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보쟁글스
올리비에 부르도 지음, 이승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내가 태어나기 전에 가졌던 직업이 작살로 파리를 잡는 일이었단다. 그때 쓴 작살이랑 짜부라진 파리를 보여주셨다. "그 일을 그만둔 건 힘들고 보수도 짰기 때문이지" 아버지는 예전에 사용하던 작업 도구를 니스 칠한 상자에 정리하며 말했다. "이제는 카센터를 여러 개 열었고, 일은 많지만 보수는 아주 좋아"

 

 

괴짜 가족 이야기

 

소설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깐돌이 꼬마의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아빠와 엄마와 나, 게다가 두루미까지 한데 어울려 사는 괴상한 가족을 리듬감 넘치는 문체로 쓰고 있다. 아들은 부모님의 삶을 구술하고, 아빠는 가족의 삶을 기록한다. 아들의 시선과 아빠의 글에는 이들 미친 가족의 별난 인생철학이 있다.

 

"이성(理性)이라는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차자!"

 

소설의 원제목을 그대로 번역하면 "보쟁글스를 기다리며"가 된다. 재치있는 사람들은 벌써 눈치 챘을 것이다. 사뮤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패러디했음을 말이다. 여기서 보쟁글스는 미국의 유명한 탭 댄스 가수 빌 로빈슨(1878~1949년)의 애칭이다. 가수 니나 시몬(1933~2003년)이 그에게 바치는 노래의 제목이 바로 '미스터 보쟁글스'이다. 노래는 이렇게 소설 속의 가족 집안에 울려 퍼진다.

 

 

이 소설의 작가 올리비에 부르도는 소설 속 꼬마 주인공처럼 정규 교육을 '조기 퇴직'했고, 텔레비전이 없는 집에서 독서에 몰두하며 몽상과 공상을 즐겼다.

 

 

 

 

카센터를 정리한 후, 아버지는 더 이상 아침에 일어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자 책을 쓰기 시작했다. 큰 책상에 앉아 종이와 마주했고, 글을 썼고, 쓰면서 웃었고, 웃었던 것을 썼고, 파이프를 채웠고, 재털이를 채웠고, 방을 연기로 채웠고, 원고지를 잉크로 채웠다. 비우는 것은 오직 커피 잔과 온갖 종류의 술병뿐이었다. 그런데, 출판사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잘 썼고, 재미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네요" 연이은 거절에 상심한 아버지를 위로하려는 어머니의 말에 우리 가족은 배꼽을 잡았다.

 

"세상 어느 책에 머리랑 꼬리가 달렸다는 거야. 있으면 나도 좀 보자!"

 

니나 시몬의 노래에 맞춰 수시로 춤을 추면서 인생을 마치 축제처럼 즐기는 부부의 삶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런 부모의 삶을 아들의 시선으로 그려낸 게 바로 이 소설이다. 즉 아들이 묘사한 괴짜 가족의 이야기 속에 작가 지망생인 아버지의 습작 원고가 삽입되어 있는 이중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다.

 

대부분 수학 공부는 별로 재미가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아들의 부모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어떻게? 뺄셈은 입고 있던 옷을 팬티까지 벗기면서 가르친다. 그들은 이를 스트립 쇼가 아닌 수數트립 쇼라고 명명한다. 이 장면에서 빵하고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의 글솜씨를 살펴보자.

 


부모님은 내 교육을 위해 넘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수학은 팔찌와 목걸이와 반지를 주렁주렁 차게 한 다음 몇 개인지 셈하게 하면서 덧셈을 가르쳤고, 뺄셈은 입고 있던 옷을 팬티까지 홀라당 벗게 하면서 가르쳤다. 부모님은 이걸 '수數트립 쇼'라고 했고, 그건 정말 웃겼다. 아빠는 문제를 풀려면 상황을 직접 체험하는 게 제일이라고 했다.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운 뒤, 한 병 혹은 반병씩 물을 빼낸 뒤 내게 온갖 산술 질문을 퍼부었다. 그리고 오답이 나올 때마다 병에 든 물을 내 머리에 부었다. 그렇게 수학 시간은 종종 거대한 수상 축제가 되었다. 동사 변화는 노래집으로 가르쳤고, 인칭대명사는 몸짓과 손짓으로 가르쳤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복합과거 춤을 추면서 수업 내용을 완전히 숙지했다. (53 쪽)

또 글 속에는 프랑스인들의 기질이 물씬 풍긴다. 아들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식사를 마친 마을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시작했고, 사방에서 불꽃이 솟았다. 지붕에서, 지평선 자락 산머리에서, 호수에 떠 있는 돛단배에서......, 사방에서 폭음이 터졌고, 마을 담벼락은 섬광의 꽃다발로 빛났다. 끝내 새하얗게 하늘이 밝아오며 빛이 넘쳐 한낮처럼 환해졌다. 순간, 밤은 완전히 달아나 숨었다. 밤은 밤의 방식대로 이 즐거운 전투에 참여한 셈이다. 그 순간, 나는 엄마가 만틸라 밑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엄마의 볼록하고 창백한 뺨 위를 흘러 입가를 스친 뒤 도도한 턱 위에 떨고 있다가 땅을 향해 마지막 도약을 했다"

 

 

이런 엄마도 걸작이긴 매 마찬가지다. 꽃집에서 일하면서 꽃값을 거부해서 해고를 당했다. 이에 대한 그녀의 변명을 들어보자. "그게 도대체 말이 되나요? 꽃은 돈을 받고 파는 물건이 아니에요. 꽃은 아름답지만 공짜예요. 그냥 허리를 숙여 따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요. 꽃은 생명이죠. 내가 아는 한 생명은 돈을 받고 파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난 해고당한 게 아니고 스스로 그만둔 거예요. 사방에서 자행되는 사기극에 동참하기를 거부한 거라고요. 점심시간을 틈내 지구상에서 한 번도 만든 적 없는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한 꽃다발을 만들어서 당당히 걸어 나온 거라고요"

 

 

 

 

작가는 인사말에서 "이런 춤, 이런 광기, 이런 광란을 받아주시기를"이라고 당부한다. 그렇다고 광기나 광란을 부정적인 말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굳이 제대로 수정하자면 황홀이나 도취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문학성으로 따지자면 황당한 코미디로 비춰질 정도로 매우 가벼운 소설이다. 소설의 말미는 "아빠는 책상 위에 자신의 모든 수첩을 남겨두고 떠났다", "나는 아직도 부모님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라는 말로 약간은 비극적인 분위기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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