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고전으로 읽는 경제 - 2500년 지혜에 담긴 경제의 의미를 돌아보다
조준현 지음 / 다시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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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경제라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면, 사전에는 경세제민 또는 경국제민 등의 줄인 말일고 나온다. 간단히 해석하면 '경세'란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며, '제민'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경세제민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중략) 이처럼 동양의 경세제민 사상에는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 임금(요즘으로 표현하면 국가)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라는 윤리적인 측면이 담겨 있다. - '본문 15~16쪽' 중에서

 

 

동양 고전에 담긴 경제의 의미를 살펴본다

 

저자 조준현은 중심이 잘 잡힌 독립형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청소년기부터 경제를 알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졌기에, 경제를 어렵게만 느끼는 청소년들을 위한 책들을 꾸준히 써 오고 있으며, 또한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 소장을 맡아 경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예전에 <국제신문>에 연재했던 원고를 토대로 다시 집필한 것이다.

 

부산에 거주하는 저자는, 부산상공회의소에서 매주 정기적

 

경제라는 말은 경세제민經世濟民, 경국제민經國濟民에서 비롯되었다. 경세제민은 백성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달리 말하면 백성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 임금과 국가의 의무라는 말이다. 갈수록 빈부貧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경세제민 사상은 많은 문제점들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동양의 고전, 특히 춘추전국 시대 제자백가의 책을 통해 동양에서 경제가 가진 의미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새롭다. 사마천은 애덤 스미스보다 거의 2000년 전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가 쓴 <사기>에는 경제 현상과 원리에 대해 <국부론> 못지않은, 때로는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통찰이 보인다.

 

책에는 사마천을 비롯해 공자, 맹자, 순자, 노자, 묵자, 한비자, 관중 등 춘추전국 시대의 수많은 사상가가 등장한다. 물론 그들이 밝힌 경제 이야기는 경제학이라기보다 경제관에 더 가깝다. 그 당시는 학문으로 체계를 세울 만큼 경제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기>에서 보듯 동양의 사상가들이 남긴 글에는 경제와 관련된 지혜들이 가득하다. 저자는 넓은 의미의 경제가 동양 사회에서 가졌던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는 설명이다.

 

 

 

 

 

치국治國의 의미

 

한국의 정치인들이 가장 입바른 소리로 떠드는 게 아마도 '민생民生'일 것이다. 이렇게 주구장창 떠벌리는데도 왜 경제는 회복은커녕 지하실로만 내려가는지 한심하고 갑갑하다. 과연 이들은 경제를 논하고 입법안을 제시할 전문성이나 자격을 가졌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저 국정감사장에서 고압적인 자세로 듣기 거북한 고성을 남발하거나 선심성 예산을 수립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의정활동을 펼친다고 생쇼를 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의 어원은 '경세제민'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세상을 경영하는 일과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함께 나란히 있는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구분짓자면 백성을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세상을 다스린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달리 말하면 백성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나라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사기史記>는 역사책인가?

 

동양의 사상은 대부분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諸子百家에서 유래한다. 유가, 도가, 법가, 묵가, 명가, 음양가, 종횡가. 농가, 잡가, 병가 등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들이 남긴 저서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없어졌거나 직계 제자들이 보고 들은 바를 적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뒤죽박죽되기도 했다.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제자백가에 관한 지식은 대부분 사마천이 집필한 <사기>에서 얻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마천은 한나라 무제의 미움을 사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당하면서까지 사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그래서 그는 동양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흥미롭게도 사마천의 <사기>를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부론>은 핀 공장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밖에서 더 사게 살 수 있는 물건은 절대로 집에서 만들지 말라"며 분업을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이미 2천년 전에 이와 동일한 얘기가 <사기>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도 나온다는 사실이다.

 

"농사꾼은 먹을 것을 생산하고, 어부와 사냥꾼은 물자를 공급하며, 기술자들은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장사꾼들은 이 상품들을 유통시킨다. 이러한 활동들은 나라에서 이래라 저래라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에 종사하고 있는 각자가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뿐이다"

 

 

화식貨殖의 도리

 

한때 경제적 약자들의 울화통을 자극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렇다. '땅콩회항' 사건이다. 부자라고 이렇게 막 해도 되는지 온 국민이 분노를 터트렸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화식열전'에 보면 범여는 19년에 걸쳐 세 번이나 천금을 모았는데, 그 중 두 번은 모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대인은 나눔과 베품의 도리를 다 하는데 반면 소인이 부유해지면 꼴 사나운 위세를 떨치려고 한다.  

