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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ㅣ 브런치 시리즈 3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6년 11월
평점 :
<세계문학 브런치>에서 소개하는 책들은 전문가들이 흔히 '정전正典'이라고 부르는, 서구 문학의 기본이자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텍스트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부터 셰익스피어의 희곡, 빅토리아 시대 영국 소설과 근대 러시아 문학, 그리고 상징주의 및 주지주의 시 운동의 성과물까지, 여기서 언급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본래의 예술성과 함께 최소 수십 년, 최대 수천 년간 인류의 집단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온 문자 그대로의 고전들이다. - '서문' 중에서
맛있는 세계문학으로 초대하다
저자 정시몬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딱히 장르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책을 기획, 집필하거나 좋은 책을 소개하고 번역하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이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보다는 책만 읽다가 결국 간서치看書癡가 되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늘 어디 한적한 곳에서 책이나 실컷 읽고 글도 쓰고 음악도 들으며 유유자적 사는 것이 꿈이었지만 희망과는 달리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대학을 마친 뒤에는 팔자에도 없던 공인 회계사 및 공인 법회계사 자격을 취득하여 기업 회계 감사, 경영 진단, 지식 재산 관리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그럼에도 책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 해 한국에 출장을 나왔다가 우연히 지인을 통해 출판사를 소개받아 진짜 '북스' 몇 권을 출간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저서로는 인문학 브런치 시리즈인 <세계사 브런치>, <철학 브런치> 외에 변호사 친구와 함께 써 호평을 받은 법률 교양서 시리즈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 등이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문학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문학의 맛깔스러운 맛이나 재미에 관한 책이란 표현이 올바를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이 문학 작품의 독서를 통해 느끼는 재미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다. 소설이나 희곡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심리, 기질, 행동 패턴이나 인간 관계와 함께 사건의 전개 과정을 따라가는 스릴과 호기심을 맛보며 마치 자신이 극중의 인물인 듯 그 속에 푹 빠지기도 한다.
또 어떤 독자는 언어가 지닌 미학美學, 즉 표현에 매력을 느끼고 정교한 묘사나 서술에 대해 감탄하거나 심금을 울리는 감동에 스스로 젖어들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바라기가 되어 중독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에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어려운 역경을 헤쳐나가는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도 있다.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장르별, 주제별로 마치 일곱 가지 코스 음식을 즐기는 기분이 든다. 이와같은 코스를 즐기다보면 우리들은 소설, 희곡, 시 등을 쓴 오십여 명의 작가를 만날 수 있는 24가지의 메뉴를 만나게 된다. 저자는 이를 '브런치'라고 명명하면서 우리들은 소문난 맛집으로 초대하고 있다. 사진이나 그림을 곁들이면서 현장감이나 이해력을 높여주고, 인물들의 설명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경험하게 하며, 원전인 영문을 함께 실음으로써 우리들의 지식을 더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가 추구하는 목적은 결국 맛있는 인문학의 섭취로 귀결된다.
첫 번째 브런치 메뉴는 고전 <일리아스>이다. 작품 속의 많은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매우 입체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가령 헬레네가 전남편 메넬라오스와의 결투에서 쩔쩔매다 아프로디테 여신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돌아온 파리스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한번 보자.
"그래서 당신은 싸움에서 돌아왔군요. 차라리 당신이 한때 내 남편이었던 그 용감한 사내의 손에 쓰러졌으면 좋았으련만. 당신은 맨손과 창으로 싸우면 메넬라오스보다 뛰어나다고 떠벌리곤 했죠. 그럼 가세요, 가서 그에게 다시 도전하세요―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러지 말라고 권해야 하죠. 왜냐하면 당신이 어리석게도 그 사람과 일대일 결투에서 마주한다면 곧 그의 창날에 쓰러져 버릴 테니까요"
전남편에게 완패하고 망신을 당한 채 돌아온 현남편 파리스를 못마땅해하면서도 그렇다고 멍청하게 또 도전하지는 말라며 걱정하는 아내 헬레네. 만약 이 대목에서 그녀가 지금 낲편 파리스를 마냥 비겁자로 조롱했다든가, 반대로 아무런 불평 없이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을 기뻐하기만 했다면 일차원적인 캐릭터로 남아 버렸을 것이다. 이렇듯 생생한 전투 장면이나, 고대인들의 일상에서 정말 있었을 법한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입체적 심리 묘사 등은 모두 <일리아스>를 고전 중의 고전으로 만드는 힘이다.
다음 메뉴로 괴테의 <파우스트>를 골라보자. 이 작품의 주인공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대신 지상의 모든 쾌락과 지식을 얻는 거래를 하게 된다. 존경받는 학자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전제는 사실 괴테의 순수 창작이 아니라 중세 말 유럽의 실존인물을 다룬 '파우스트의 전설'에서 따온 것이다.
