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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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현모양처의 대명사며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우상이다. 그리고 그녀는 여성 예술가다. 여성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 나는 예술가로서의 그녀를 소설로 그려내고 싶었다. 그녀에게 빙의된 듯 나는 몰아치듯 열정적으로 초고를 마치고 출판사에 넘겼다. 그러나 출판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여타의 의견과 우려의 분위기로 나는 원고를 거둬들이고야 말았다. 어쨌거나 그녀는 우상이니까. 결국 그녀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고 조선의 여성 예술가로 살다간 여인의 이야기로 출판했다. 그것이 그녀에게도 내게도 미안하고 떳떳하지 못했는데, 개정판을 내면서 초고대로 책을 내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도 되찾아주게 되었다. 사임당. 온기와 숨결과 눈물을 가진, 우상이 아닌 한 인간을 나는 호명하고 싶었다. - '개정판을 내며' 중에서

 

 

신사임당, 조선의 여성 예술가

 

밤마다 달을 향해 비는 이 마음 夜夜祈向月
살아생전 한 번 뵐 수 있기를 願得見生前

 

이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친시思親詩다. 하지만 사임당이 지었다는 전문全文이 전하지 않고 두 구만 남은 '낙구落句'라는 불완전한 시를 읽자마자, 작가는 '만약 이 시에서 사임당이 이토록 그리워하는 이가 어머니가 아니라면?' 이라는 상상이 발동하면서 이 소설은 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완성했던 <붉은 비단보>에는 사임당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상으로서의 사임당을 온기와 숨결과 눈물을 가진 한 인간으로 그려내고 싶다는 의지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그녀의 이름을 되찾아주게 되었다. 현모양처의 대명사 '사임당', 작가는 어긋난 사랑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며 훌륭한 어머니, 아내, 딸로서의 삶을 온전히 지켜온 조선의 한 여성을 오늘의 시간대로 다시 호출한다.

 

열정과 광기, 그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그려내려던 작가는 작품 안에 조선의 대표적 여성 예술가인 신사임당의 외면적 생의 조건들을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당시엔 '끼'라고 치부되어 인정받지 못했던, 예술가적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사임당은 아들을 낳고 싶은 부모의 염원이 담긴 아명兒名 '개남開男'이란 이름을 거부하고, 자아의 완벽한 주인이 되고자 스스로의 이름을 '항아恒我'라고 작명한다. 

 

작가 권지혜 1997년에 등단,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 <폭소>, <꽃게 무덤>, <퍼즐>,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전2권), <4월의 물고기>, <유혹>(전5권), 그림소설집 <사랑하거나 미치거나>, <반 고흐, 서른일곱에 별이 된 남자>, 산문집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 <해피 홀릭> 등의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뱀장어 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 <꽃게 무덤>으로 2005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여자를, 누구나 안다고 말한다. 근엄하고 현숙한 표정으로 낡은 초상화 속에 들어앉은 여자, 케케묵은 신화 속에 박제된 여자,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 여자. 권지예가 그 여자를 여기, 불러냈다. 그런데 놀랍다. 꽁꽁 처매었던 붉은 비단보를 펼치고 들여다본 그 여자의 속살은 전혀 완벽하지 않다. 사랑하고 욕망하며, 좌절하고 신음한다. 때론 가슴으로 철철 피눈물도 흘린다. 작가는 위무하듯 그녀의 영혼을 가만가만 어루만진다. 이제 누가 물어보면 나는 천천히 말할 수 있다. 그 여자, 나도 조금 알아요. 부족하고 불완전했던 여자, 절박하리만치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었던 여자, 눈물 글썽인 채로 웃고 있던 그 여자, 살아 숨 쉬는 진짜 인간이었어요. - 정이현, 소설가

 

 

소설의 시작은 사임당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수운판관水運判官직을 맡은 아버지를 따라나선  율곡 이와 그의 맏형 선이 한 달이라는 기간의 조운漕運을 마치고 귀가하자 대문은 상중임을 알리고 있었다. 오늘 새벽, 동이 틀 무렵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큰 누이 매창의 말로는 병석에 들어 사흘 째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한편, 율곡 이는 평소 남몰래 어머니가 간직해왔던 붉은 비단 보따리가 떠올랐지만 집 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그는 출타 중인 어머니의 문갑을 열고 비단보를 열어본 적이 있었다. 그 속엔 한번도 본 적이 없던 한 남자의 초상화가 여러 점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집안 인물이 아니었다. 남자의 초상화는 도화서의 화원畵員이 아닌 이상 양반가의 아녀자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리고 두 나무가 엉켜 있는 묘한 산수화 한 점, 두 젊은 남녀가 쌍그네를 타고 있는 그림 등도 있었다. 

 

율곡 이는 졸지에 임종도 보지 못한 채 슬픔 속에서 장사를 치르고 조석으로 영위에 정성을 다해 문안을 올렸다. 지고 난 뒤에 더 깊고 짙은 향기를 남기는 꽃이 있다면 바로 어머니가 아닐까. 그는 벌써부터 어머니가 그리웠다. 하지만 '그 붉은 비단보가 함부로 펼쳐진다면?' 이란 생각이 문득 들 때면 그는 가슴이 뛰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를 반드시 찾아야 했다. "어머니,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는 어머니의 혼을 애타게 부른다.

