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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벨 ㅣ 퓨처클래식 6
캐슬린 윈터 지음, 송섬별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나무에 이름을 붙여버리면 이 나무가
정말로는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남성이나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든 웨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이것 아니면 저것,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나뉘었고, 동시에 상대편으로부터는 버려진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자아내는 외로움이 거리를 둘로 갈라놓았다. 반쪽으로 나뉜 이 거리의 사람들은
웨인이 그 틈새를 걸어 다니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두고 볼 수 있을까, 그를 괴물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을까. - '본문'
중에서
성 정체성을 놓고 번뇌하다
작가 캐슬린
윈터는 영국계 캐나다인으로 1960년 영국 동북부 게이츠헤드 자치구 교외의 빌 키에서 태어났으며, 캐나다
뉴펀들랜드&래브라도에서 자랐다. 미국 최장수 어린이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 Sesame Street'의 각본을 썼고, 이후
'텔레그램 The Telegram'에서 칼럼니스트로 활약했다. 그녀의 데뷔작인 단편집 <boYs>는 2007년 캐나다에서 윈터셋 상을
수상했다. 2010년 출간된 첫 장편 <애너벨>은 토머스 H. 래들 소설상을 수상했고, 그해 스코시아뱅크 길러
상을 비롯해 여러 문학상에 최종 후보로 오르며 독자와 평단의 열렬한 주목을
받았다.
1968년 3월초, 캐나다 래브라도
해안 동남쪽의 작은 마을 크로이든 하버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아버지 트레드웨이 블레이크는 래브라도 토박이로 매우 자상하고 친절한 마음씨를
지닌 스코틀랜드 혈통과 이누이트 혈통의 사람이었다. 엄마 재신타 블레이크는 세인트존스 출신으로 이곳에 학교선생님으로 부임했었다. 이들 부부는
마치 한 쌍의 원앙처럼 금슬이 매우 좋았다.
이 마을의 출산 풍습은 전통적으로
아기 엄마가 여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아기를 분만한다. 수중 분만으로 태어난 아기를 엄마 재신타의 절친 토마시나가 받는다. 그런데, 이 아기는
남몰래 간직해야 할 비밀을 지닌 채 태어났다. 아기는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성기를 동시에 갖조 있었던 것이다. 현장에서 이를 알아챈 사람은
재신타와 토마시나 둘 뿐이었다. 그리고 둘은 한 동안 이 비밀을 지키기로 한다.
그러나, 재신타와 토마시나 둘만이 아는 이 비밀의 생명력이 영원할 수가 없다. 결국
아버지 트레드웨이도 이를 알게 되고 마치 책표지에 등장하는 화초 안시리움의 꽃처럼 소설의 주인공 웨인 블레이크는 성장하면서 수많은 번뇌와
마주하게 된다. 안시리움의 꽃말이 '꾸미지 않는 아름다움', '번뇌' 등임을 알게 된 순간 이꽃을 등장시킨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웨인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이 소설의 가슴 아픈 재미이다.
"담요를 추수르면서
토마시나는 가만히 아기의 한쪽 고환을 들어올려 그 아래에 있는 음순과 질을 확인했다"(28쪽)
소설은 총 4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에서는 웨인의 출생과 남자 아이로 키워지는 내용을, 제2부에서는 웨인의 학교생활과 자신의 몸이 남과 다름을 느끼는 것을 다루고,
제3부에서는 토마시나가 학교선생님으로 부임하고, 배가 아픈 웨인이 병원에서 진찰 결과 생리혈이 고여 있고 나팔관에 태아가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독립한 웨인이 도시인이 되어 여자의 삶을 살면서 겪는 일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설의 작가는 성Gender를 탐색하려는 시도를 한다. 즉 우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무엇이 우리를 남성 또는 여성으로
만드는가?"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 웨인 블레이크의 삶과 관련하여 외로움, 소속감, 가족 그리고 용기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아주 적은
주민들이 사냥과 낚시로 생계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지닌 외딴 곳이다. 본래의 토착민들이 유럽에서 넘어와 정착한 사람들의 후손과 함께
강, 숲, 해안, 산을 나누어 쓰고 있으며, 일년 중 여덟 달은 추운 날씨임에도 이곳 사람들 사이에는 따스한 기운이 맴돌고
있다.
산파 역할을 맡았던 토마시나는 하필 그 무렵 비버
강에서 남편과 딸을 한꺼번에 잃는다. 딸과 함께 사냥에 나섰던 남편은 맹인이다. 그런 아버지를 돕겠다고 따라나섰던 딸이 도중에 카누에서 일어서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배가 전복되어 익사하고 말았다. 사실 맹인이었기에 남편은 살면서 헤엄칠 일이 단 한 번도 없었고, 헤엄을 칠 줄도 몰랐기
때문에 변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서른이 넘은 노처녀 나이임에도 그레이엄 몬터규의
계속되는 청혼을 거절할 수 없어서 토마시나는 그와 결혼해 슬하에 딸 애너벨을 낳았다. 남편은 뭐든 고칠 줄 알고 추운 집에 불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고, 사냥을 나갔을 땐 동료들보다 맨 먼저 귀가하는 사람으로 아내의 도움이 꼭 필요한
남자였다.
한바탕 작은 소동이 지나고,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지닌 자식을 트레드웨이는 '아들'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아기에게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와서 '웨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야기의 주인공 웨인 블레이크는
이렇게 태어났다, 아니 만들어졌다. 반면 진정한 친구인 토마시나는 아이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상호보완하면서 비밀스런 힘을 띤 것이라 생각되어
웨인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녀는 웨인에게 죽은 딸의 이름 애너벨을
준다.
"만약 페니스가 이 눈금에 닿거나 그보다 크다면 진짜
페니스로 봅니다. 만약 수치에 미달한다면 클리토리스로 보고요. 만약 남성기가 1.5센티미터가 안될 때 오차 범위는 칠백 분의 일 센티미터로
봅니다. 오차가 이보다 작다면 남성기를 제거하고, 나중에 사춘기가 오면 여성기를 만들어
넣어야지요"
정확하게 1,5센티미터로 측정됨에
따라 의사는 아들로 살아도 된다고 말한다. 희비가 교차되는 장면이다. 예쁘게 차려 입고 곱게 화장한 딸의 모습을 상상하던 아내 재신타는 아쉬움에
고개를 떨구어야 했고, 남편 트레드웨이는 자신의 선택대로 아들로 키울 수 있다는 기쁨에 환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점차 웨인의
몸은 여성을 닮아간다. 더이상 호르몬 치료로 남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갑자기 배가 아파 병원을 찾은 웨인에게 의사는 생리혈이 고인
탓이라고 진단한다. 이후 웨인은 남성을 버리고 여성으로 사는 삶을 꿈꾸지만 결국엔 자신에겐
그 어떤 선택도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우리들이 흑백논리로 모든 일을 판단한다면 당연히 '남과 여'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양성兩性을 가진 사람은 '장애'로 해석하게 될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에도 양성인의 존재가
나타난다. 물론 이들은 곱지않은 시선의 희생자로 살아가야만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토마시나가 웨인에게 이를 장애가 아닌 '또
다른 질서'라고 말해주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책 표지의 등장인물을 자세히 살펴보라. 분명히 여성의 모습인데, 목부분이 예사롭지 않다.
여성의 목이라고 보기엔 많이 굵고 목젖도 뚜렷하다. 이 사진과 함께 화초 안시리움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메세지를 준다. 하나의 모습에 둘이 보이는
것이다. 양성인과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을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애너벨은 웨인 자신이었지만, 가질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