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사기 2 :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 책상 위 교양 27
소준섭 엮어 옮김, 사마천 원작 / 서해문집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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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비단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먼저 걸었던 그 길을 살펴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도 그 목적 중 하나다. 이 점에서 특히 <사기>는 황제와 명장에서부터 보통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마치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기술함으로써 예부터 인생철학의 교과서로 평가받아 왔다. - '머리말' 중에서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

 

사마천의 <사기>는 역사서이면서도 수없이 많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다루고 있기에 심리학보다 더 심리적인 인문교양서로 손꼽힌다. 더구나 사마천 본인도 억울하게 궁형을 당한 처지였기에 후세인들을 위한 교훈을 여기저기에 남긴 훌륭한 인생철학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물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믿고 끝까지 좌절하지 않아 결국엔 목표를 성취했다.

 

책은 총 14편의 이야기를 통해 19년의 망명 생활 끝에 왕이 된 진나라 문공, 질투심이 너무 강해 눈이 먼 친구의 음모로 인해 다리가 잘린 병법의 대가 손빈, 죽도록 두들겨 맞고 멍석에 말려 내던져진 범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자 죽음보다 더 치욕적인 궁형을 받이들이면서까지 목숨을 부지했던 사마천 등 끝내 자신의 뜻을 성취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흔히 나라가 지속적으로 부강하려면 청년들이 살아남아 뜻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래가 없다', '부끄럽다'라는 피켓을 들고 최근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진 촛불 시위가 바로 이런 미래를 보여준 것 같아 삼류 정치인들에 식상했던 나의 마음을 다소 치유해준 듯하다. 역시 나라의 미래는 청년들이 좌우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더 이상 정치를 논하고 싶진 않다. 아무튼 이 책 또한 불공평한 현실의 룰에 좌절하지 않고 밝은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중국 역사 속의 영웅적인 인물들을 이 시대로 소환함으로써 우리들에게 힘든 역경을 극복하고 큰 뜻을 쟁취함에 있어서 롤모델을 제시하는 셈이다.

 

 

    

 

 

19년의 망명 끝에 왕이 되다

 

진나라 문공은 모함을 받아 조국에서 쫓겨나 다른 나라를 떠돌며 온갖 고초를 당하다가 마침낸 62세라는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망명 생활이 그에게 정치 경험을 쌓게 만들었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과 지혜를 키워주었기에 그에게 굳이 나쁜 일이었다고 평가할 순 없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에 어울리는 경우이다.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져 있을 때 도움받았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가 크든 작든 나중에 반드시 이를 갚았고 자신이 했던 약속은 그 어떤 경우라도 지키려 했다. 왕이 된 후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뒤로 후퇴시켰던 일은 매우 인상적이며 감동적이다.

 

늦은 나이에 왕이 된 탓에 겨우 9년 정도 재위에 머물렀지만, 국내의 정치 제도를 정비하고, 인재를 뽑아 적재적소에 임명하여 능력을 펼치도록 함으로써 나라를 매우 안정되게 만들었다. 문공 이전의 강대국 제나라는 환공이 죽자 곧바로 나라가 기울었지만 진나라는 문공 사후에도 강대국의 지위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고 전한다.

 

 

 

인의仁義를 잘못 해석한 송나라 양공의 어리석음

 

제나라 환공이 죽자 송나라의 양공襄公은 영향력을 행사하여 당시 혼란에 빠진 제나라의 왕을 옹립하는 등 큰 역할을 수행하면서 천하의 패자가 되려는 야망을 품었다. 그래서 그는 남쪽의 초나라를 위협할 목적으로 초의 속국인 약소국 정나라를 공격했다. 이때 양공의 이복형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공격에 나서자 초나라는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정나라로 향했다.

 

송나라의 군대와 초나라의 군대는 '홍수'라는 강을 마주하게 되었다. 초나라의 군대가 미처 강을 도하하지 못했을 때 이복형 목이 공자는 절호의 공격 기회이므로 공격 명령을 내리라고 계책을 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양공은 인의를 내세우며 야만인인 초나라 군대가 완전히 강을 넘어온 다음에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군의 병사들이 모두 도하하여 미처 진용을 갖추지 못했을 때 재차 공격을 건의햇지만 이 또한 양공은 거절했다. 인의를 내세우는 송나라의 군대는 과연 이 전투에서 이겼을까? 아니다. 전열을 정비한 초나라 군대는 송나라 군을 대패시켰다. 이 전투에서 양공도 다리에 화살을 맞아 큰 부상을 입었다.

 

양공은 이 전투에서 부상당한 적군을 손대지 말고 머리가 희끗한 노병은 죽이지 말라는 주문까지 했을 정도였다. 과연 죽느냐 사느냐의 게임인 전쟁에서 무엇이 '인의'란 말인가? 패자를 꿈꾸던 그는 2년 후 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결국 죽고 말았다. 이를 두고 후세인은 '송양지인宋襄之仁' 이라고 놀렸다.

