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4
The School Of Life 지음, 구미화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랑에 대한 우리의 공통된 생각은 대부분 관계를 시작하려고 할 때 마주치는 문제들에 초점이 맞춰진다. 낭만중의자들에게 사랑은 본질적으로 '발견'을 뜻한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러브스토리라 부르는 것도 사실 태반은 러브스토리의 '시작'이다. - '서문' 중에서

 

 

감성 지능의 양量을 증가시켜라

 

한국인이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는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다양한 문제의 원인이 자기 이해, 연민, 의사소통의 결핍에 있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이 학교는 문화를 통해 감성지능을 계발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면서 문화적, 감성적 삶을 위한 중요 주제들에 관심을 갖고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배움과 위로와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책을 출간하고 있다. 이 책 또한 그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인생학교'의 목표는 한 가지다. 바로 세상의 '감성 지능'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특히, '남녀관계', '일', '여가 생활', '문화적 측면'이라는 영역에서 말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조직인 '인생학교'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즉 세계적으로 컨퍼런스 개최, 숍과 관련 수업 운영, 기업 컨설팅, 도서 집필과 출판, 영화 제작, 제품 판매, 디지털 활동 등을 진행 중 이다.

 

우리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삶에서 이를 뺀다면 마치 우리들이 황량한 사막이나 먼 행성에 홀로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사랑은 대부분 관계에서 시작된다. 낭만주의자들도 사랑은 '발견'을 뜻한다고 여긴다. 아무튼 사랑에 있어서 투지가 넘치는 도전은 어떻게 오랫동안 사랑을 지속하는가와 상관 있다.

 

흔히 학창시절을 졸업하면서 공부도 종료되었다고 착각한다. 아니다. 공부는 졸업이나 나이와 관계가 없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죽는 순간까지 하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 이 책은 낭만주의적 애정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사랑은 느끼기만 하는 감정이라기보다 배워야 할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이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부부관계를 둘러싼 사소하지만 중요한 이슈들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사랑은 익숙함에 끌린다

 

우리는 사랑할 때 행복을 추구한다고 믿지만, 사실 정말로 추구하는 것은 익숙함이다. 어른이 되어 맺은 관계 안에서, 어릴 적에 아주 익숙했던 그 느낌을 되살리고 싶어 한다. 게다가 그 느낌은 애정과 보살핌으로 한정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 대부분이 초기에 경험하게 될 사랑은 과거에 통제 불능인 어른을 도와주고 싶거나, 부모 한쪽 의 온정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그 사람이 화를 낼까봐 두렵고, 다소 곤란한 바람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큼 안정감을 얻지 못하는 느낌과 같이 훨씬 파괴적인 원동력을 사랑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너무 괜찮아서, 그러니까 왠지 매우 안정적이고 성숙하며 사려 깊고 믿음직해 보인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그런 올바름이 낯설고 과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을 태우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와 함께하는 삶이 더 행복할 것이 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해서 좌절감을 느끼는 편이 편하고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우자를 찾는 이런 과정을 정신분석학에선 '대상 선택'이라고 부르며, 비교적 건강하지 못한 패턴이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반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끌림을 지배하는 요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의 본능, 즉 우리가 끌리거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강력한 암류암류는 우리가 너무 어려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을 때 겪은 복잡한 경험에서 비롯되며, 우리 마음의 곁에 계속 남아 있다.

 

그렇다고 정신분석학은 우리들에게 끌림과 관련된 관계의 모든 것을 바꾸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지성과 매력, 아량같이 긍정적인 자질을 원하는 열망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주 집을 비우거나, 상대를 무시하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금전관리를 못하는 등 아주 곤란란 기질을 가진 이들에게 숙명적으로 끌릴 가능성이 높다.

 

역설적으로 이런 곤란한 습성이 없으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애정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 등의 인물에게서 정신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와 비슷한 면이 있거나, 심지어 부정적인 면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라도 절대 다가가지 못한다. 사랑에 관한 한, 지적이거나 시간관념이 명확하거나 과학에 흥미를 가진 사람을 결코 용납 못할 것이다. 단지 그런 성향이 일찍이 자신을 몹시 힘들게 했던 누군가의 특성과 같다는 이유에서다.

 

 

과민반응을 하는 이유

 

과민반응이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 없는 상대방의 힘든 과거가 왜곡되어 표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성공적으로 함께 사는 열쇠 중 하나는 과거의 두려움과 불안의 '전이'가 지금의 모든 행동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패션잡지를 보다가 농담조로 배우자에게 다른 청바지나 티셔츠가 어떠냐고 물을 때 갑자기 배우자가 돈도 빠듯하고 이미 다른 옷도 넘쳐나는데 왜 쓸데없는 얘기로 짜증나게 하느냐는 말을 할때 우리는 정나미가 떨어질 것이다.     

전이 개념은 관계에서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가장 실망스러운 행동을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를 통해 자칫 상대방 때문에 짜증만 났을 상황도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관계에서 늘 정신이 온전할 수 없다면,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친절한 행동은 나의 내면세계 중에서도 특별히 심하게 상처 입은 영역을 기록하고 안내하려고 시도한 지도를 건네주는 방법이다.

 

이런 지도를 만들 때 관건은 전이가 어디서 일어나는지를 알아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전이 실험'을 이용해볼 수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로르샤흐 테스트이다. 이는 심리학자 헤르만 로르샤흐가 1920년대에 사람들이 닿기 힘든 자신의 속마음을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고안한 방법이다. 로르샤흐는 모호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그게 무엇인지 얘기해 달라고 하면, 우리 안에 잠재하는 주된 두려움과 희망, 편견, 그리고 전제 중 일부가 자연스레 드러날 것으로 믿었다. 