 

일곱 남매 중 어느 누구도 성혼成婚하지 못한 처지에 집안의 기둥을 잃었으니 온 식구가 마치 어미 잃은 강아지처럼 비칠댔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눈이 맞은 안주인을 찾아 주막집을 들락거렸다. 어느 날, 삼경도 지난 시각에 율곡 이는 누이 매창을 찾아 어머니의 유품에 대해 물었다. 이때 매창은 열흘 전에 어머니가 푸른 함을 맡겼다는 말과 함께 생전에 어머니가 그린 초충도草蟲圖, 화조도花鳥圖, 화초어죽花草魚竹, 글씨들, 자수 놓은 비단 천 등이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매창은 어머니가 쓰러진 날 붉은 비단보를 보았고, 이를 함구하기로 결심했다. 이는 어머니 생의 그림자였고, 선혈 같은 생생한 고통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규보의 시, <절화행折花行>

 

 

이후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한양 정대감의 첩의 자식 준서와 초롱 두 남매를 등장시킨다. 당시 반상과 신분의 차가 분명했던 시절이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가공해낸다. 즉 사임당과 동갑인 초롱의 오라버니 준서俊瑞는 학문과 서화, 그리고 예藝에 뛰어난 자질을 지녔기에 예술적 소양을 두루 갖춘 사임당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하지만 둘은 신분의 격차를 초월하지 못하고 생이별하고 만다. 작가는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가 바로 이들의 사랑 정표임을 시사한다.   

 

기름 먹인 종이로 만든 까치연. 창공을 날다가 사임당 집 검은 대나무 숲에 와 깃든 까치연은 해가 바뀌어도 아직 그대로 있다. 대나무 우듬지에 실이 엉킨 채로 팔락거리고 있었다. 그걸 볼 때마다 사임당의 가슴도 새가슴처럼 팔락거렸다. 희고 고른 잇속을 보이며 웃던 얼굴이 해맑은 사내아이. 그럼에도, "그럼 그놈 그냥 거기 살게 놔두거라, 내 허락 없이는 내려놓지 말고", 배포도 좋게 어른스레 말하던 아이. 그 사내는 바로 까치연의 주인 준서, 당시 딸만 다섯이던 때라 두 살 많은 그가 사임당에겐 믿음직한 오라버니로 보였다. 그런데, 그가 기생 첩의 자식이라는 거다.

준서의 여동생 초롱은 사임당과 동갑으로 활달한 성격 탓에 금방 사임당과 친해졌다.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탓인지 초롱은 춤을 멋지게 추는 재주를 지녔다. 이에 사임당은 날렵하게 춤을 추는 초롱의 몸에 빠져들면서도 마음이 베인 듯 초롱이 애틋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언젠가 "춤추는 게 그렇게 좋니?"라고 묻자 초롱이 꿈꾸듯 말했다. "춤출 때만 내가, 내 몸이 기쁘게 살아 있는 것 같아" 이 답을 듣고 사임당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도 그런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림을 그릴 때면 그런 기분이었다. 


사임당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아련하게 땀 냄새가 났다. 동무 가연의 독선생에게 글을 배우고 동짓달 말미의 차갑고 시린 햇빛을 받으며 홀로 걸어서 겁없이 귀가하던 중 산길에서 한 쌍의 꿩을 발견하고 화폭에 담고자 그 자태와 색에 흠뻑 빠져 관찰하느라 맹수가 다가오는 것조차 몰랐다. 갑자기 두 눈에 파란 불을 이글거리는 산짐승을 만나 위기일발인 상황일 때 준서가 활을 쏘아 그녀를 극적으로 구출해주었다. 굶주린 늑대였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사임당에게 준서는 생명의 은인이라면서 자신의 청을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준서의 말은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닌 엉뚱한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숲은 이미 너무 어두워 무섭기만 했다. 한 지점에 도착에 말을 세웠다. 그리고는 사임당을 말에서 내렸다. 한 나무를 보라고 가리켰다. 연리지連理枝였다. 그는 이 나무를 볼 때마다 사임당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텅 빈 가슴에 무언가 허기처럼 밀려왔다. 그리웠다. 벌써 그리웠다. 뜨거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준서가 잡았던 왼손을 들어 사임당은 왼쪽 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마치 그 손이 준서의 손이라도 되는 양 눈을 감고 볼을 맡겼다. 그 손은 볼을 거쳐 어깨를 쓰다듬었다. 포근하다. 뭔가 힐링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치마를 벗었다. 옥색 비단 치마엔 늑대의 피가 튀어 검붉게 변해 있었다. 그녀는 치마를 활짝 펼쳤다. 그곳에 붉은 물감을 듬뿍 칠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만발한 모란 꽃송이들이 옥색 치마 위에 붉게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준서와의 인연을 오래토록 간직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날은 참으로 음산하고

우르릉 우렛소리 들려오네.

