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장동선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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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뇌과학자들과 의학자들, 생물학자들이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는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대뇌, 소뇌, 간뇌, 중뇌, 교뇌, 연수 .....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뇌는 마치 거울에 비친 거울과도 같습니다. 쉴 새 없이 분주한 우리의 뇌가 가장 많이 노력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고, 예측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우리의 뇌는 발달했거든요. - '한국판 서문' 중에서

 

 

 

 

 

 

우리의 뇌는 '사회적 뇌'로 진화했다

 

 

 

책의 저자 장동선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인간은 왜 집단에 소속되려 하는가?

영장류의 뇌의 크기를 그들이 함께 사는 집단의 크기와 비교해 보면, 거대한 사회 집단이 EQ(대뇌화 지수)에 유리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웃이 북적댈수록 생활은 더욱 복잡해진다. 구성원이 많은 집단에서는 남들의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고, 서로 도와주거나 또는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계략을 꾸며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최고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최악의 적이 되기도 했다. 이를 잘 해내려면 커다란 두뇌가 필요했던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의 주장에 의하면, 동료, 친구, 친지 들을 다 합쳐서 현재 우리의 뇌가 관리할 수 있는 구성원의 상한은 약 150명이다. 이 정도라야 잘 기억할 수 있고, 그들과의 접촉 (물론 친밀도는 다르겠지만)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서조차 우리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친구'의 수는 이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처럼 숫자 150을 넘어서면 우리 뇌에는 과도한 부담이 된다.

 

 

왜 자꾸 무능한 정치인이 당선되는가?

 

스위스의 심리학자 야쿱 사모호비에츠는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해 실험 참가자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정치가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각 인물들에게 '좌파'나 '우파'라는 정치 노선을 부여하도록 요청했다. 실제로 놀랍게도 적중률이 높았고, 각 실험 참가자의 입장과 대립되는 견해를 가진 정치가들에게서 특히 높았다. 그런데 사모호비에츠는 수정 작업을 통해 옷차림을 제거했었다. 오직 얼굴만으로도 모든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정치가들은 연설을 하고 선거 유세전을 펼치는 그 모든 힘든 노력은 그만두고 그냥 자신의 사진만 공고해도 좋을 것이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의 알렉산더 토도로프크리스 올리볼라 가 인물 사진을 근거로, 유권자들이 1초 안에 누가 얼마나 유능한지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를 기반으로 심지어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처럼 우리가 한 인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불과 몇 초 또는 몇 분 후에 이미 어느 정도 확정된다.

 

 

파워 포징 power posing


자신감을 주는 자세, '파워 포징'이라는 용어 이면에는 부작용이 없고 합법적인 데다 공짜인 '도핑(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약물)'이 숨겨져 있다. 슈퍼맨처럼 느껴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냥 그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기만 하면 된다. 다리 사이를 벌리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가슴을 내밀고, 팔을 허리에 대고 버텨라. 다만 지붕에서 날아 보려는 시도는 하지 말자. 이제 시작이군, 하고 생각한 당신은 강인하고 위험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느끼게 된다. 반대로 몸을 작게 만들면 정신도 움츠러들어 용기를 잃고 만다.


'파워 포징' 은 이미 일상에서 효력이 입증되었다. 만약에 시험, 면접 혹은 임금 협상 같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면 평소보다 더 자신감 있게 행동하라. 따라서 뇌는 명령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몸이 알려 주는 정보를 받아들여 정신 상태를 거기에 맞게 적응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것이 자기 자신의 몸인지 더 이상 명확히 인식할 수 없을 때는 힘들어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고무 손 환상 gummihand illusion'이란 실험을 살펴보자. 실험 참가자에게 탁자 앞에 앉아 두 팔을 탁자 위에 나란히 올려놓게 한다. 고무 손은 해당되는 원래의 손 옆에 놓아두고, 팔은 천으로 덮어 두면 된다. 실험 참가자는 언제든지 어느 손이 자신의 것인지, 어느 손이 고무로 된 것인지 볼 수 있다.

 

 

 
하지만 뇌는 이제 그에게 좀 다르게 설명할 것이다. 진짜 손과 고무 손을 붓으로 동시에 가볍게 쓸어내리면, 실험 참가자에게는 혼동이 시작된다. 정확히 동시에, 그리고 동일한 방향으로 진짜 손과 고무 손을 쓸어내린다. 오래지 않아 실험 참가자는 고무 손이 진짜라는 느낌을 받는다. 천으로 진짜 손이 보이지 않도록 덮어 두면, 뇌는 서서히 진짜 손을 잊어버리기까지 한다. 더구나 물리적으로 측정까지 가능하다. 숨겨진 진짜 손의 체온이 떨어지고, 접촉에 대한 감수성도 낮아진다.

