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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왓칭 수업
김상운 지음 / 움직이는서재 / 2016년 12월
평점 :
직장이란 곳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곳입니다. 내게 너무나 소중한 곳입니다. 그런데,
직장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상사, 부하직원, 고객, 거래처라는 이름으로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왓칭'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분라히게 된다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 '인트로'
중에서
내 상처를
치유하자
직장인의 하루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들은 대부분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 쉼 없이 돌아가는 업무의 연결고리를 중간에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 때문에 이를 감내하면서 살아간다.
더구나 불쑥불쑥 가해지는 상처 또한 당연한 인간관계의 부산물 정도로 여기게 된다.
직장인들 대부분이 흔히 내뱉는 말이 '목구멍이 포도청'일
것이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 자리잡기에 아픈 상처들의 치유는 뒷전인 채 가족들의 생계만이 최우선인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 속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 마치 아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는 마음의 병이
되고 나아가 몸의 병으로 발현된다.
이 책의 저자 김상운은 언론인으로
2011년 양자물리학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설명한 그의 책 <왓칭>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많은 사람을 영적 세계에 눈뜨게
하는 안내자가 되었다. 왓칭으로 출발하여 깊은 명상의 세계로 옮겨간 명상가이기도 하다. 30여 년 넘게 MBC에서 근무하면서 그도 수많은 상처를
받아왔다.
이에 그는 왓칭을 통해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한 경험에서 출발하여,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받게 되는 여러 가지 상처와 감정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이 책에서
전하고 있다. 누구나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지만, 한편으론 우리 모두 신神으로부터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부여받았음을 일깨워준다.
왜 왓칭을 해야
하는가?
저자가 말하려는 '왓칭watching'이란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를 통해 자기 자신의 모든 것, 즉 감정, 몸, 지능, 행동 등을 자기
자신과 분리시켜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왓칭'한다는 것을 가장 쉽게 표현하자면, 자신의 부정적 생각이나 감정을 마음의 공간
속에 띄워 놓고 바라본다는 의미다.
우리들은 삶에대한 근원적인 질문, 즉 '나는 누구인가?'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철학자들의 고견을 책으로 도움 받는다. 저자도 동일한 질문을 앞두었을 때 공교롭게도 철학자가 아닌 아인슈타인이
그에게 강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우주의 근원을 명상하는 눈빛을 보면서 단순히 과학자가 아니라 영성자임을 알게
되었다.
이때 저자는 양자물리학을 통해 '왓칭'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꾸준히 실행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자리 잡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왓칭이 점차 명상의 세계로 발전해 나가는
경험을 했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자 자신의 시야가 점점 밝아지면서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는 일이 사라졌고, 내성적인 성격도 바뀌었고, 인생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면서 마음 속에 평화가 깃들었다.
사진의 왼쪽은 일본에서 1991년 이후 히트 상품으로 자리잡은 '하격 사과'이다. 링본
아오모리현은 사과 산지로 유명하다. 1991년 몰아닥친 태풍 때문에 마을 전체의 사과 중 90%는 떨어짐에 따라 농사는 완전히 망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떨어지지 않은 10%의 사과에다가 이들은 아이디어를 떠올려 '합격 사과'라고 명명하고 10배의
가격을 책정해 팔았던 것이다. 이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에 따라 현시로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퀴즈가 나간다. 우측 사진은
할머니일까, 아가씨일까?
'생각 =
에너지'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각이 만들어내는 애너지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도, 나무도, 건물도 세월이 흐르면서 늙어간다. 그런데 모든 에너지는 진동하기 때문에 제각각 고유의 주파수가 있다. 모든 에너지는
생각의 산물이다. 따라서 생각을 바꾸면 에너지의 흐름도 바뀐다. 자신이 품은 생각과 같은 주파수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거다. 상처를
많이 받게 되면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저장되고 현실도 부정적으로 변하기 쉽다.
현실은 내 마음의 공간에서 상영되는
영화
이는 저자의 직접 경험이다. 회사 차로 출근하던 어느 날,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장면들이
마치 영화처럼 느껴졌다. '아, 영화 같구나!'라는 생각을 몇 번 반복해서 하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왜 저 장면들이 영화처럼
느껴질까?'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공간은 정지되어 있고, 정지된 공간 속에서 각 장면이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느낌었다. 정말 이상했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영화 속 장면들은 정지된 스크린 속에서 쉼 없이 흘러간다. 차창 밖의 장면들도 영화처럼
끊임없이 흘러간다고 느껴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바라보는 가로수는 어제의 가로수가 아니다.
