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박도봉의 현장 인문학
김종록.박도봉 지음 / 김영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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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알루미늄 전문기업 알루코그룹(전 동양강철) 회장 박도봉과 어지러운 세상에 일침을 날려온 실천하는 인문주의자 김종록이 만났다. 박도봉 회장은 모두가 기피하는 3D 제조업으로 1조 매출 흑자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이 책은 베이비붐 세대의 시골 흙수저 출신 창업가가 창업성공 신화를 쓰기까지의 과정을 인터뷰 형식을 통해 담담히 풀어내는 한편, 서로 다른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경영인과 인문학자가 고민하고 좌절하는 이 땅의 청장년들에게 전하는 진심어린 조언과 사회를 향한 변화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산업 현장에서 꿈을 키우다

 

"젊은 사람들을 볼 때면 막막합니다. 나부터라도 일자리를 더 만들고, 무언가 도움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지지리도 못난 내 이야기를 듣고 ‘아, 나도 할 수 있겠는데!’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 박도봉

 

 

 

박도봉 회장은 산업화 3세대에 해당하는 중견기업 창업자다. 정부로부터 금융 특혜를 받던 산업화 시기도 아니고, 국내에서는 버텨내기도 어렵다는 5대 취약 산업(열처리, 주물, 주조, 단조, 도금)으로 현재의 성공을 거둔 것이라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대다수의 우리 시대 청춘들처럼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지방에서 상업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며 창업자의 꿈을 키웠다.

백수 시절에 현재의 아내를 만나 방 두 칸짜리 반지하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겨우 옷장과 생필품을 들여놓을 정도로 옹색한 집이었다. 차일피일 취업을 미루며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무렵, 처형이 다니던 'H열처리회사'에 취직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허름한 열처리 공장에서 2년 가까이 기름밥을 먹다가 1인 청년 창업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전당포와 처형에게 빌린 600만 원으로 창업했다.

그는 대전상고와 목원대 상업교육과를 졸업하고 숭실대 대학원 중소기업 노사지도학과를 다니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산업현장에 뛰어들었다. 쇳가루와 기름때 전 현장 노동자로 출발하여 특유의 영업력과 신기술 개발로 (주)케이피티를 설립하고 코스닥에 상장시킨 창조경제의 모델이기도 하다. 

 

 

IMF 외환위기로 법정관리 중인 동양강철을 2002년 인수해 재상장시키면서 ‘고래를 삼킨 새우의 신화’로 재계의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상장폐지된 기업이 재상장된 첫 사례다. 전 세계 경제의 세계화 추세를 미리 예측해 2007년에 이미 베트남에 진출, 현대알루미늄VINA를 설립해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무대에서 비상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파나소닉, 샤프, 소니, 필립스 등 전 세계 거의 모든 글로벌기업들과 협업하고 있다.


2016년 한국언론문화진흥원 '한국경제를 빛낸 인물', 2014년 TV조선 경영대상, 2011년 매경이코노미 '대한민국 100대 CEO', 2010년 대전MBC 지역경제발전 부문 한빛대상, 2010년 대한경영학회 최고경영자대상, 2006년 지식경제부 석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한 그는 자수성가형 기업인이자 창조경제의 산증인이다.

 

 

 

땀이 혈통이다

 

태어날 때부터 승자와 패자가 정해져버린 계층 고착화는 '금수저, 흙수저론'을 낳았어요. 그런데 이렇다 할 패자부활전도 없다면 정직한 노동이 무의미하게 돼요. 청년들의 노력 또한 헛수고에 그치는 거지요. 심각한 문젭니다. 헬조선, 탈조선이 왜 나왔겠어요. 각자도생할 거면 사회와 국가 시스템이 왜 필요해요.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나와 우리 그룹에서도 힘닿는 데까지 이바지할 생각입니다.

 

박도봉은 오직 땀 흘려 정직하게 모은 돈만을 인정한다. 최근에 새롭게 불거진 옥시 사건이 좋은 예다. 돈벌이를 위해선 살인도 서슴없이 하는 기업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그는 가난하다고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위세를 행사해서도 안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부자들의 돈은 결국 서민들의 지갑에서 나온 거잖아요. 감사해야 할 일이지 오만하거나 교만 떨 일이 아니에요. 뿐더러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많이 가진 사람이 불법이나 편법까지 쓴다면 공정하지 못해요. 호랑이에게 독수리 날개까지 달아준다면 살아남을 동물이 없어요. 결국은 먹이사슬 자체가 파괴되고 마는 거죠"

 

 

성실이 결국 '통通'이다

 

알루코 그룹의 사시社是는 '신의, 성실, 기술개발'이다. 한때 그는 직원들에게 업무를 분장하고 일본으로 갔다. 당시 한국에 비해 최소 20년의 앞선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의 첨단 열처리 공장들을 견학할 목적이었다. 또한 선진기술을 배우지 못하면 조만간 일거리가 없어지는 불행이 닥쳐올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개발을 병행해야 한다는 철학을 세우고 있었다. 

