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RAIN) - 자연.문화.역사로 보는 비의 연대기
신시아 바넷 지음, 오수원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세 번째 저작인 이번 <비>는 물의 근원인 비와 인류의 관계를 지구가 형성된 시기부터 선사 및 역사 시대를 가로지르며 종횡무진으로 엮어나간 일종의 종합서다. 문제의식은 이어져 있으나 훨씬 더 다채롭고 흥이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물의 윤리'에 관하여

 

저자 신시아 바넷은 전 세계 여러 곳의 수질과 기후에 대해 탐사 및 보도 활동을 해온 환경 전문 저널리스트다. 그녀는 신문사 리포터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다 <플로리다 트렌드>에서 탐사보도 에디터로 일했으며 글쓰기 초창기부터 영향력있는 출판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며 꾸준히 언론의 주목을 받았

 

 

 

 

 

 

 

 

 

 

그렇지만 몬순은 위험을 몰고 오기도 한다. 중국, 인도, 네팔 및 그 주변 지역에서는 홍수 때문에 수백, 때로는 수천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다. 이와같은 홍수보다 더 나쁜 재난은 이따금씩 몬순이 오지 않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아 중 일부는 몬순이 오지 않음으로 인한 가뭄 때문인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인도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전체 작물과 용수 공급량은 몬순의 규모에 달려 있다. 몬순이 오지 않으면 시장이 붕괴되고 식량 가격이 폭등하며 자살자가 속출하고 에너지 부족이 초래되어 총선의 향방까지 바뀐다.

 

 

두 얼굴을 가진 비

 

비가 오지 않았던 300년은 메소포타미아의 몰락과 강력한 하라파 문명의 소멸뿐 아니라 나일 강 유역을 따라 발달했던 고대 이집트 왕국의 붕괴와도 궤를 같이한다. 중국 과학자들은 수많은 신석기시대 인류의 소멸, 농업 기반의 문화에서 목축으로의 귀환, 그리고 양쯔 강과 황허의 저지대를 따라 분포했던 고고학 발견물의 뚜렷한 감소 추세에 주목한다.

 

홀로세 동안 되풀이되던 가뭄과 함께 문명들도 사라진다. 마야인들은 기원 후 900년경까지 1,00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중앙아메리카 저지대에서 번영을 구가했다. 인구 1,000만여 명에 육박했던 그들은 가뭄이 쉽게 일어나는 지형에서 정밀하게 물을 관리했다. 인더스 강,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나일 강, 황허의 위대한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마야 문명도 수년 혹은 심지어 수십 년 동안 지속된 가뭄을 극복해냈지만 300년간의 가뭄(호수 바닥에서 시추한 시료들은 이 가뭄이 750년부터 1025년까지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은 견뎌내기에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날씨를 관찰하는 사람들

 

1831년, 뉴욕의 윌리엄 레드필드는 자신이 직접 관찰했던 거센 폭풍우에 관해 "비는 쏜살같이 얼굴을 때렸다. 말을 탈 때 바람이 세게 뺨을 스치는 정도의 압력이다"라고 기술했다. 해군 엔지니어인 그는 사이클론의 선회선회하는 성질을 알아보기 위해 스스로 이 폭풍을 맞아본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비 과학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일정 정도의 의도적인 애매모호함이다. 인명을 구하는 폭풍 경보 이외의 무수한 이유로 우리 인간은 비를 예측하려는 탐욕스러운 의지를 갖고 있다. 주요 도시의 물 공급을 관리하고, 겨울 밀을 심어야 할 시기를 파악하고, 야외 콘서트를 계획하고, 결혼식 날짜를 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대 기상학이 옛 예보보다 나아졌다 해도 비는 여전히 예측하기가 몹시 까다롭다. 비야말로 카오스 이론의 고전적 사례다.

 

"베이징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짓을 하면 센트럴파크에서는 비가 온단 말이죠"

 

나비 이론을 창안한 실제 과학자는 매사추세츠 공대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였다. 그는 먼 곳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계기로 인해 날씨가 수학적 모델로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음을 인식한 최초의 과학자였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날씨 앱은 집 앞에 비가 쏟아질 것인지 알려주지 못한다. 뒷마당이 쨍하니 말라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빗방울은 어떤 모양일까?

