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철학 로드맵 - 사상가 50인이 안내하는 지知의 최전선
오카모토 유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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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을 형성하거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할 때, 현대사상은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현대사상가들 역시 동시대인으로서 우리와 같은 문제를 고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상가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철저하게 생각했던 것뿐이다" - '머리말' 중에서

 

 

현대사상가 50인을 살펴보다

 

저자 오카모토 유이치로규슈 대학 문학부 조교수를 거쳐 현재는 다마가와 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양 근대 철학이 전공이지만 관심 분야가 워낙 폭넓어서 영역을 넘나들며 연구를 하고 있다. 특기는 어려워 보이는 철학을 쉽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현대사상의 재미를 두루 맛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책을 썼다.

 

한때 일본에서도 현대사상이 붐을 이루며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프랑스계 포스트 구조주의가 꽃을 피우고, 몹시 난해한 표현이 애용되던 무렵이었다. 하지만, 이내 붐은 거품이 되고 말았다. 현대사상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릇 학문이란 이해할 수 있어야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지식, 나아가 쓸모있는 지식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현대사상 관련 도서와는 격을 달리 한다.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의 현대사상, 미국의 정의론, 사회학, 미디어론과 논리학, 실용주의 등 다채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애매한 표현을 피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명확하게 설명함으로써 해당 사조의 정수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탓이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50인의 사상가들을 소개한다. 지제크나 아감벤, 바디우처럼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한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주디스 버틀러, 에마뉘엘 토드, 노르베르트 볼츠, 로버트 브랜덤처럼 자기만의 분야를 개척한 떠오르는 '스타'들까지 모두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즉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부터 미국의 정의론, 미디어 이론과 사회학, 윤리학까지 확장되는 사상을 맛보다 보면 우리들은 그 다채로운 흐름 속에서 시야가 확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현대사상의 원조들

 

현대사상의 개척자는 누구일까? 이는 꽤나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생각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먼저 대표적인 세 사람의 사상가를 거론할 수 있다. 1960년대 프랑스에선 현대사상의 원류로 흔히 마르크스,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를 꼽았다. 이들은 '회의懷疑의 세 거장'으로 불리며 상당히 유행하기도 했다. 이들의 책을 읽지 않으면 현대사상의 대화에 낄 수도 없었다.

 

마르크스~ 경제학적 분석, <자본론>

니체~ 허무주의, '신은 죽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고 제각각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사상가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이 현대사상의 개척자가 된 것일까? 이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 사회, 사고방식 등에 근본적인 의심을 품고 이를 철저하게 분석함과 동시에 다른 대안을 제시햇다. 말하자면, 모두 '반反시대적인 사상가'였다.

 

   

저자는 여기에 네 명의 비판적인 사상가를 더한다. 즉 소쉬르, 베버,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이 바로 그 사람이다. 소쉬르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인간 이해의 중심으로 생각함으로써 근대의 발상을 뛰어넘었다. 베버하이데거는 둘 다 근대라는 시대의 귀결을 '철의 우리'와 '게슈텔(닦달하기)'라고 각각 표현함으로써 현대사상의 개척자가 되었다.

 

 

포스트 구조주의

 

구조주의의 유행은 1968년 5월 혁명과 함께 종식되었다. 혁명의 에너지를 내뿜던 청년들에게는 구조주의가 체제 옹호의 이데올로기로 보였던 것이다. "인간이 구조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을 타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이 의문은 구조주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답답한 시대 상황을 구조주의에 투영하여 생각한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해서 시대의 사상은 포스트 구조주의로 넘어갔다.

 

 

 


'저자의 죽음' 이후 무엇이 올까? 이를 바르트는 '텍스트'라 부르고 '작품'과 구별했다. 텍스트란 라틴어 '지어낸 것'에서 유래한 말인데, 바르트는 그 의미를 확장하여 '다양한 인용을 엮어서 지어낸 것'이라 이해했다. 저자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 인용하여 지어낸 텍스트, 그것이 바르트가 문학을 보는 관점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개개의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요청에 호응하면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신민이 된다. 인간은 국가에 강제로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지배 세력 밑으로 들어간다. 자발적으로 자유로운 주체sujet가 실제로는 지배에 복종하는 신민sujet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현대에서는 도처에 시뮬라시옹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령, 자동차 운전을 배울 때 미리 시뮬라시옹 장치로 연습하고, 그 후에 실제 운전을 한다. 혹은 현대의 전쟁에서는 원격지에서 화면을 보면서 스위치를 누르고 미사일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야말로 시뮬라시옹 자체가 현실화된 예다. 시뮬라시옹과 현실리 구별되지 않는 상황을 보드리야르는 '과도 현실'이라고 불렀다. 이때, 현실 자체가 시뮬라시옹화 된다. 우리는 그야말로 시뮬라시옹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근대인은 부정적인 자유는 획득했지만 긍정적인 자유는 아직 손에 넣지 못했다. 따라서 고독과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고독과 무력감에 가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즉, 강력한 지도자에게 복종함으로써 고독과 무력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해결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중은 자유로부터 파시즘으로 도피하고 말았다. 