비록 악역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슨 먹는 것도 아니고 무려 한 사람의 영혼을 놓고 장난치려 드는 메피스토펠레스는 대놓고 미워할 수만도 없다. 그는 같은 악마의 족속임에도 사탄이나 타락 천사 루시퍼 등과는 좀 다른 캐릭터다. 심지어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악마, 파이팅!" 하고 응원하게 되는, 독자와 악역 캐릭터 사이에 스톡홀름 증후군 비슷한 심리까지 생길 지경이다.
왜 그런 느낌이 들까? 우선 메피스토펠레스는 비단 파우스트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 가려운 곳을 골라 팍팍 긁어 주는 존재다. 즉 우리가 한번쯤은 생각해 봤지만 체면이나 주변 분위기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그런 맥락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처음 접근했을 때 정체를 밝히라고 다그치는 파우스트에게 내놓는 답변이 걸작이다.
파우스트 그럼 너는 누구냐?
메피스토펠레스 나는 항상 악을 탐하면서도 언제나 선을 행하는 힘의 일부입니다.
사기꾼이 스스로를 사기꾼이라고 소개하는 법은 없다. 하지만 "나는 메피스토펠레스라고 합니다. 직업은 악마죠"라고 하는 것보다 위의 대답은 얼마나 시적詩的인가? 악을 추구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선을 낳는다는 표현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숨은 본성과 욕망에 호소하는 어두운 힘이 바로 악마의 특기인지 모른다.
이번엔 추리소설을 맛보도록 하자. 지금도 뮤지컬, 연극, 영화 등으로 만들어지는 셜록 홈스 시리즈는 추리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범죄 현장에 있는 제한된 단서를 분석해서 사건의 인과因果를 풀어내는 홈스의 추리는 너무나도 유명해 '홈스식 추리법'이라는 용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그의 추리력이 마치 독자들에겐 마술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에겐 하나의 기술에 불과하다.
셜록 홈스의 추리력과 관련하여 <실버 블레이즈의 모험>에 등장하는 "밤 시간 개에게 일어난 수상쩍은 상황(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또한 오랫동안 서구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아 온 표현이다. 추리력과 개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유명한 경주마 실버 블레이즈의 사육사가 살해된 사건을 조사하던 홈스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던 밤 마구간을 지키던 개가 짖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사건 관계자 중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단서와 관련해 런던 경찰청에서 파견된 그레고리 경사와 홈스 사이에 나누는 대화를 잠깐 감상해 보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만한 사항이라도 있나요?"
"밤 시간에 개에게 일어난 수상쩍은 상황을 생각해 보시죠"
"밤에 개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요"
"그게 수상쩍다는 겁니다" 홈스가 말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옛 속담을 생각해 보자. 연기가 난다는 것은 불을 지피는 일에 의한 결과물이다. 거꾸로 풀어 보면,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면 밑에서 불을 지피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실버 블레이즈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개는 낯선 사람을 보면 짖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나던 밤 개가 짖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거나 아니면 뭘까? 이 대목부터 홈스의 추리력은 번뜩이기 시작한다.
셰익스피어를 빼고서 연극을 논할 수 있을까? 그의 희극 중 현대 연극 무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게 바로 <뜻대로 하세요>이다. 이 제목의 의미는 작품 속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고, 독자나 관객들이 원하는 대로 즐기고 해석하라는 그런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작품 속에서 형에게 재산을 다 뺏기고 낭인 신세가 된 올랜도, 동생 프레데릭 공작에게 영지를 뺏기고 밀려난 태공의 딸 로절린드 사이에 벌어지는 연애사가 소재인데, 많은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설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에는 숲 속으로 망명한 태공을 따라다니며 매번 중요한 순간에 썰렁한 대사를 읊어 흥겨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썰렁맨' 자크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가 2막 7장에서 중얼거리는, "세계는 하나의 연극 무대(All the world's a stage)"로 시작하는 독백 또한 셰익스피어 대사의 백미로 꼽힌다.
세계는 하나의 무대요,
모든 남녀는 배우일 뿐.
사람들은 저마다 퇴장과 등장이 있고,
살아가는 동안 여러 배역을
일곱 시절에 걸쳐 소화하죠.
이어서 그는 아기 역부터 시작되는 일곱 역할을 각각 묘사하는데, 학생, 연인, 군인을 거쳐 커리어와 허세를 좇는 중년과 장년의 배역을 소화하고 나면 끝으로 노년이 온다. 인간이 그 마지막 일곱 번째 배역을 어떻게 마무리 짓는지 보자. 심히 우울하다.
이 이상하고 파란만장한 역사를 끝맺는
최후의 장면은
두 번째의 철없는 아동기, 그리고 다만 망각뿐이죠,
이도 없이, 눈도 없이, 입맛도 없이, 아무것도 없이.