 

비는 하늘에서 땅 아래로 낙하하니까 아마도 좌측 그림 모양일 것라고 우리들은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떨어지는 물방울은 대기로부터 압력을 받아 아래 부분이 평평해지고 찌그러지기 때문에 우측 그림의 모양이 된다. 사실상 우리들은 비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지식조차 부족한 셈이다.

 

작은 낙하산 모양으로 빗방울은 공중에서 땅으로 하강한다.

 

 

 

폭풍우를 사랑한 예술가

 

워싱턴 주에 위치한 애버딘의 벌목촌, 이곳은 커트 코베인의 출생지다. 그는 1987년 밴드 너바다를 조직한 리드싱어이자 기타리스트였다. 애버딘의 대기大氣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연간 최대 약 3,300밀리미터의 강우량을 자랑하는 애버딘은 미국 대륙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도시중의 하나다. 

 

코베인은 자신이 우울하고 음습한 고향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종종 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향은 또한 감미로운 '썸씽 인 더 웨이Something in the Way'처럼 그의 가장 풍요로운 노래 중 일부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 노래는 애버딘에 있는 영스트리트브리지 밑,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는 젊은이의 비참한 심정을 담고 있다. 영스트리트브리지는 코베인이 10대 시절 잠을 청했다던 곳이다. 오늘날 이 다리의 콘크리트 아랫부분은 코베인이 27세에 자살한 이후 그에게 바친 스프레이 페인팅 헌사들로 가득하다.

 

비는 음악이나 다른 어떤 장르보다 운율과 은유에 적합하므로 시의 언어를 통해 말을 건넨다. 시를 모아놓은 선집들을 보면 '비'는 물론이거니와 4월의 비, 5월의 비, 8월의 비, 정오의 비, 밤비, 그리고 런던의 비 등등 제목에 비가 할애된 경우가 끝없이 등장한다. 소나기는 그곳에 들어설 틈조차 없다.

 

 

기후변화와 비의 역사

 

과거와의 연계는 원시인류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비와 가뭄을 견디고 살아남아 다른 호미니드보다 오래 생존했다. 인류 출현 이전의 동물들은 아프리카 동부의 극적인 기후변화에 적응하면서 상당한 크기의 뇌와 도구를 만드는 지능 및 그 밖의 다른 생존 기술을 진화시켰다. 인류를 현재의 모습으로 만든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응과 교정과 조정을 가능케 하는 유연함이다.

 

인류에게 유연함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바꿔놓은 기후에 적응하는 일뿐 아니라 금성이 당했던 것(고삐 풀린 온실효과)을 지구의 대기가 당하지 않게 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일에 있어서도 희망적인 징조인 듯하다. 과거에 내렸던 비의 가장 좋은 교훈은 인류가 큰 뇌와 도구를 가장 잘 활용했던 시절로부터 온다. 극단적인 폭풍우나 가뭄이 기상학에 대한 투자와 과감한 연구를 촉발시켰던 시절 말이다.

 

 

아캄페 리기다(난초)

 

 

비를 고대하며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 현상이 이어지자 사무실의 업무 처리도 원활하지 못했다. 직원들의 휴가 일정이 수시로 변경되고 이로 인해 업무는 지연되기 일쑤였다. 더구나 사무실 환경이 칸막이 되어 있는 통에 마치 찜통을 연상케 하는 날이 이어지자 결국 단체 휴가를 결정하게 되었다.   

 

인류의 갈증을 풀어주었던 비는 이 밀림에 양분을 공급해왔고, 땅을 파 계곡을 만들었고, 폭포에 물을 댔고, 움시앙 강을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지 않는 때에는 상냥하게, 몬순 비가 오는 동안에는 맹렬히 흐르게 만들었으며, 아주 오래전 누군가로 하여금 하늘에 떠 있는 나무 길을 통해 이 강물을 무사히 건너도록 기원하게 만든 폭풍우를 만들었다. 이 다리를 만든 고무나무는 반얀 나무의 가족이며 비는 이 가족의 어머니가 내는 젖이다. 그래서 나뭇잎까지 심장 모양을 닮아 있는 것 같다. - '에필로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