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인간학 - 인류는 소통했기에 살아남았다
김성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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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문학과 사회과학계에서 진지하게 수행해야 할 과제는 바로 한국어라는 칼과 그물의 구조와 속성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과학적 분석이며, 이를 발판으로 삼아 국가적 차원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기념비적 사전을 만드는 일이다. - '서문' 중에서

 

 

인류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기원을 추적하다

 

책의 저자 김명도는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교수 및 영상문화학과 협동과정 주임교수이자 응용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세계기호학회 부회장, <세미오티카> 편집위원, 한국영상문화학회 회장 및 건명원建明苑 인문학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또한 그는 LG 연암문화재단 교수해외연구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옥스퍼드대학교 방문교수, 미국 풀브라이트재단 시니어 펠로우에 선정되어 하버드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으며, 이외에도 케임브리지대학교 방문교수와 한국기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993년 기호학

 

 

 

 

 

이는 '인간'과 '언어' 그리고 '문명'간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새로운 영역이다. 하지만 여기서 제시하는 언어인간학에서는 넓은 의미에서의 언어 개념을 채택해서, 즉 한국어라는 음성언어(자연언어) 혹은 자국어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시각언어(시각 이미지), 문자언어, 몸짓언어, 촉각언어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의 언어를 대상으로 삼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섯 차례의 강연을 통해 언어학, 기호학, 미술사, 선사학, 고인류학, 매체학, 영상문화학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시각들과 자료들을 제시할 계획인데, 이로써 언어학이라는 단일 분과 학문의 테두리를 탈피, 과감하게 다양한 영역들을 넘나들 수 있는 개념들을 사유해봄으로써 우리들이 스스로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도록 한다.

600만 년 전에 지구상의 아프리카 지역에서 인간 영장류와 침팬지의 공통 조상이 출현함으로써 마침내 인류학의 시대가 펼쳐진다. 물론 그 이전의 화석이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다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한 진화론은 여지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을 토대로 할 때 현생인류의 조상은 동아프리카에서 탄생했고, 인류는 총 3번의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7만 년 전에 드디어 최초의 인간학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인지혁명'이 일어난다.

 

이로써 최초의 가상적이며 허구적인 언어가 탄생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인류는 미래를 예측하고 현실 세계에서 아직 발생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할 수 있는 의미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즉 '내일'이라는 단어를 발명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시점으로 인류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내다

 

호모 속屬에 수없이 많은 현생인류들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 이전 종種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로 넘어오면서 인류에게는 중요한 신체적 조건이 완성된다. 그것이 바로 소리를 생산하는 기관으로, 10만~5만 년 전에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전형적으로 직각을 이루는 완결된 성대 특징을 갖게 된다. 이마에서 입술까지의 수직 형성, 후두, 성대, 인두의 해부학적 조건이 완성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몰아낼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비밀 병기라고 할 수 있는 상징의 언어 시스템으로서 완전한 이중분절二重分節 시스템을 갖고 있었던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중분절이란 언어의 최소 단위인 유한한 음소를 결합해서 무한한 기호를 구성하는 것으로, 호모 사피엔스 성공의 가장 큰 일등 공신이 '언어'라는 것이다.

 

 

사유 능력을 갖춘 인간의 흔적은 선사시대의 동굴벽화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인간 이외에 그림을 그리는 동물은 없다.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말하는 능력과 그리는 능력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호모 사피엔스 여정에서도 완벽하게 언어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과 구석기시대 최초로 표현된 풍부한 그래피즘을 생산한 것이 같은 시기이다. 

 

 

이미지는 문자의 어머니

이미지와 문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이미지는 문자의 어머니이다. 애초에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눠졌다. 하나는 유추, 닮음의 세계를 추구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약호의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추상화 전략을 취한 것인데 그것이 알파벳 문자이다. 두 가지 축은 전혀 다른 속성을 갖고 있다. 