깨어 앉아 잠은 안 오고

생각하자니 그리움 깊어.

 

이는 예전에 준서가 처음으로 자신의 그리움을 담아 사임당에게 보냈던 시다. 이제 그는 이룰 수 없는 사랑임을 깨달은 탓인지 금강산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차가운 가을비 소리가 마치 그의 거문고 연주 소리처럼 들리면서 그녀의 귓속까지 뜨겁게 달구고 간지럽혔다. 준서의 목소리가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아아, 이제 환청까지 들린다.

 

이대로 어찌 평생을 산단 말인가. 이 꽉 막힌 수틀이 웬 말이고, 고상연한 그림은 다 무어고, 금수 같은 마음으로 글은 읽어 무엇하나. 그것들을 하면 내가 행복하다고? 진정 마음을 도려낸 채 그 텅 빈 예藝는 무엇이고, 가증스런 예와 학문은 또 무엇인가. 모두 부질없다. 차라리 짐승처럼 살 거야. 사임당은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그림을, 그리지 않을 거라고 작심하고 왼손에 가위를 들고서 오른손 손등에 힘껏 찍어 눌렀다. 

사임당은 댕기머리를 풀었다. 준서가 그녀의 머리칼 속을 뒤져 가는 수실 묶음만큼 잘라냈다. 그녀는 두 사람의 가늘고 긴 머리 타래를 아직 낫지 않은 손으로 매듭을 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복주머니나 노리개 장식을 위해 귀도래 매듭이나 나비 매듭을 지어보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동심결同心結 매듭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동심결이 완성되었다. 머리칼로 만든 동심결이 십자 모양으로 야무지고 단단하게 잘 만들어졌다. 준서의 얼굴에 감동이 서렸다. 먼 길을 떠나는 그에게 전하는 정표인 셈이다.

 

 

 

 


사임당은 고이 간직해둔 열쇠를 꺼내 장롱의 깊은 곳을 열어 붉은 비단 보자기로 싼 함을 꺼냈다. 잠깐 주위를 살폈다. 매창이 동생들을 데리고 외출해서 집 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이 붉은 비단 보자기를 몇 번 열어보지는 않았다. 가슴 아픈 추억들이 보자기를 풀면 독사처럼 튀어나와 물고 놔주질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두려운 세월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독사의 독도 치료할 만큼 내성이 강한 약이었다.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재주 많고 총명하고 속도 깊은 신씨가의 둘째 딸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왔지. 남편과 시어머니 거스르지 않고 여자로서의 삶에 순응하며 일곱 자식 키우며 힘든 세월도 보냈지. 최연소 장원급제자의 어머니라며 아들 가진 여자들이 모두 부러워했지.

 

남들은 모를 것이다. 그녀의 삶이 아무런 고통 없이 갈등도 없이 순하게 이어져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의 삶에 치를 떨면서도 유능제강柔能制剛이란 단어를 새기면서 살아왔다. 부드러움이 결국 강함을 이긴다. 그녀는 삶을 껴안기 위해 구부러졌다. 엄나무 연리목처럼 구부러지고 휘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숯 더미에 낡은 옥색 치맛자락을 얹었다. 불꽃은 배고픈 짐승의 혀처럼 날름날름 비단 치마를 잘도 먹었다. 머리카락이 타는 듯, 살이 타는 듯한 비단 타는 냄새가 역하게 풍겨 왔다. 그 냄새가 너무 역하다 싶을 때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솟았다. 불이 붙은 치마를 끌어다 입을 막았다. 선지 같은 붉은 핏덩어리가 치마에 쏟아졌다. 각혈이었다.

 

 

우의정댁 작은 마님, 그녀는 바로 사임당의 친구이자 죽은 준서의 여동생 초롱이다. 오라비의 유품인 누더기를 매수한 옥졸로부터 전달받았는데, 저고리 소매 안 겨드랑이 쪽에 꿰매어 품에 지녔던 물건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바로 동심결 매듭이었다. 이를 사임당에게 전달하면 당연히 눈물을 흘릴 것이고 오히려 복수하는 기분이 들 것으로 여겼다는 게 초롱의 말이었다.   

매창은 초롱이 다녀간 후 어머니 사임당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푸른 비단보에 싸인 그림함은 매창에게 전달되었고, 타다 만 붉은 비단보의 그림은 어머니의 단심丹心이었다. 아니 어머니 이전의 한 여인의 마음이었다. 그 붉은 비단보 안의 그림을 볼 때면 매창은 한없이 자유로움을 느꼈다. 비록 여인으로서 삶이 갇혀 있더라도 화폭에서는 한없이 자신의 삶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위안과 희망이었다. 양식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경을 그린 것도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강릉 선교장 

 

 

마흔여덟 해를 살다 간 항아의 예술적 향취를 찾아서

 

결국 예술가란 작품으로 남는 사람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예술가는 생에 함몰되지 말아야 하며 어떡하든 작품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어쩌면 영원한 예술가의 존재는 자신만의 '붉은 비단보' 안에 갇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소설 속에서 내가 툭, 던져놓은 '붉은 비단보'를 열어 그녀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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