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멈추고 싶은 경영자를 위한 생각수업
이희선 지음 / 청춘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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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적 사고는 객관적인 인식의 오류 혹은 왜곡을 부릅니다. 여기서 마찰과 오해가 생기고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조선후기 실학자 박세당朴世堂(1629~1703년)은 지각대상이 되는 객관적 사실을 똑같이 눈으로 보고도 해석이 엇갈림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마음을 두지 않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잠시 멈추고, 내면의 답을 찾아보라

 

'왜 어떤 경영자는 항상 성과를 내며 재밌게 일하는데,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은걸까? 그 차이는 무엇일까?', 책의 저자인 이희선 박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초월 심리학자인 켄 윌버Ken Willber의 Integral Theory에 바탕을 둔 Integral Coaching 프로그램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료했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프로페셔널 코치 트레이닝 코스인 Graduate School of Master Coaches 과정까지 마쳤다.

 

그녀는 단순히 이론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경영자 코치로서 5,000시간 이상 국내외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들과 임원들을 코칭 해오고 있으며 지난 20여년간 리더십 코칭 방법론을 연구하며

 

 

 

 

 

 

 

 

"너 자신을 알라",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주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해 한 말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모르고 산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평생에 걸쳐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며 내면의 자기와 대화를 함으로써 얻게 되는 생애의 과제인 셈이다.

 

잘나가는 리더도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사회적으로 성공함으로써 크게 재산을 일궈 행복한 가정을 꾸린 사람들조차도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냥 앞만 보고 내달리다 보니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 할 순간이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통해 현재의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봐야 한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방황하는 자이자 산에 오르는 자다"

-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과거엔 직장에서의 상사는 곧 하늘이었다. 그는 직위를 힘으로 내세워 부하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다. 심지어 그의 독단적인 결정에 감히 '노No'를 말할 수 있는 형편도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부하직원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맘껏 성질을 낼 수도 없고 다른 곳으로 내쫓을 수도 없다. 그런데, 이런 불평의 내면을 하나씩 뜯어 보면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새로움이 생기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상사는 성실함과 정직함을 중요시하고 이런 태도가 성과로 이어진다고 믿는 가치관을 지닌 반면, 부하직원은 창의성과 유연성에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사는 기존의 방법을 충실히 따르면서 완벽한 업무 처리를 원하지만, 부하직원은 기존의 것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자꾸 시도해 봐야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가치관을 지녔던 것이다.

 

노자<도덕경>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옳은 말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알고 자신을 이겨내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현재 경영자의 위치에 있다면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성과를 분명 달성했을 것이다. 스스로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원칙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경영자들은 '생각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문제가 발생한 곳에서와 같은 사고방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새롭게 사고해야 한다"

 

이는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그 생각에만 몰두하다 보면 적절한 해법이 떠오르지 않고 오히려 그 생각에만 사로잡히고 마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이 말이 곧 이런 상황에 대처하게 만드는 명해법인 셈이다. 즉 그곳에서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해결책이 나온다는 말이다.

 

사실 입에 '바쁘다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살아가는 경영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의 일과는 스케줄로 꽉 찬 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회의를 끝내고 나면 면담에다 외부 약속 등등 하루 바삐 움직이면서 머리 속엔 미결된 업무와 수립해야 할 새로운 전략들로 가득 차 있다. 정작 곰곰히 되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는 셈이다.

 

희극 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모던 타임즈>라는 영화(1936년)를 통해 현대 사회의 삶을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기계의 부속품으로 묘사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돌아가는 삶을 산다면 이는 바로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삶'과 같다. 반복적인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때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는 법이다.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요즈음 인생 후반전을 꿈꾸며 귀농귀촌歸農歸村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물론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1년 정도 체험하고선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사실 농촌에서의 삶이란 게 겉으로 보기엔 매력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 들어가 보면 만만치 않다. 자유를 느껴 보려고 귀농했더니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농삿일이 해가 떨어지고 나서도 해야 한다고 투덜댄다. 이 또한 자신의 체질과 맞아야 할 만한 일인 것이다.

 

좀 게으름을 피우고 밭에 드문드문 나갈 경우 이내 잡초가 무성해지고 농작물은 시들고 비틀어진다. 이리 되면 농사는 헛 일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심전心田, 즉 마음의 밭도 가꾸기를 게을리하면 잡초가 무성해진다. 특히, 잡초는 생명력이 강해서 그냥 둘 경우 무성해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가꾸기라는 말을 음미해보자. 규칙적으로 물과 비료를 주고 불필요한 잡초를 제거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따라서, 마음의 밭도 규칙적으로 가꾸어야 한다. 나는 아내의 권유로 아침에 일어나면 경전을 읽고 경전의 일정 부분을 필사하면서 깊은 뜻을 새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인생을 돌아볼 때 절대로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다. 그럼에도 그 순간을 회피하지 말고 되돌아 보아야 한다. 그 일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새롭게 배운 것은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이런 행동을 통해 우리들은 인생에 있어서 실패란 없고 피드백만 있을 뿐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뱀이 허물을 벗지 못하면 끝내 죽고 말듯이 인간도 낡은 사고의 허물에 갇히면 성장은커녕 안으로부터 썩기 시작해서 마침내 죽고 만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사고의 신진대사를 해야 한다" - 니체의 <아침놀> 중에서