 

면역반응도 높아진 것으로 드러난다. 실험 참가자에게 자신의 손이 어느 것인지 물어보면, 그는 아마도 고무 손을 가리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적인 효과를 일으키도록 커다란 바늘이나 망치를 가지고 고무 손을 찌르거나 내리칠 것처럼 해보면 곧 몸에 닥칠 통증에 대비하게 해 주는 뇌 중추에서 모든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실험 참가자는 즉각적으로 자신의 손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거의 모든 실험 참가자들은 놀라서 몸을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자신의 진짜 손을 빼낸다.

 
얼떨떨해진 뇌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 이상하다고 여길 것이다. 시각적인 정보(내 손처럼 보이는 고무 손)와 감각을 통한 확인(붓으로 쓸어내리는 느낌)만으로도 뇌는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게 된다. 이처럼 뇌가 얼마나 믿기 힘든 존재임을 이는 순간, 우리들은 놀랄 수밖에 없다.

 

 

편애는 합당하다?


최소 집단 실험minimal groups experiment, 이는 폴란드 태생의 영국인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이펠이 방학 야영장에서  실험 참가자들을 동전 던지기를 통해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고, 그들에게 여러 가지 과제를 수행하도록 시켰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서로를 전혀 몰랐고, 두 그룹 사이에 이렇다 할 차이점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몇 분 만에 자기 집단을 옹호하는 강렬한 감정을 키워 냈고 다른 집단을 멸시했다.

 

그들은 자기 팀 구성원들은 열렬하게 응원했고, 팀원들의 성과를 터무니없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에 그들은 상대 팀 선수들을 목이 터져라 야유하고 모욕했다. 더구나 구성원들 각자가 무작위로 뽑힌 그룹 일원이라는 사실 외에는 어떤 것도 그들을 단결시켜 주거나 갈라놓는 것은 없었다. 집단 사고따돌림은 아무런 근거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남들이 '남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자기중심적인 입장은 사실상 누구에게나 당연하다. 이처럼 집단은 우리들의 지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다수결은 실제를 정확히 반영하는가?

 

'다수의 환상majority illusion'은 실제의 상황이 잘못 반영된 모습을 보여 준다. 그 원인은 지역 주민들의 친구 관계의 규모가 불균등하다는 데 있다. 축구를 즐기는 사람은 지인이 얼마 되지 않지만, 야구를 즐기는 사람은 제각각 마을 주민의 절반을 알고 있다. 그리고 마을 주민의 절반은 적어도 야구팬 한 명을 알고 있고, 대부분은 심지어 여러 명과 접촉하고 있다. 이로써 야구를 애호하는 경우가 평균적인 축구 팬 한 사람의 견해보다 집계에 훨씬 더 자주 반영되는 셈이다.

 

 

 

야구팬들은 말하자면 의견 선도자opinion leader 들이다. 비록 그들의 수는 적지만 각자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알고 있고, 표결을 할 때 그 점을 고려에 포함시킨다. 그래서 소수가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행한 투표에서 다수를 이긴 것이다. 부당한 특혜나 매수도 전혀 없었고, 우리의 경우에는 결코 의도적이지도 않았다.


실제 생활에서 이와같은 다수의 환상이 현실을 왜곡해서 지각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보여 주는 하나의 예이다. 우리에게 제시되거나 우리가 직접 찾아내는 정보들의 조작된 선별이 더 자주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언론 매체들은 일상적인 일이나 보통의 경우에 관해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대신 언론 매체들은 비상한 일과 특수한 일을 전면에 내세운다. 때문에 일이천 명이 참여하는 외국인을 혐오하는 데모는 외국인과 난민들을 전혀 반대하지 않는 시민들 수천만 명보다 더 큰 관심을 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뇌는 자신이 모아 놓은 인상들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 여러 날에 걸쳐 텔레비전, 신문, 인터넷 사이트에서 외국인 혐오에 관한 보도를 끊임없이 접하게 되면 우리 뇌는 얼마 후에 예외의 경우를 정상 상태로 여기며, 그 나라를 외국인 혐오가 가장 심한 나라로 받아들인다. 얼마전 행해진 대통령의 탄핵도 이와 유사하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세뇌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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