이미지는 현실의 해석이다. 관찰할 수 있고 기억의 연상 작용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즉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비전, 우리가 지각하는 이미지는 현실의 복제가 아니라 하나의 해석이라는 점이다. 착시 현상은 우리들에게 늘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그 이미지가 나타나는 맥략에 따라서 해석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미지는 각막 이미지 속에 즉각적으로 현존하는 것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하겠다.

 

 

문자, 선사와 역사를 구분하다

문자는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문자의 권력은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먼저 문자를 갖고 있는 힘, 지식 권력을 들 수 있겠고 또 하나는 문자를 소유한 인간이 다른 인간들에게 미치는 권력이다.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입장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문자는 진정한 지식혁명을 가능케 한 훌륭한 지적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선 문자가 발명되면서 안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시작됐다는 견해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 천개의 얼굴을 가진 언어

시인 보들레르는 "언어, 단 한마디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수 있는 사건"이라고 했고,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무기"라고 했다. 그리고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를 두고 "존재의 집"이라는 표현을 했고,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는 곧 나의 세계의 한계"라는 명언들을 남겼다. 

노암 촘스키는 언어의 기능에 주목하지 않고 이보다는 선천적인 생물학적 언어 능력을 최우선시해서 그 언어 능력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언어학의 목표라고 말한다. 즉 언어 생득설이 바로 그것이다. 반면 소쉬르는 언어란 사회 구성원들의 약속에 의해서 이루어진 기호 체계로서 이것은 종교, 법, 학교 등의 다른 제도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제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현대 언어학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두 학자의 시선은 정반대이다.

 

 

언어 학습의 의미

제대로 된 모국어는 한 인간을 지적, 정서적, 윤리적 차원에서 성장시키는 기능을 한다. 즉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객관적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언어 사용을 통해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 있어야 하고, 사유하는 능력을 기르며 정신의 얼개를 짜고 감각, 감정, 욕망, 꿈으로 이루어지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형성하게 해야 합니다. 실로 올바른 언어 사용이 한 사람의 인격 형성에 관여해 진실, 선함, 아름다움의 가치를 터득하게 만들어야 한다. 

 

 

매체가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변화시키다

인간 본질로서의 커뮤니케이션, 그 매체 문화사의 범위는 어떻게 될까요? 말할 것도 없이 저 멀리 상징의 문턱을 넘어선 구석기시대 호모 사피엔스의 동굴벽화가 그 시작점이 될 것이고 그로부터 오늘날의 스마트폰까지가 인류 매체 문화사의 범주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동굴벽화와 스마트폰이 등가의 가치를 갖는 인간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인류가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함께 실천하게 된 것, 이른바 보편적 리터러시Literacy, 즉 문자로 된 기록물들을 통해 지식이나 정보를 얻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등장한 것은 불과 300년 전의 일이다. 요컨대 인간이 갖고 있는 구술언어와 이미지 사용 능력은 결코 문자에 비해 열등한 요소들이 아니다. 

 

 

호모 그라피쿠스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는 "최초의 영상 시대로의 귀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선사 인류학의 시각에서 진단해본다면 호모 그라피쿠스로 회귀한 것과 동시에 인류는 매우 다차원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현대는 역설의 시대이다. 머지않아 시詩를 쓰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 문명 속에서 호모 그라피쿠스, 호모 스크립토르, 호모 로쿠엔스로서의 인간 본성이 중첩되어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공간

사실상 디지털 시대의 공간은 '비장소non-place'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주소는 한 장소, 즉 주거지와 노동 장소를 가리켰지만 이젠 주소의 개념이 변했다. 휴대전화는 더 이상 특정 장소를 칭하지 않고 코드와 숫자로 족足하다. 지금-여기라는 기존의 존재 방식의 근본적 범주가 해체되어 모든 지점들이 동등한 가치를 누리고 있다. --- p.336

 

"인간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존재"

- 하이데거

 

 

망각되지 않는 디지털 세계

현대인은 모든 것이 기억되고 아무것도 망각되지 않는 디지털 세계에 직면했다. 망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금 시대에는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변화들에 대한 물음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 대한 온갖 종류의 정보들이 영원히 저장되고 보존되는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평화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 문제가 바로 잊혀질 권리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적인 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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