자크에 의하면 사람은 이렇게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7단계의 변신 연기를 시행하는데, 그래 봤자 결국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쯤 되면 썰렁맨 정도가 아니라 지독한 허무주의자에 가깝다. 하지만 얼핏 <뜻대로 하세요>라는 코미디와는 맞지 않을 듯이 약간 터무니없는 이 자크라는 캐릭터는 묘하게도 작품 속에 이질적이지 않게 녹아들어 있다. 약간 맛이 떨떠름한 감초 역할이라고나 할까.
멜빌의 <모비 딕>은 소설이긴 하지만 그 문학적 장르는 독특하다. 때로는 산문적이고 때로는 시적인 문장이 나오며, 등장인물과 배경에 풍부한 상징이 담겨 있고, 고래의 습성과 생태에 대한 박물지博物誌를 보여주는 등 여러 장르가 한데 비벼진 마치 비빔밥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모비 딕'은 거대한 흰색 향유고래의 이름이다. 그래서 '백경白鯨'이라고 소개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도시 출신 청년 이슈마엘의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시작된다.
피쿼드 호의 일등 항해사 스타벅Starbuck 역시 눈길을 끄는 인물이다. 작품에서 스타벅은 시간이 갈수록 에이해브 선장을 교주로 모시고 모비 딕 잡기를 사명으로 여기는 사이비 종교 집단 비슷하게 변해 가는 피쿼드 호 속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에이해브와 스타벅이 나누는 대화를 잠깐 보자.
"하지만 스타벅 군, 이 시무룩한 얼굴은 뭐지? 자네는 흰 고래를 쫓지 않을 건가? 모비 딕 사냥에 참여하지 않을 셈인가?"
"에이해브 선장, 만약 놈이 우리가 따라가는 항해 경로에 나타난다면야 나는 그놈의 사악한 턱주가리를, 아니 저승사자의 턱뼈라도 사냥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 고래를 잡으러 왔지, 내 지휘관의 복수를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에이해브 선장,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당신의 그 복수심이 고래 기름을 도대체 몇 배럴이나 생산할까요? 낸터킷의 고래 기름 시장에서 큰돈을 벌지는 못할 겁니다"
에이해브와 그 똘마니들의 으쌰으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스타벅. 하지만 비록 동료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었는지 몰라도 그의 이름은 <모비 딕>에 등장하는 어떤 캐릭터보다도 더 현대인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 최고의 커피 브랜드라고 할 스타벅스Starbucks가 바로 그의 이름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회사 창립자들 중 한 명이 <모비 딕>의 광팬이라는 숨겨진 일화 덕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음미해보자. 대학시절 포켓판으로 출간된 이 책을 늘 끼고 다녔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많아서 계속 읽을 필요가 있었고, 왠지 남에게 뭔가 있어 보일거라는 생각도 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문학도文學徒도 아니면서 그렇게 비춰지고 싶었던 다소 허세에 쩐 폼생폼사였던 셈이다.
시인 보들레르는 인간의 내면을 이렇게 온갖 추잡한 맹수들로 상징되는 "악덕의 더러운 동물원"이라고 정의하더니, 다시 그 악덕 가운데서도 최악의 존재는 따로 있다고 진단한다. 그렇게 파괴력이 큰 악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 '놈'의 정체를 한번 보자. 격정에 넘치는 피날레, 시의 마지막 연聯이다.
권태!―눈물이라도 고인 듯한 젖은 눈으로,
놈은 담뱃대 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라, 독자여, 그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의 독자여,―내 동류,―내 형제여!
원래 프랑스어이기도 한 ennui는 흔히 권태(boredom)로 해석되지만, 무료함, 따분함보다는 삶에 대한 의지나 정열 자체가 식은 보다 심각한 정신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이 한번 여기에 빠지면 술, 마약, 도박 등의 보다 파멸적인 자극을 찾는 단계로 넘어가기 쉽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보들레르가 권태를 이토록 요주의 괴물로 묘사한 이유 역시 "교수대를 꿈꾸는", 즉 인생을 한 방에 훅 가게 할 수 있는 파괴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위선의 독자여,―내 동류,―내 형제여!"로 마무리되는 이 시 한 편에서 알 수 있듯이, 보들레르의 미덕은 무엇보다 그 솔직함과 화끈함에 있다. 시인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까발리는 것은 물론이요, 그렇게 하면서 독자에게도 어서 그 구질구질한 속내를 드러내고 발가벗으라고 다그친다. 보들레르의 시를 읽으면 마치 구정물에 몸을 담갔다가 나온 듯한 느낌과 함께 역설적으로 그 구정물로 깨끗하게 '씻김굿'을 당한 듯한, 일종의 뒤틀린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프랑스 상징주의 운동은 <악의 꽃>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징주의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특히 시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학 운동을 가리킨다. 보들레르는 비단 시詩뿐 아니라 문학, 미술, 음악 등 전방위 평론가로도 명성이 높았다. 그의 실제 삶도 당대의 기준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간 인물이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46세(1867년)로 생을 마감했을 때 그의 사인死因은 바로 성병인 '매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