호네트에 따르면 경제적인 '분배'를 둘러싼 투쟁은 '인정을 둘러싼 투쟁'으로 이해해야 한다. 보수가 적거나, 분배 방식이 나쁜 것은 그 사람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고전적인 분배를 둘러싼 경제적 투쟁도 '인정'이란 개념 아래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인정'이라는 철학적 개념이 실천적으로 활용된다.

슬로터다이크<인간 농장을 위한 규칙>에서 표명한 것은 근대에서 시작된 '휴머니즘'이 이제 종말을 맞이할 거라는 사실이다. 인간주의 관점에서 유전공학의 발전에 따라 인간 개조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어떤 의미에선 인간의 죽음과 '초인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또 지금껏 인문주의의 기초가 된 '책'의 종말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진전에 따라 의사소통의 양상이 볂하고 있다. '인간의 죽음'과 '책의 죽음'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휴머니즘'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기든스도 근대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나리란 것을 부정한 건 아니다. 그들은 그 변화가 '근대 너머post-modernity'에 도달한다는 이론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근대의 변화를 어떻게 파악한 것일까? 이 변화를 벡은 '위험 사회risk society'라는 말로 표현하고 기든스는 '세계화'의 진전에 주목했다."

이러한 '문화 자본', '학력 자본', '사회관계 자본'은 개인이 속한 계급이나 계층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행동 양식을 낳는다. 이를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라고 명명했다. 이 용어는 원래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태도'나 '습관' 등을 의미한다. 그는 이 단어를 개인이나 집단이 갖고 잇는 일정한 태도나 성향이라 규정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사회'를 생각할 때, 구성 요소가 되는 것은 통상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버마스를 포함하여 '사회는 인간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확고한 전제였다. 그런데 루만은 그것을 부정하고 사회를 성립시키는 것은 '인간'이 아니며, 그 '행위'도 아니라고 선언한다. 핵심이 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개념이다. 사회는 인간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으로 성립되기 때문이다.

바우만에 따르면 유동하는 상태인 근대 이후의 시대에 인간은 쓰이다 버려지고 끝내 쓰레기가 된다. 현대인은 누구나 이런 현상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또 현대의 소비생활은 유동 상태의 근대에 부합하여 상품을 영속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사서 쓰고 바로 버리는 '쓰레기의 문화'가 되고 있다. "모든 것은 쓰레기장으로 가는 도중에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간도 쓰이다 버려질 것이다.

개인은 자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는 존재로 가정된다.  샌델은 이러한 자유주의의 인간상을 '무연고적 자아'로 규정했다. 즉, 자유주의에서 개개인은 선택 주체로서의 인간이며 스스로 져야 하는 외부로부터의 의무를 일절 배제한다. 샌델에 따르면 자유주의의 근저에는 이러한 개인에게 주어진 '의무'를 도려낸, 말하자면 탈색된 듯한 인간이 있다.

 

 


과거에는 현대사상이라고 하면 다들 '포스트모던'을 떠올렸다. 바디우지제크는 이에 반기를 들고 포스트모던이 현대의 선택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철학의 종말'을 부르짖는 포스트모던에 맞서 바디우는 '철학의 귀환'을 선언했다. 또 지제크는 현대의 포스트모던에 대한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렌트의 기본적 관점은 '나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라는 점이다. 나치는 이상하고 잔학한 인간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극히 보통의 인간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누구나 전체주의에 빠질 수 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그렇다면 아예 처음으로 되돌아가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1958년 <인간의 조건>을 세상에 내놓는다.

현대의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불리는 바디우는 오늘날 '윤리'란 말이 가장 각광받고 잇는 데에 주목한다. 우리 주변에 생명 윤리, 윤리 위원회, 기업 윤리 등 윤리가 넘쳐난다. 이에 대해 그는 '윤리'가 사람들을 관리 및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라고 폭로했다. 그것은 서구적 질서를 선택하게 하고, 자본주의경제와 의회 민주주의를 옹호하게 하여 결국 보수주의, 보신주의로 이끈다.

'호모 사케르'란 원래는 '성스러운 인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대 로마법에 따르면 '법에서 배제된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호모 사케르'가 되면 누구나 그를 살해해도 좋다. 말하자면 버림받은 인간이다. 아감벤은 카를 슈미트의 말을 빌려서 이를 '예외 상태에 있는 삶'이라 말했다.

일반적으로 '성'을 말할 때,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적·문화적 성gender'을 구별해서 생각한다. 상식적인 발상에서 '사회적 성은 생물학적인 성에 바탕을 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버틀러는 이러한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생물학적인 성' 또한 사회적으로 구축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누스바움은 버틀러를 비판하면서 인간의 성은 사회적인 관계에 따라 전면적으로 구축되지 않으며 젠더를 자유롭게 바꿀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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