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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일반판)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편지를 건네받은 반디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그마한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원고지를 꺼내 청년에게 건네줍니다. 물건을 받아든 청년은 곧장 집 밖으로 나갔고, 반디가 소장하고
있었던 그 원고는 지금 자유와 희망의 땅 대한만국에 와 있습니다. 북한의 저항 작가인 반디의 '고발'은 이제, 아름다운 반딧불이 되어 북한에
드리운 어둠을 밝히려 세상에 나가기를 기다리고 잇습니다. - '출간에 부쳐' 중에서
북녘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처럼 거칠어도,
병인처럼 초라하고
석기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다오
-반디
작가 반디는 북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으로 현재 북한에 거주하고 있다. 그의 필명인 반디는 '반딧불이'를 뜻하는 말이다.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 겪는 삶에
대한 일련의 이야기를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탈북자, 브로커 등 여러 사람을 통해 남한으로 원고를 반출시켰다. 이 책으로 인해 그는
'북한의 솔제니친'이라 불리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소설엔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탈북기'에선 우연히 아내의 피임약을 발견한
남편이 아내의 바람을 의심하던 중, 아내의 일기장을 몰래 보다가 마치 주홍글씨와 같은 출신 성분 때문에 빚어진 북한의 참혹한 현실임을 고발한다.
'유령의 도시'에선 외국인이 많이 초대되는 행사를 앞두고 덧커튼을 쳐야만 하는 어느 가정의 불편한 현실이
소개된다.
열성을 다바쳐 당에 충성했지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쓸모없는 쇠붙이 훈장들 뿐이라는
'준마의 일생', 노모가 위급하다는 전보를 세 차례나 받은 광부가 '1호 행사'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없어 발을 동동거리는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는 '지척만리', 몸을 숨길 곳이 없는 도로 한복판에서 '1호 행사'의 주인공인 김일성 행렬을 만난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루는 '복마전',
김일성 애도 기간에는 음주를 못하는데, 이때 발견된 빈 술병에 얽힌 보위부원인 아버지와 아들 간의 언쟁을 그린 '무대', 도내 된장 공급을 위해
온몸으로 충성을 바친 고인식이 오히려 이 성실성이 독이 되어 공개 재판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다루는 '빨간 버섯' 등의 순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신분차별국가,북한
남녀 평등은 고사하고 개개인의 신분이
마치 목장에서 키우는 소 등의 낙인처럼 몸속 깊숙이 찍혀버린 북녁 땅의 사람들에겐 출신 성분이라는 게 가혹하기만 하다. 단편 '탈북기'의 주인공
일철은 의사인 친구 상기에게 자신의 아내가 숨겨둔 의문의 약봉투를 전달하며 이 약의 정체를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이후 감정 결과가 피임약이란
사실을 전해듣고 크게 놀라게 된다.
처음엔 형의 어린 막내 아들을 끼고
사는 게 당연해 보였지만 결혼한 지 근 2년 여가 되도록 임신을 하지 못하는 아내가 그 약봉투와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일철은
이후부터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아내의 일기장을 몰래 들추면서 부끄럽게도 이는 기우였음을 깨닫는다. 그는 일기장에서
기계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근무하게 된 공장의 속보판에 '발명가 리일철 동무! 크랭크 자동대패 제작에 또 성공!'이라는 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환희에 벅찼다는 글과 남편의 입당을 위해 치근덕대는 아래층 부문당비서의 성희롱을 참아내야만 한다는 글을 읽어
내려갔다.
아내가 자신의 친구에게 부탁해 빼내온
집안 이력의 사본에 적힌 글을 보고서 결정적으로 아내가 왜 피임약을 복용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날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문영희가 꼭 한 달 만에 부탁했던 사본을 가져왔다. 차라리 안 보는 것이 좋았을걸. 내가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모르겠다"
리일철
계층별 - 149호
가족
평가 -
적대군중
아버지
리명수
일제시기 부농르호 당의 농업협동화
정책에 불만을 품고 원산시 ~군 ~리에서 논벼 랭상모에 대한 해독행위 감행.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처단.
어머니
정인숙
남편의 처단에 대한 불만과 화병으로
현 거주지에서 사망
나는 사본을 쥔 손으로 나도 모르게
내 아랫배를 더듬었다. 거기서는 지금 결혼 후 뒤늦게이긴 하지만 새 생명이 움터 자라고 있었다. 부끄러워 아직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
다행 중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 생명을 낳을 때 그 생명이 복되기를 바라서이지 한뉘를 가시밭을 헤쳐야 할 생명임을 안다면 그런
생명을 낳을 어머니가 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 '5월
23일 일기' 중에서
자유로운 여행은
불가능하다
광부로 일하는 명철 앞으로 고향에서
'모친병 위급 급래'라는 전보를 연거푸 석 장이나 날라왔다. 이번에 가지 못하면 생전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할 것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두 차례나 여행증명서 발급이 부결된 터라 노심초사하며 또 전보를 내밀었다. 이를 본 취급자는 상부의 지시로 증명서 발급을 제한하고 있다고 외려
큰 소릴를 쳐댄다.
본디 명철은 군복무가 끝나면 귀향해서
농사일을 하려 했었다. 고향엔 사랑을 약속한 처녀가 있었고 농장원에 메인 어머니를 곁에서 모실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제대 후 집단배치 명령을 받아 검덕산의 광부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가려고 별별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겨우 고향 처녀를 이곳으로 데려오는 것 말고는.
내가 무슨 죄를
졌게?… 도둑질을 했나, 살인을 쳤나?… 내 나라 내 땅에서 어머니 병문안 가는 게 이리도 죄란 말인가,
이리도!(130쪽)
더 이상 정상적으로 고향 가기가
어렵자 그는 무작정 길을 나섰다. 운좋게 영삼의 도움으로 네 차례의 증명서 검열을 피했지만 영삼의 하차로 인해 이젠 검열을 피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 그는 단속자의 눈을 피해 열차 의자 밑으로 숨어들었다. 퀴퀴한 냄새를 참고 있는데 한줄기의 전등 빛이 찾아들면서 "증명서"를 외치는
소리가 위에서 들렸다. 이때 열차 안이 갑자기 정전되는 바람에 그는 얼른 다른 칸으로 건너가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 냄새가 진동하는 화장실에서
숨기를 하면서 무사히 목적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통행증도 없이 역까지 왔지만 집으로
가는 도중에 보초소에서 걸리고 말았다. 군안전부 노동단련소로 끌려가 22일 간 마소처럼 일을 한 뒤 석방되어 고향집에 가보지도 못한 채 다시
광산 인근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아내는 명철의 아픈 상처를 헤아리고 다시 증명서 발급을 받아 가면 된다고 위로한다. 다음날, 우편통신원이
열린 창문으로 전보를 들이밀었다.
'모친
사망'
하나하나 아픈
사연들
소설은 북한의 사회주의제도의 문제점을
하나둘 끄집어 내어 실제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대변하고 있다. 21세기에 출신 성분으로 사람들을 구분하여 충성을 강요하는 독재 정권의
전말은 물론이고 이 낮은 성분 때문에 자식을 낳지 않으려하는 일철의 아내 이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곧 죽을 것같은 예감 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고 어머니를 찾아간 명철은 결국 군안전부 보초에 제지당하고 나중에 사망 소식을 전보로 접한다. 이렇게 통행이 자유롭지 못한 나라가
지구촌에 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