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언트 -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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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능력은 인간이 가진 가장 신기하고 고귀한 능력 중 하나다. 인간에겐 머릿속에 솟아오르는 생각을 남과 공유하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다. 그런 욕망의 힘이 작용하면 목과 입술과 혀의 복잡한 근육들을 움직여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를 진동시킨다. 이 공기 입자들의 미세한 파장이 허공을 가르고 상대편의 귀에 들어가 고막이라는 아주 작은 살점을 흔든다. 그런 방식으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말이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새로운 영어 공부법을 제시한다

 

책의 저자 조승연세계문화전문가로 <이야기 인문학>, <비즈니스 인문학>, <공부기술> 등 총 19권의 책을 출간했다.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인문학으로 배우는 비즈니스 영어'와 <동아 비즈니스 리뷰>에 '문화 DNA' 칼럼을 연재 했으며, TV 프로그램인 OtvN <비밀독서단>, JTBC <비정상회담>, MBC <라디오스타>,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에 출연한 유명인사다.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하고 독일어, 라틴어는

 

 

 

 

 

우리가 발음에 집착하는 이유

 

한국인이 흔히 '원어민 표준 발음'이라고 생각하는 영어는 사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 시민이 아니라 미국의 중부 시골인 일리노이 주의 소도시 밀워키 주민의 영어 발음이 기준이라고 한다. 미국의 전국 방송 채널 중 하나인 ABC가 모든 미국인이 공통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을 조사하다가, 이 동네 사람들의 발음이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나 선택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발음을 선택한 이유는 '좋은 발음'이어서가 아니라 당시 가장 상업적이고 실용적인 발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 토박이가 옆집에 ABC방송 아나운서 발음으로 말하는 촌뜨기가 이사 오면 일부러 아주 진한 브루클린 사투리로 말을 걸어 그 사람을 소외시키는가 하면, 백인 경찰이 무고한 흑인 청년을 심문하면 흑인 청년은 일부러 백인 경찰이 알아듣기 힘들어하는 할렘이나 브롱스의 걸쭉한 사투리로 대답하기도 한다.


또 저자가 미국에서 생활하던 1990년대에는 힙합 음악이 미국을 휩쓸었는데, 그에 발맞추어 백인의 영어 문법마저 변하기 시작했다. 흑인 커뮤니티 특유의 호칭인 'man, yo, woman' 등이 백인의 영어에 버젓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추상적인 영어, 직관적인 한국어


질문: 아래 사진을 보고 다음 중 참인 문장을 고르시오

 

A. Cows are black

B. The cow is black

 

 

보기를 보고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봐야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아직 '추상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어민은 A가 참인지 아닌지 결정할 때 아예 사진 자체를 볼 필요가 없다. Cows 앞에 a/the가 붙지 않은 단어는 '소'가 아니라 '소라는 동물'이라는 개념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A 문장을 번역하면 '우리가 소라고 부르는 동물은 원래 검은색이다'가 된다. 그렇다면 소라는 것이 꼭 검은색이라는 법은 없기 때문에 첫 번째 문장은 참이 될 수 없다.

 

'Cows are black'이라는 문장을 한국어로 '소들이 검은색이다'라고 번역하면 오역이 된다. 그러면 사진 속에 분명히 검은색 소들이 있기 때문에 문장이 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Cows are black'이라는 문장이 성립되려면 전 세계에 있는 소라는 모든 동물이 예외 없이 검은색이어야 한다. 같은 문장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우리와 미국인 사이에 이렇게 다르니 영어 배우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주어+동사'를 훈련하라

 

대부분의 한국인은 주어 + 동사의 구조를 완벽하게 익히는 과정을 생략하고 다음 단계로 건너뛴다. 하지만 주어 + 동사 문장에 익숙해지는 것은 절대로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명사 우선 사고 구조를 동사 우선 구조로 바꾸어야만 다른 영어의 문법 원리들이 주르르 따라 온다. 마치 처음에는 초점이 잘 안 맞던 카메라가 초점이 딱 맞아서 환하게 보이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외교관 양성 기관인 FSI에서는 대부분 의 유럽 언어를 공부할 때 3개월 동안 주어 + 동사 훈련을 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주어 + 동사 문법을 체화하기도 전에 바로 간접목적어, 전치사구, 관계사절 같은 고급 이론을 배운다. 이것은 카메라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면서 마구잡이로 셔터를 누르는 것과 같다.

 

영어 배우면서 절대로 문법 공부를 서두를 필요가 없는 이유는, 영어의 주요 문법은 100쪽짜리 책에 모조리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간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법 규칙 하나하나는 우리와 전혀 다른 사고 패턴에서 우러나오는 습관이기 때문에 이것을 체화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문제다.

 

 

모든 단어에는 스토리가 있다

 

예를 들면 영어의 cap(ut)은 '머리'를 뜻하는 형태소다. 한자로 치면 '머리 수 首' 자나 '으뜸 원元'(사람의 머리를 크게 그린 한자)에 속한다. capt라는 형태소는 수많은 영어 단어에 등장하는데, 어느 때는 t가 떨어진 cap이라는 형태로, 어느 때는 cap의 프랑스식 변형인 chef라는 형태로 나온다. 예를 들어서 한 도시의 '머리 도시(수도)'를 capital city라고 하고, 우리가 건물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돌을 '머릿돌'이라고 하듯이 사업을 할 때 가장 먼저 내려놓는 자본금을 capital이라고 하며, 한 무리의 우두머리, 또는 수장을 captain이나 chief라고 한다.


형태소의 용법은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가족적 유사성'의 경로를 타고 가지를 치며 확장된다. 문장에서 가장 처음 오는 글자, 즉 머리글자를 capital letter라고 하고, 책에서 한 단락이 넘어갈 때 남은 공간을 비우고 다음 장의 '머리'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chapter라고 부른다.


머리에 뒤집어쓴다는 의미로 cape이라고 불리던 일종의 망토가 있는데, 유명한 성인의 망토가 보관되어 있다고 해서 프랑스의 한 예배당을 chapel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모든 개인 예배당을 chapel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어떤 수도승의 무리가 cape을 쓰고 다녔기 때문에, 그들의 옷 색깔을 따서 특정한 커피를 cappuccino라고 부르게 되었다.

 

 

 

문화 독해력을 키우자

 

언어란 공통된 문화 지식 기반을 갖지 못하면 소통하기 어렵다. 외국인인 우리가 영어 단어를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수많은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알아도 미국 시트콤을 보면서 미국인과 같은 포인트에서 웃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우리와 그들의 공유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외국어 사용자 간에 국한된 문제일 것 같지만 사실 모국어 사용자 간에도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나이든 중노년들이 10대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고 한탄하곤 하는데, 분명히 같은 문법 구조와 형태소를 가진 한국어로 소통을 하지만, 가요, 책, 드라마, 역사적 사건 등 문화적 지식 배경이 세대 간에 다르기 때문에 해석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는 당연히 이런 격차가 훨씬 심하다. 한 언어권의 상식이 다른 민족에게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외국 드라마를 원어로 시청하면서 '웃음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외국 미디어 정보를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역사적, 문화적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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