 

"이제 겨우 은행대출을 튼 영세업체에서 해외출장을 가고 R&D를 한다니까 다들 비웃었을 겁니다. 그런데 전에 다니던 회사를 나온 이유가 바로 연구개발 때문이었잖아요. 지금 좀 잘 돌아간다고 현실에 안주하다보면 얼마 못 가 도태하게 돼 있습니다" 

 

 

대기업은 상전이 아니다

 

한국경제는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하청기업들은 대기업에 목을 매고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도봉은 대기업이 영원한 상전이 아니라고 믿고 처음부터 관계 설정을 달리 했다. 즉 발품을 팔고 기술개발에 적극 투자한 후 양질의 싼 제품을 만들어 '우리 물건 한번 써 보시오'라며 샘플을 내놓았던 것이다. 상생하려면 좋은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전략은 주효했다.

 

'R&D 주권'은 누구나 갖고 있어요. 그걸 제대로 활용하면 서로 윈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70퍼센트가 스스로 R&D 주권을 포기했어요. 대기업이 시키는 대로 만들어 납품하는 수준입니다. 대기업이 개발해놓은 걸 편하게 받아먹으려고만 해요. 그렇게 무임승차하려니 '빽'이 필요하고 상전 모시듯 절절 맬 수밖에 없죠. 그래서는 기업이 절대로 오래 못 갑니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다

 

대전에 있는 동양강철 본사에 처음 출근했을 때, 직원들이 극도로 그에게 경계심을 보였다고 한다. 즉 '구멍가게만 한 회사에서 온 저런 사람이 무슨 수로 이 부실 덩어리를 떠안고 갈 수 있을까. 적당히 생색내며 뒤로 빼먹다가 물러나겠지' 하는 눈치들이었습니다. 그사이 부서와 직원들 간 신뢰도 금이 간 상태였습니다. 신뢰부터 회복시켜놔야 했습니다.

 


"오늘부터 아무리 어려워도 어음은 발행하지 않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어음을 남발해서 할인하고 한몫 크게 챙겨서 튈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잘 지켜보세요. 어음 발행하는 날 대표직을 사퇴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인수합병이 성공하고 말고는 사람한테 달린 것이다. 인수합병이 실패하는 건 인수한 측이 점령군처럼 굴기 때문이다. 군림하려고 들어서는 절대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이후 그는 기술 후진국이라고 비아냥대는 중국 광저우에 노조원 40명을 견학보냈다. 다녀온 뒤, 그들은 모두 기술 후진국이라는 편견을 떨쳐버렸고 오히려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노조는 반발없이 그를 잘 따라주었다.

 

 

돈을 나의 노예로 만들다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면 절대 행복하지가 않다. 그리고 돈에 집착하고 매달린다고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다. 벌어보면 안다. 아무리 벌어도 돈은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그런데 땀을 흘리면 심신이 모두 개운하다. 특히 생각이 맑아진다. 땀은 그 자체로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렇게 땀을 흘리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맛이 있다.  

노동착취나 '열정페이' 같은 건 사라져야지요. 예전에는 현장에 부당한 일도 많았지만 이제는 구조적으로 많이 개선됐어요. 그런데도 땀의 가치를 얕보는 풍토가 아직까지 남아 있어요. 땀 안 흘리고 한몫 잡아보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경멸하는 풍토가 돼야 옳지요.

 

 

현장에 있으면 비로소 보인다

 

소년 같은 풍모를 지닌 박도봉은 작업현장에 서면 카리스마가 넘친다. 일반 직원들과 함께 있을 때 별반 표가 나지 않지만 현장에서 공정과정을 세심하게 점검하고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함에 있어서 특유의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그는 마치 곷을 본 나비처럼 현장에서 더 빛나는 경영자 스타일이다.  

