격을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모습 때문에 사랑해주기를 소망한다. 낡은 스웨터에서 느껴지는 사랑스러움이 나에게도 물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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