 

모든 로르샤흐 테스트의 핵심은 이미지마다 정해진 진짜 의미가 따로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과거가 무엇을 상상하도록 만드냐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의미로 본다. 다정하고 너그러운 성격 의 사람에게는 아래의 이미지가 가면처럼 보일 것이다. 두 눈과 늘어진 귀, 그리고 입을 가리는 부분이 있으며 볼에서부터 넓은 덮개가 길게 내려오는 가면이다. 반면에 고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심한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면, 힘 있는 누군가를 아래서 올려다본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넓게 벌린 두 발과 굵은 다리, 건장한 어깨, 그리고 공격 자세를 취하듯 고개를 앞으로 내민 모습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우리는 배우자에게 상당히 불쾌한 말을 자주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그런 말을 내뱉는다. 반면에 다른 많은 사람을 대할 때엔 우리는 확실히 공손하다. 샌드위치 가게에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무척 상냥하고, 동료들과도 여러 가지 문제를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친구들과 있을 때도 거의 항상 유쾌한 기분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영역에서는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만큼 기대하는 것도 별로 없다.


우리가 부부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만큼 우리를 실망시키고 속상하게 할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같다느니, 빌어먹을 ×이라느니, 약골이라느니 하면서 막말을 하는 이유는 위험할 정도로 기대를 걸기 때문이다. 기대한 만큼 실망과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사랑이 주는 희한한 선물 중 하나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

 

우리는 첫눈에 반하는 순간을 즐겨야 한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우리가 흠모하고 우리 삶에 더 많이 채워지기를 원하는 자질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와인 바에서 본 그 사람이 정말로 대단히 묘한 매력을 지녔을 수 있다. 신선과일 코너 옆에서 언뜻 본 그 사람이 정말로 다정하고 훌륭한 부모가 되어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이런 사람 역시 자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결정적인 면에서 자신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신랄하게 비판한다고 해서 우울해질 필요는 없다. 단지 낭만주의 문화가 부부관계는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며 지나친 상상력으로 가해온 압박을 덜어줄 뿐이다. 우리가 늘 명심해야 하는 사실은, 배우자가 이상형이 아니라고 해서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모든 관계가 실패하는 것 이 당연하다거나 개선되어야 한다는 증거도 절대 아니다.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저주를 받지 않더라도, 악몽에나 나올 법한 그런 끔찍한 사람, '잘못된 사람'과 함께하게 된다.

 

 

성性에 대해 솔직해져라

 

성적 개방과 진보에 대한 이런 묘사가 아무리 현대 세대를 치켜세우는 내용이라도 편의상 한 가지 변함없는 진실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즉 우리가 여전히 섹스와 관련해 심한 갈등과 당혹스러움, 수치심과 야릇함을 느낀다는 점이다. 섹스는 깔끔하게 사랑과 일치되기를 거부하고 여느 때처럼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오히려 단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우리는 섹스를 밝고, 모험적이며, 강박적이지 않고, 깔끔하며, 충실하고, 안정된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알고 있고, 그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믿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섹스에 관한 관점은 대부분 유별난 편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모습이 지독하게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적 취향이 어떤 것인지는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사람에게 솔직히 말하기가 아주 두려운 부분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언제나 본능적으로 자신의 욕구와 취향 중 일부만 공유하는 데 머물 뿐 더는 드러내지 않는다.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을 가질까봐 겁이 나서다. 사랑을 받을 것인가 솔직해질 것인가 하는 선택을 놓고 대부분의 사람은 전자를 택한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성적 충동에 부담을 느낀다. 괴로워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고 죽는 편이 낫다고 느낄 것이다.

 

 

애정관

 

낭만주의자는 사랑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싶어 한다. 그들은 인생의 안내자로서 직감을 찬양하고 이성은 경계한다. 또한 자신과 어울리는 연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거나, 관계가 끝났다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다는 견해를 좋아한다. 그들의 눈에는 어떤 판단이나 기분을 너무 열심히 캐묻는 행위가 냉정하고 잔인하게도 보인다. 특히 감정을 일일이 분석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장되고 모호한 언어와 불분명한 표현 방식을 무척 존중하는데, 그것이 사랑과 친밀감이 가진 소중하지만 형언하기 힘든 면을 나타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단점을 따지거나 부부관계에서 정확히 어떤 것이 효과적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 일일이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이 특별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에 고전주의자는 직감을 경계한다. 이들은 이미 종종 쓰라린 경험을 통해 자신의 느낌이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착각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느낌을 상당히 회의적으로 신랄 하게 바라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행위와 그 이유를 따져 묻는 행위 사이에 전혀 갈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들은 명료한 표현 방식을 선호하며 영리한 12살짜리 아이가 이해할 만한 언어를 좋아한다.

 

 

사랑은 본능이나 느낌이 아니다

 

낭만주의 소설은 주인공들이 서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잘 맞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낭만주의의 사랑은 우리의 나머지 반쪽이자 정신적 쌍둥이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사랑은 훈련이나 교육과 아무 관련이 없다. 사랑은 본능이고 느낌이다.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설명하기 어렵다.

 

고전주의 소설은 남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비밀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외로움도 있고, 타협도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또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사랑은 자연이 준 타고난 재능이나 느낌이 아니라고 믿는다. 따라서 아래의 요건을 어느 정도 갖출 때 마침내 바람직한 사랑을 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바람직한 러브스토리의 조건

 

완벽하기를 단념할 때

나를 완벽히 이해해 주리라는 희망을 버릴 때

우리가 제정신이 아님을 깨달을 때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또 침착하게 충고할 때

서로 잘 안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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