 

 

위나라 장군 오기, 부하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다

 

오기는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문하생으로 이후 노나라에서 벼슬을 했다. 이 무렵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노나라는 군사작전에 뛰어난 오기를 대장군으로 발령내려 했지만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이므로 이를 찝찝하게 여겼다. 이에 오기는 자신의 야망을 채우려고 아내를 제나라로 쫓아낸 후 결국 장군이 되어 제나라와의 전투에서 크게 이겼다.

 

그럼에도 유학자들이 득세하는 노나라 안에서는 오기에 대한 소문이 매우 나빴다. 젊은 시절 오기는 방탕하여 집안의 재산을 모두 탕진, 이를 비웃는 고향 사람 30여 명을 죽이고 다른 나라로 도망쳤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 그는 자신의 출세욕 때문에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받고도 귀향하지 않자 당시 스승이던 증자가 그를 불효자라는 이유로 내쫓았던 일도 있었다. 이에 노나라 왕도 오기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야심가인 오기는 노나라를 떠나 널리 인재를 구하는 위나라 왕을 찾아 갔다. 재상 이극의 추천으로 오기는 장군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언제나 병사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다. 잠자리도 깔지 않았고, 행군시 마치를 타지도 않았다. 병사들로부터 인기와 신임을 얻고자 늘 병사들과 함께하며 동고동락했다.

 

어느 날, 한 병사의 몸에 종기가 심해 무척 괴로워하자 그는 병사의 몸에 난 종기의 고름을 자신의 입으로 빨아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병사의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병사의 아버지 또한 오기 장군이 고름을 빨아주었기 때문에 장군의 은혜를 갚겠다고 앞장 서서 맹렬히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거다. 아들 또한 곧 죽을 것이란 예감이 들어 그토록 심하게 울었다는 설명이었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전국시대에 들어서는 왕권이 강화되면서 귀족의 권위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이에 이들은 널리 인재를 모아 자기 세력으로 양성하려 했다. 당시 이른바 선비들 역시 귀족들에게 의존하면서 부귀와 권세를 얻기 위하 여 '선비'를 '키우는' 풍토가 퍼지게 되었다. 이들 선비는 바로 학사學士, 책사策士, 방사方士 혹은 술사術士나 식객食客이라고 불렸다. 상앙을 비롯하여 장의, 범저, 이사 등 당시 거물 정치인의 대부분이 이러한 식객 출신이었다.

 

맹상군의 이름은 전문田文이며, 그의 아버지는 제나라 위왕의 작은아들이어서 재상을 지내면서 설薛 지역의 땅을 하사받았다. 그는 마흔이 넘는 아들 중의 한 명으로 소첩의 출생이었다. 하지만 워낙 영민하여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집안일을 맡겼다. 그래서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도맡아 손님이 날로 늘자 그의 명성도 외부로 널리 알려졌다. 아버지가 죽자 그는 설 땅의 제후가 되었던 것이다.

 

제나라 민왕 25년, 강대국인 진나라는 맹상군의 방문을 요청했다. 약소국인 제나라는 이를 거절할 수 없기에 그를 진나라로 보냈다. 사실 진나라의 왕은 맹상군을 진의 재상으로 삼을 계획이었는데, 신하들의 만류로 없던 일로 하면서 맹상군의 총명함이 두려워 죽이려고 일을 꾸몄다. 이를 눈치 챈 맹상군은 진나라 왕이 아끼는 후궁에게 훔친 흰여우 가죽옷을 선물해 위기를 벗어나고 서둘러 진나라 국경에 도달해선 닭 울음소리를 흉내내어 성문을 열게 해 무사히 탈출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닭 울음소리를 내는 사람과 도적질을 잘하던 사람을 식객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명구도鷄鳴狗盜'라고 한다.

 

 

세 치 혀로 나라를 주무르다

 

장의는 위나라 사람으로 일찌기 소진과 함께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생이 되어 합종연횡을 배웠다. 장의보다 한 수 아래인 소진은 이미 합종책을 펼치면서 맹활약을 하고 있었다. 소진은 조나라 왕을 설득해 합종을 약속받았지만 진나라가 다른 나라를 공격할 경우 합종의 동맹이 깨질 것으로 우려되었다. 이에 진나라를 설득할 사람이 필요했다.

 

"당신은 소진과 매우 친하지 않습니까? 지금 소진은 이미 높은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왜 당신은 그를 찾아가 당신 뜻을 펼 수 있는 기회를 얻지 않는 것이오?"

 

소진은 동문수학생 장의를 활용하기로 맘 먹고 즉시 사람을 보내 의중을 들어보기로 했다. 장의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여 조나라에 가서 소진을 만나려는 사람 명단에 자기 이름도 올려놓았다. 소진은 며칠 동안이나 장의를 만나지 않으면서도 부하를 시켜 며칠 더 머물도록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에야 소진은 겨우 장의를 만나 주었는데, 만나서도 그를 마루 아래쪽에 앉게 하고는 노비나 시녀에게나 주는 음식을 먹도록 했다. 일부러 모욕감을 줘 진나라의 일을 맡게끔 만든 것이다. 결국 장의는 진나라의 상국이 되어 소진의 합종책을 깨고 연횡을 완성했다. 합종이다, 연횡이다, 이는 모두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약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여러 나라들은 그들의 말에 유린당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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