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굿 라이프 - 마지막까지 후회 없는 삶,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한 인생철학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글을 하나로 모으기로 했다.
모든 것을 전자적인 형태로 옮기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통합했다. 아마 이것이 햇살이 비치고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기억의 산속을 따라
부모와 함께 좀 더 길을 걷는 방법일 것이다. 비록 내가 특별히 윤리적인 철학자는 아니지만, 부모보다 전문 교육은 좀 더 받았으니까. 철학적인
부분에 실수가 있다면 교정하고 어떤 결론이 나올지 전개해봐야겠다. -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가 꿈꾸는 좋은 인생의 해답을
찾아서
저자 마크
롤랜즈는 영국 웨일스 뉴포트 출신 철학자이자 작가로 현재는 미국 마이애미 대학교 철학과 교수다. 심리 철학과 인지 과학, 응용
윤리학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11년간 동고동락한 늑대 브레닌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 선과 악, 인간의 본질, 문명,
행복 등에 대한 사유를 풀어낸 <철학자와 늑대>로 대중 철학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마이애미
마라톤을 준비하고 성취해내는 과정에서의 철학적 성찰을 담은 <철학자가 달린다>로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팬이자
B급 영화를 열렬히 지지하는 영화광이기도 한 그는 대중에게 철학을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자신이 아끼는 영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철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이 책 <굿 라이프A Good
Life>를 완성했다. 픽션의 주인공들과 그들의 삶 속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생의 20가지 딜레마'를
다룬 이 책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다양한 철학적 논제, 사회적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면서 "우리가 꿈꾸는 좋은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의 해답을
찾아간다.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처음으로 픽션이라는 장르에 도전,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시킨을 차용해 생명과 탄생, 종교와 신, 쾌락과 사랑, 존엄한 죽음 등 20가지의 논쟁적인 주제를 미시킨의 삶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마크
롤랜즈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삶, 즉 사유思惟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의미있고 가치있는 인생이라고 강조한다. 위대한 성공이나 남다른 업적이
'좋은 인생'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며, 삶의 기간에 숙명적으로 마주치는 수많은 판단의 기로에서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자신만의 해답을 도출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유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소설은 니콜라이가 작고한 아버지의 허름한 옛집에서 기록물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인생은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이 무한한 가치를 남길 수 있는 빈 원고지이며, 그것을 채우는 것이 인생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생각하고 기록하는 것의 의미를 일깨워주면서 나아가 생각하며 살지 않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역설한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남긴 원고 뭉치 속에는 삶의 비밀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미시킨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의 삶, 생명과 탄생, 종교와 신, 윤리와 거짓말, 부와 가난, 쾌락과 사랑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과정을 통과한 미시킨은 아내 올가와 죽음의 방식도 직접 선택한다.
"글은 반드시 글일 필요가 없고 기록 매체는 반드시 종이일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은 글이다. 새벽이 장밋빛 손가락으로 내가 속한 세상을 보여주는 세계지도를 어루만질 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는가?" -
27쪽
"글은 우리 모두가 드러나는 방식이다. 휘갈겨 쓴
글은 우리가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글은 우리 모두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나도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존재의 방식이다. 우리 모두는 말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비록 나는 종이에 쓰인 글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것보다 더 실재적이다"
- 29쪽
술취한 실레노스
책은
실레노스의 "인간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다?"를 생각해보라고 한다. 실레노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이자
반인반마半人半馬로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미다스 왕의 추적을 잘도 피해 다니던 실레노스가 마침내 붙잡히자
왕은 그에게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그의 답이
가관이다.
"가련한 인간들이여!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아이의 출생은 보통 부모에게 초점이
맞추어진다. 부모들은 아이를 원했던 것 같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판단한 부모라면 다양한 방법으로 피임하거나 미처 피임을 하지 못해
임신했을 경우에는 유산 내지는 낙태까지 강구했다. 이를 생각해 보면 아이의 출생 여부는 모두 '부모 중심적 이유'에
달려있다.
그런데, 실레노스의 대답은 '자녀
중심적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아이를 낳음으로써 부모, 인류, 환경에 미치는 혜택이나 불이익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태어날 아이의 혜택이나
불이익에 초점을 둔 판단인 것이다. 만약에 우리들의 부모가 유전자 구성을 미리 조사해보고 그 결과가 불행하게도 희귀병 질환을 갖고서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판정이었다면 아마도 당연히 임신 자체를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유하는 삶, 이것이 바로 '굿 라이프'이다
그렇다. 아무런 생각이나 고민 없이
출생한 아이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태어날 아이와 함께 할 행복한 인생을 꿈꾸지 않았을까? 이는 부모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복도 그렇다고 태어날
아이를 위한 이타적인 행복도 아닌 모두를 위한 '좋은 인생'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원고지 속에서 자신의 탄생에 관련된 글을 읽은 니콜라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스무 가지의 딜레마를 읽는 사람들은 제각각의 사유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없다. 단지 우리들에게 사유가 필요함을 시사할 뿐이다. 일독으론 부족하다, 여러 번 읽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