 

 

오늘을 사랑하라

 

광활한 우주의 시공간을 감안할 때 우리 인류의 역사는 한 점점 정도일 뿐이다. 그 점의 점 속에 나의 발자취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들은 그야말로 잠시 이 지구라는 별에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좋아하는 시인 천상병<귀천歸天>이란 시에서 자신의 삶을 지구에서의 소풍으로 묘사하고 있다. 적어도 이 정도로 삶에 대한 태도를 가졌기에 분명 하늘도 감읍해서 천국으로 그를 인도했을 것이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체로키족은 애팔래치아 산맥 남부 지방에 거주하던 원주민이다. 이들의 속담에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인디언 전사가 말을 타고 한없이 펼쳐진 황야를 달리다가 갑자기 멈춰 선다고 한다. 왜 그럴까? 너무 빨리 달려서 자신의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까봐 잠시 기다려준다는 거다.

 

그렇다. 우리들의 삶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며 지금 바로 오늘이다. 오늘을 행복한 소풍으로 여기고 산다면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환경들은 당연히 새롭고 사랑스러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사 들고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해보자. 얼마나 의미 있는 시간이겠는가. 오늘을 계속 사랑하면 이는 결국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는 삶인 것이다.

 

 

 

영웅 테세우스의 배와 정체성

 

테세우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탄 배는 서른 개의 노가 달려 있었고, 아테네인들에 의해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의 시대까지 유지 보수되었다. 부식된 헌 널빤지를 뜯어내고 튼튼한 새 목재를 덧대어 붙이기를 거듭하니, 이 배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라는 것들에 대한 논리학적 질문'의 살아있는 예가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배가 그대로 남았다고 여기고, 어떤 이들은 배가 다른 것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 플루타르코스

 

그리스 신화에는 영웅 테세우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당시 크레타 섬의 미노스왕이 괴물 미노타우로스(머리는 소, 몸은 사람)에게 매년 선남선녀 14명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가 부당하다고 여겨져 배를 타고 어려운 항해를 거쳐 마침내 설계자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迷宮에 잠입해 괴물을 죽이고 무사히 탈출한다. 아테네 사람들은 이런 테세우스의 영웅적인 일을 기념하려고 당시 타고 항해했던 배를 보존하여 매년 바다에서 축제를 벌였다.

 

배는 나무 판자를 연결해서 만든다. 축제를 마치고 나면 당연히 그 배는 망가지고 수리가 불가피해진다. 오래된 판자를 새것으로 하나씩 교체하다 보니 나중에는 결국 처음의 나무 판자는 하나도 없게 되었다. 이를 두고 철학자들은 '애초에 테세우스가 탔던 배의 모든 판자가 새것으로 교체됐는데 아직 이배는 테세우스의 배인가?'라는 철학적 화두를 던졌던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리아드네(1898년)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의 영웅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조력자다. 그녀는 미노스왕의 딸로 복잡한 미로로 구성된 미궁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아리아드네의 실을 제공한다. 그림 왼쪽 위에 멀어져 가는 테세우스의 배가 보인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와 낙소스 섬에사 하룻밤을 보내고 잠이 든 그녀를 남겨둔 채 몰래 아테네로 떠난다. 배신의 아이콘이다. 

 

 

인간은 고통을 이겨내는 힘을 가졌다

 

"This Universe is not outside you. Look inside yourself: everything that you want, you already are" (이 세상은 여러분의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내면을 살펴보십시요.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여러분 안에 이미 있습니다)

 

이는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가 한 말이다. 혹독한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삶의 의미를 잃지 않는다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우리들은 스스로 그 죽음의 문턱을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우리들은 편안할 때는 모르고 지내다가 오랫 동안 고통에 시달린 후에야 그 시련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고통이라기보다는 값진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좋다.

 

 

 

누구를 위하여 일하는가?

 

'개미와 배짱이'라는 우화가 있다. 한여름에도 개미는 쉬지 않고 땀을 흘리며 일을 한다. 소위 힘든 날과 추운 겨울을 대비한 노동인 셈이다. 반면 배짱이는 나무 위 서늘한 곳에서 노래나 열심히 부르면서 놀고 있다. 겨울이 찾아 와 개미는 따뜻한 집에서 힘들여 모아 둔 양식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배짱이는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을 겪는다는 줄거리이다. 

 

"한여름에 그렇게 땀 흘리며 일해야 하는가?"

 

최근의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이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은 아직도 준비가 덜 된 듯 보인다. 우리들이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DNA는 수렵과 농경시대에 맞추어진 자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스스로는 물론이고 종족을 보존하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산업화 시대에 들어 공장과 기계를 통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음에도 여전히 더 열심히, 더 빠르게, 더 성실하게 노동한다. 물론 우리들의 삶의 질이 높아졌지만 그만큼 우리들의 목표는 늘 상향 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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