저는 실용주의자예요. 현장 체질의 실무형 경영자이고요. 현장에 있어야 힘이 나고 아이디어가 샘솟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현장에서 직원들하고 부대끼면서 연구하고 개발도 했습니다. 현장에 나와야지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사무실에서는 절대 안 보이는 문제들이 현장에서는 고스란히 드러나고 해결의 실마리도 보입니다. 우리 회사 임원들 30퍼센트가 대학졸업장이 없는 현장 출신입니다. 실력만 있으면 대학졸업장이 무슨 문젭니까.

 

 

3콩 안 하기 운동

 

베트남 은 한국과 생활 문화가 많이 다르다. 베트남 사원들은 늘 콩사오(괜찮아), 콩비엣(몰라), 콩번데(문제없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일이 잘못 되어도 콩사오, 책임지라고 하면 콩비엣, 공사기간이 늦어져고 콩번데 등, 완성된 제품이 정밀하고 깔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량품 투성이었다. 베트남 현지 공장 가동 초창기엔 여러 가지 문제로 심각할 정도였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사회주의 유습이 남아 있어서 직원들이 경제관념이 부족했어요. 조직 문화의 차이 때문에 한국 간부들과 섞이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죠. 이걸 극복하려고 저와 임직원들이 작업복 입고 현장에서 밤새워 일했습니다. 그걸 며칠간 지켜본 베트남 직원들이 다가와 ‘이렇게 일하면 죽는다. 우리가 도와줄 테니 그만 가서 쉬어라’ 하면서 등을 떠밀어 내보내더군요. 그제야 회사가 자신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게 아니라 본래 모두가 이렇게 일하는 거로구나 하고 이해했어요. 그 뒤로는 기술도 빨리 배우고 애사심이 생겼지요.

 

 

어른들이 틀렸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는 전체가 아닌 부분만 배울 수밖에 없어요. 거대조직이니까 변화와 혁신도 어렵고요. 하지만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기술과 영업, 연구개발, 마케팅까지 두루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거기서 신바람 나게 일하다보면 길이 보일 겁니다.

 

산업화 세대들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햇다. 한국전쟁으로 이 땅이 폐허가 되자, 산에 나무를 심고 도로를 닦고 공장을 세웠다. 그 공장에 불을 밝히고 철야작업을 하며 수출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그 주역들의 희생 덕분에 이 나라의 경제는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과거엔 취업 걱정을 그리 심하게 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만 하면 몇 군데 중에서 골라서 갔다. 

윗세대가 차려놓은 밥상을 받아먹는데 익숙했지 다음 세대의 밥상을 차려주지 않았다. 지금 세대의 잘못도 아주 크다. 지금 그 대가를 우리 아들, 조카 세대가 치르고 있는 것이다. 드래서 박도봉은 "지금이라도 우리 세대가 21세기에 걸맞은 창의적인 성장엔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미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청년이란 무엇인가?

 

창업이 그냥 돈 버는 일이 아니에요. 전에도 말했지만 꿈을 펼치는 일이죠. 보통 사람 기준으로 100억 이상의 돈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돈이면 집도 사고 좋은 자동차도 사고 아담한 건물도 사서 충분히 안정적으로 살 수 있지요. 그 이상의 돈은 사회자본이고 공공재라고 봐야지요.

 

'100세 시대'에 대부분 고작 60세면 정년퇴임한다. 향후 10~20년은 거뜬히 더 일할 수 있는데도 일에서 손을 놓아버린다. 이리되면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청춘이 아니라 그냥 늙어저리는 거다. 이렇게 30년 이상 버티다 죽으면 얼마나 인생이 아까운가 말이다. 그래서 인생 2막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65살이 넘었다고 공짜 지하철 좋아하지 말고 내 돈으로 떳떳하게 승차할 줄도 알아야 다음 세대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는 65세에서 75세 무렵입니다. 일하려고 노력하면 늙지 않지요. 활동 공간이 넓어지면 안 늙어요.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 겁니다" - 김형석 교수

 

 

노력이 혈통을 만든다

 

"혈통이 혈통을 만드는 게 아니라 노력이 혈통을 만든다"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에서

 

인류의 역사는 혈통이 혈통을 만들던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젠 땀의 혈통시대가 열렷다. 바로 근대의 시작이며, 근대는 열심히 일하고 부를 축적한 이들의 시대였다. 그러한 근대정신이 오늘날과 같은 물질적 풍요를 낳았고 귀족이 아닌 시민세력을 키워냈다. 시골 흙수저 출신의 창업 스토리는 땀방울로 세워올린 오벨리스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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