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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두기 -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힘
임춘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 가까워지면 휩쓸립니다. 휩쓸리면
정신없고 괴롭죠. 그렇다고 너무 멀어지면 소외됩니다. 소외되면 쓸쓸하고 불안하죠.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요? 현미경도 쓰고 망원경도 쓰면서, 숲도 보고 나무도 보면서, 스스로 중심 잡고 잘 살 수는 없을까요? SNS로 정보와 뉴스들이
폭발적으로 밀려들어옵니다. 거기 휩쓸려 내 일상생활이 유지가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든 사건이든 정확히 판단하려면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지지 않고, 사실여부를 몰라서 혼자 속 끓이지 않습니다. 나와 너 사이에, 나와 세상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면, 정말로 우아하면서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은 그런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저자 임춘성
교수는 미국 뉴저지 럿거스대학교 교수를 거쳐 지금은 연세대학교 정보산업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여 년간 대학생,
대학원생들의 선생으로 살아온 공학자다. 세상이 어렵고 관계가 서툰 학생들과 젊은이들을 보며, '그때는 나도 그랬지', '그때 누가 나에게 이런
얘기를 좀 해주었더라면 덜 상처받고 덜 헷갈리고 덜 헤맸을 걸'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공학자의 안목으로,
급변하고 다변하 는 세상에 대응하는 개인의 전략을 다루는,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의 유명 강좌인 '테크노 리더십'을 다년간 강의하고 있다. 그는 이미 <매개하라>에서 인문과 사회, 경영과
기술을 아우르는 독특한 내용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이밖에도 다수의 전문서, 논문 그리고 주요 신문사의 칼럼을
집필했다.
세상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는 나와 너, 우리가 추구하는 일과 사랑, 목표와 가치에
좀 더 심플하고 명료하게, 공학자의 시선으로 접근해본다. '휘둘리지 않으려면, 버림받지 않으려면, 치우치지 않으려면, 손해 보지 않으려면,
상처받지 않으려면, 책임지지 않으려면, 홀로되지 않으려면, 꼴통 되지 않으려면'이라는 8가지 인생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세상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사실 우리가
'우리' 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관계가 있어 내 앞에 다가왔고,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내
곁에 깊이 들어오는 사람들입니다. 주변에 있는 그들의 대다수는 악마도 악녀도 아닙니다. 물론 천사도 아니겠지요. 그저
나처럼 악마와 천사 사이의 ‘중간계’에 살고, 한 번씩 악마도 되고 천사도 될 뿐입니다. 서로 공감하다가, 그리하여 거침없이 우리, 우리
하다가도 한순간에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우리네 사람들일 뿐입니다. 나와 같지만 나와 다르고, 나와 다르지만 나와
같은 이 오묘함이 세상을 어렵게 만듭니다.(19-22쪽)
연인 사이에서 감정 대립이나 갈등이 생기면 흔히 이런 말을 한다. "당분간 서로 거리를
좀 두고 지내보자"고 말이다. 하지만 이 거리라는 말이 참으로 묘한 것이다. 지척에 머무는 짧은 거리일 수도 있지만, 요단강을 건넌 것처럼 영영
이별을 뜻하는 먼 거리일 수도 있다. 이 결과로 인해 당사자인 연인은 아픈 만큼 더 성숙해질
것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비록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노자>에도 이런 말이 있다. "천망회회소이불루天網恢恢疎而不漏" 이는 '하늘의 그물이
비록 듬성듬성할지라도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살면서 이와같은 연결의 끈을 밀어보기도 하고 당겨보기도 한다.
밀어낸다면 너무 멀어지고, 당기면 너무 가까이 들이댈 것이다. 이렇게 사람과의 사이는 정말 어렵다. 이에
저자는 이런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힘에 관해 여덟가지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휘둘리지 않으려면
요즘 누가 당신을 휘두르나요?
그들의 질타에 의기소침해지고, 그들의 지적에 인생의 목표를 바꾸기도 하나요?
그들이 나를 평가하게 하고, 그 평가에 의존하며 살고 있나요?
혹시 나의 하루가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의해 좌지우지되나요?