어제보다 하루 더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세포가 죽었고, 새로운 세포가 생겼다. 오늘 나무가 흙에서 빨아들이는 물도 어제와 다른
물이다. 오늘 나뭇잎들이 호흡하는 공기도 어제와 다른 공기이다. 건물도, 공원도, 거리도 어제의 공원이 아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장면이
정말 영화처럼 흘러가는 것이 맞구나!', 그는 순간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물질 주파수 vs 공간
주파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 아인슈타인
저자는 우리들에게 짊어진 인생살이의 짐이 스스로 너무나 무겁다고 느낄 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 자신의 인생 전체를 큰 공간에 띄워놓고 멀리서 바라보라고 권한다. 그렁다. 아주 멀리서 바라보면 연속적인
상들이 만들어내는 한편의 작은 영화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렇게 아주 멀리서 큰 눈으로 바라볼수록 마음의 공간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는 것이다. 신의 마음과 하나가 돼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온갖 우울한 생각들은 저절로 사라지고, 이미 써진 영화의 각본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제 우리들은 각본대로 살아가는 영화 속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각본을 마음대로 선택하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주파수에
따라 내 현실이 달라진다"
절망이 찾아올 땐 절망에 주파수를
맞추지 마세요. 대신 절망이 태어난 무한한 공간의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세요. 슬픔이 스며들 땐 슬픔이 태어난 무한한 공간의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세요. 상처로 아플 땐
상처가 태어난 무한한 공간의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세요. 절망도, 슬픔도, 상처도 무한한 공간에서 태어나 무한한 공간으로 사라지는 에너지의
흐름입니다. 그 흐름을 가로막아 그 속에 휘말려 들지 마세요. 대신 옆으로 몇 발짝 비켜서서 흘러가는 걸 가만히
바라보세요.
왓칭
솔루션
부정적 감정이 생긴 원인을 이해하는 순간 빨간불이 켜놓은 '위험' 신호는
해제된다. 물론 직장에서는 원시시대와 같은 물리적 위험은 거의 없다. 대부분 '상사가 나를 무시한다', '남에게 뒤처진다', '잘릴지 모른다'
등과 같은 심리적 위험이다. 하지만 원시적 두뇌는 정신연령이 아주 낮아서 심리적 위험에도 물리적 위험처럼 반응한다. 원시적 두뇌를
'아미그달라'라고 부른다.
'후배가 나보다 연봉을 더 받아 기분 나쁘다', '팀장과 후배의 꼴도 보기 싫다',
'지방대라 차별받는 거 같아 초라하게 느껴진다', '회사에 다니기 싫다' 등등 이 생각들이 마음의 공간에 떠오르는 대로 하나씩 가만히 바라보라.
영화관의 스크린에 필름의 사진들을 투사하듯, 마음속 생각들을 투사해보는 거다. 이제, 공간을 점점 넓혀보자. 그 생각들이 '나'일까?
아니다. 마음속에 구름처럼 드나드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그런 생각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괴로워했던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는 여러
자아가 있다. 여러 자아 가운데는 끊임없이 '남의 비위를 맞춰주는 자아(pleaser)',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밀어붙이는
자아(pusher)', 끊임없이 난 못났다고 생각하는 '비판적 자아(innercritic)', 상처받기 쉬운 '내면의 어린아이(inner
child)' 등이 함께 들어 있다.
이 많은 자아가 바로 생각 에너지자체들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힘센
자아가 우리 마음의 표면 위에 올라와 나인 양 행세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 마음속 전체를 넓은 눈으로 들여다보게 되고, 어느 한 가지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게 된다. '아, 여러 자아 가운데 남의 비위를 맞추고자 하는 자아의 힘이 너무 강하구나! 그래서 남의 눈치를 보게
되는구나!'라고 말이다.
내 마음은 이 모든 자아를 멀리서 넓은 시야로 지켜보는 관찰자이다.
직장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직장은 바뀔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
직장이 내 인생의 전부라 여기면 거기에 매달리게 된다. 시야가 아주 좁아진다. 점심을 먹는 것처럼 아주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는다. 시야가
좁아지면 마음의 공간도 몸으로 작아진다. 온갖 스트레스가 몸에 쌓일 수밖에 없다. 내면을 바라보자. 그 속에 빛이 있음을. 모든 직장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