 

라면 때문에 승무원의 뺨을 때리고, 백화점 주차장에서 임시직 주차관리 청년들을 무릎 꿇리는 일도 모두 소인들이 부유해지자 그 권능을 감당하지 못한 데서 저지르는 짓들이다. 그래서 사마천은 말한다. "군자가 부유해지면 즐겨 그 덕을 행하고, 소인이 부유해지면 그 힘을 휘두르려 한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

 

"임금의 푸줏간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임금의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으면서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판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떳덧이 살 수 있는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해 떳떳한 항심이 없어집니다"

 

여기서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말은 백성이 풍요롭지 못하면 그 마음이 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항산이란 꾸준한 생산이고 항심은 꾸준한 마음이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항산이란 단순히 사용할 재물이나 자산이 풍부하다는 뜻이 아니라 꾸준히 생산할 거리, 즉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생업을 의미한다. 이는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임시직이나 계약직보다 정규직을 원하는 이유와 같다.

 

<논어>의 〈계씨季氏〉 편을 보면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든 가족을 거느린 사람이든 적음을 걱정하기보다 고르게 분배되지 않음을 걱정하며, 사람들이 빈곤한 것을 걱정하기보다 그들에게 안정이 없음을 걱정해야 한다. 고르게 분배하면 가난이 없고, 모두 화합하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며, 나라가 안정되면 위태로움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즉 재화가 부족한 일보다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하는 것이 더 걱정이라는 뜻이다.

 

 

촛불 민심의 의미

 

나라 안이 온통 어지럽다. 처음에는 준엄한 국민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촛불시위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결국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도록 밀어 붙임으로써 시위의 목적을 달성한 듯하다. 이젠 하야로 목표를 수정한 모습이다. 이에 보수단체에서도 시위에 나서고 있다. 정치권도 이에 맞춰 셈법을 달리한다. 사실 정치판에서 의리를 논한다는 것은 사기꾼에게 앞으로 사기를 치지 말라는 말과 같다. 국정 농단의 사건은 잘못된 인사의 결과물임에 틀림없지만 국론이 지나치게 극과 극으로 치닫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큰 산은 아무리 작은 흙이든 돌이든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큰 산이 되었고, 바다는 깨끗하든 더럽든 어떤 강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바다가 되었다" - <관자> 중에서

 

현명한 지도자는 자신의 귀에 거슬리는 쓴소리를 사양하지 않고 인재를 널리 구해야 한다. 거슬린다고 이를 모두 거절한다면 결국엔 주위에 아첨꾼만 득실댈 것이다. 최순실 사태가 벌어진 이유다. 묵가를 창시한 묵자와 관련된 이야기 중 '묵자비염墨子悲染'이란 말이 있다. 묵자가 길을 가다가 실에 물들이는 사람을 보고 탄식했다는 뜻이다.

 

묵자가 말하기를,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란색, 노란 물감에 물들이면 노란색이 되는구나. 이렇게 물감에 따라 실의 색깔도 변해 매번 다른 색깔을 만드니 물들이는 일이란 참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나 나라도 이와 같아 물들이는 방법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물들이는 방법에 따라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는 것은 바로 신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나라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의 교훈

 

<사기>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는 이목지신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나라 효공 때 상앙은 여러 법을 만들었지만 과연 백성들이 이를 믿어줄지 걱정되어 쉽게 공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꾀를 내어 남문에 큰 나무를 세워놓고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금 10냥을 준다고 방을 붙였지만 헛소리로 여기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후 금 50냥의 포상금을 내걸었더니 한 사람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옮겼다. 이에 상앙은 약속대로 그에게 포상금을 지급했다. 나중에 이 소문이 나라 안에 돌자 진나라 백성들은 상앙의 말이라면 믿게 되었다. 마침내 상앙이 법령을 발표하자 백성들은 이를 믿고 법을 잘 지켰다.

 

이처럼 이목지신은 나랏일에는 말 한 마디에도 천금의 무게가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반값 등록금부터 노인연금이며 보편 급식까지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나라에서는 정부와 국민 사이에 믿음도 없고 희망도 없다. 이런 사태가 계속 벌어지면 국민들은 더 이상 정치와 정부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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