곰곰이 생각해보자. 아마도 이미
상당히 많은 경우에 휘둘리고 있을 것이다. 무릇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서 비록 성직자라 하더라도 그중에는 흉악한 모습이 들통나기도
한다. 하물며 세속인인 우리의 애인, 친구, 부모, 스승 등이 항상 선하고 훌륭하기만을 기대하긴 어렵다.
조선조 중종의 두 번째 왕비
문정황후, 그녀는 전처의 자식이 세자로 책봉되어 왕위를 계승한 인종이 되자 어린 왕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결국 인종은 다음 해에 죽고 만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의 권력욕은 친아들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명종은 무려 20년 간 허수아비 왕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절대선 중의 하나인 효심을 악용한 그녀가 휘두른 대상은 비단 두 명의 왕뿐만 아니라 국가와 백성에게까지
미쳤다.
치우치지
않으려면
인간은 소유욕이든 성취욕이든,
무언가를 끊임없이 채워가는 존재이다. 무론 이런 인간의 본성을 문제라고만 할 순 없을 것이다. 오히려 권장할 만한 것이다. 성취욕구와 소유욕구가
없다면 인간의 노력은 멈추고 더 이상의 성장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학에서는 이런 욕구를 부추기까지
한다.
문제는 지나치게 과욕을 부렸을 때
발생한다. 일 때문에 사랑을 등한히 하고, 사랑에 빠져서 일을 망치면 문제이다. 사고와 마음가짐, 신체와 몸가짐 모두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즉
모으고 채워가고 쌓아가는 것들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체조선수를 보라. 평균대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우아하게 연기를 펼친다. 수원
민속촌에서 외줄타기 묘기를 펼치는 달인을 보라. 그는 부채를 들고 몸의 균형을 잡는다.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는다. "절대로 치우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손해보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이 정도면 됐지'
사람들은 제각각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기준치가 있다. 이것의 높고 낮음에 따라 삶에 대한 태도가 확실히 달라진다. '이 정도는 되어야지'와
'이 정도면 됐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스스로에게 설정한 기대치가 너무 높은 사람은 힘들게 살아간다.
기대치에 도달하려고 자기 자신을 들들 볶는다. 그렇다고 기대치가 지나치게 낮은 것도 안 좋다. 노력하며 발전하는 모습이 없는 사람은 매력적인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손해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손해 보았다는 느낌이 들면 더욱 마음을 상하게 한다. 마치 자기 자신이 바보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기대하는 만큼 받아야 손해 본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기대하는 만큼'이라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상대와 주고받는 것이 대충 맞고, 서로 기대하는 바가 얼추 맞아 떨어져야 손해 보지 않는
관계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기대치, 수준, 눈높이를 조정하고 맞추어야 한다. 그러자면 나와 남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그 사이에 상식, 표준,
룰을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적정한 눈높이 관리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꼴통되지
않으려면
자기만의 생각, 자기만의 입장에
매몰되어 스스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들은 '꼴통'이라고 한다. 세월과 시간의 힘은 우리 모두를
꼴통으로 변하게 한다. 물론 종종 젊은이들 중에서도 꼴통이 보인다. 홀로만의 룰로 철갑옷을 만들어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닫은 사람은 나이를
떠나 비록 젊더라도 꼴통인 것이다.
꼴통은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충실한
사람이다. 자신의 원칙과 법칙이 너무 소중하고, 자기의 시각과 시야에 너무 빠져 있다. 거기서 나와야 한다. 빠져나와 스스로를 조금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마치 딴 사람을 응시하듯이 말이다. 바로 균형잡힌 객관적인 시각인 것이다.
물론 나와 남은 엄연히 다르다.
'나와 남은 다르니 나는 그냥 나의 길을 가련다'는 식으로 마이웨이를 외친다면 정말 꼴통이 된다. 마음을 열고 때로는 가슴을 활짝 열어야
새로움이 찾아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필요 없다. 그냥 내 위주로 속 편히 살겠다'라고 말하고 싶은가? 그러면 결국 꼴통이
된다.
우아하게 살아가자
인생의 거의 모든 문제는 '거리
조절'에 실패햇을 때 벌어진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중심을 잡고 우아하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