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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서배스천 배리 지음, 강성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작가 서배스천
배리는 1955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더블린의 가톨릭 대학과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매커의 정원 Macker's Garden>(1982)을 시작으로 1998년까지 시집과 소설을 발표하고, 극작가로도
데뷔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에네아스 맥널티의 행방> (1998), <애니 던>(2002), <머나먼
길>(2005), <가나안 땅 쪽에서>, <파넬 거리의 자랑거리>(2014), <일시적 젠틀맨>(2015)
등이 있다.
맨부커 상 최종 후보작에도 오른 <머나먼
길>은
2007년 더블린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끝없는 나날>은 코스타 상을 수상했다. 극본을 집필한 연극 '기독교도의 웨이터'는 1995년
초연되어 브로드웨이까지 옮겨간 뒤 전 세계에서 공연되었다. <로즈>는 2008년 맨부커 상 최종
후보작이었으며, 2008년 코스타 상을
수상했다.
자신의 아이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50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갇혀 지낸 로잔느
정신과 의사 그린 박사는 그녀의 책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써내려 온 글들을
발견하고,
서서히 그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100 살(정확한 나이는 모름)이 넘었지만 여전히 기품 있는 여인
로잔느는 자신의 아들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수십 년 전 이곳 로스커먼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다. 한편, 그녀의
주치의인 그린 박사는 병원의 철거를 앞두고 현재 입소되어 있는 환자들이 사회로의 복귀 가능성을 개별적으로 진단하는
과정에서 이 병원에서 가장 오래된 입실자 로잔느의 과거에 얽힌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1930년대, 스물다섯 살의 아름답고 자유분망한 로잔느는 톰과 한눈에 서로 반해 결혼까지
하지만, 과거 한때 영국 편에 붙었던 로잔느의 아버지 경력 때문에 살던 마을에서 천대받고 또한 교구 신부는 그녀를 마치 마녀 사냥하듯 부정한
여자로만 몰아간다.
이후 남편과 원치 않는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로잔느는 홀로 수년 동안 외딴집에 격리된 채 남편과의 결혼마저 무효화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로잔느는
느닷없이 누군가의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이 아이는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지는데…. 과연 누구의 아이일까? 로잔느의 이야기에서 사라져버린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소설 <로즈>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매우 혼란스러운 1920년대 아일랜드이다. 역사적으로 당시의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지, 비록 불완전한 독립일지라도 이를 수용할지를 놓고 각각 정규군과 반군으로 나뉘어 내전內戰을 벌이는 중이었다. 종교와 정치적 분파에 따른
갈등은 아일랜드의 수많은 가족, 연인, 그리고 이웃들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이는 지금껏 여러 문학작품과 영화의 소재로 다루어졌을 정도로
아일랜드의 역사는 정말로 다사다난했다. 지금까지도 불행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한반도의 서글픈 역사와 유사한 모양새이다.
과거 로잔느의 아버지는 영국 편에 줄을 섰던 경찰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결혼 생활마저 불행해졌고, 딸 로잔느마저도
대를 이어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당한다. 소설 <로즈>의 이야기는 정신병원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로잔느와 그녀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그린
박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묘미는 서정시를 닮은 섬세한 문장과, 이와는 달리 충격적인 반전에
있다. 로잔느의 기억과 그린 박사가 추적하는 진실은 서로 엇갈리다가 결말에 이르러 독자들에게 반전을
선사한다.
"나는 누구의 아내도 아니다. 로잔느 클리어일
뿐이다.
한때는 아름다웠으나, 아름다움은 끝났다. 남은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
뿐이다"
이야기는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는 노파 로잔느와 이
노파를 돌보는 정신과 의사 그린 박사의 기록들로부터 시작된다.
톰과 결혼했지만 불행하게도 이를 인정받지
못한 로잔느는 미모 때문에 동네 슬라이고의 모든 남정네들로부터 선망의 부러움을 샀다. 당시 묘지 관리인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로잔느, 넌 아주 사랑스러운 소녀지.
그래서 걱정이구나. 네가 마을에 나가면 슬라이고의 남자아이들뿐만 아니라 남자 어른들까지 유혹을 느낄까 봐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널 결혼시키는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옳은
일이란다"
이후 결혼했던 남자의 동생과의 사이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마저 빼앗긴 채 말도 안되는 색정증色情症(여성의 비정상적인 왕성한 성욕)으로
몰고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긴 세월을 정신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비운한 한 여인의 인생을 보면서 너무나도 슬프고 아픈 이야기라고 느낄
때쯤 작가는 우리들에게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한다.
"전 남편과 같이 살고 싶어요"
슬프고 불행한 한
여인의 이야기 속에서 놀라운 반전까지
보여주는 서배스천 배리의 글솜씨에서 왜 그녀가 맨부커 상 후보였는지 실감하게 한다. 즉 단순히 상처받은 여인을 다룬 그저 그런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하고 이 작품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곧 작가의 미려美麗한 문장들에 한번 놀라고, 한 여인의 슬프고도 아픈 이야기에 또 놀라 가슴을 쓸어 내리게 된다. 특히,
여성 독자라면 더욱 더 할 것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너무나 큰 반전에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된다.
영화 <로즈>의 한
장면
"곤트 신부는 타락한 여자, 미친
여자를 남겨두고 그 끔찍한 집에서 깔끔하게 빠져나갔다.
톰, 사랑하는 나의 톰은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짐 쉐리단 감독의 영화 <로즈>(여우 주연, 루니
마라)가 며칠 전에 한국에서 개봉되었다. 영화에선 정신병원의 이름도 다르게 각색되었지만 주요한 줄거리는 거의 비슷하다. 이 소설을 완독한 후
영화를 감상한다면 나름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