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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에서 우주까지 - 이외수의 깨어있는 삶에 관한 이야기
이외수.하창수 지음 / 김영사 / 2016년 5월
평점 :
우리의 얘기는 마침내 종착지에 닿았다. 한 알갱이의 먼지가 포르르 날아오르며 시작된
선생과의 대화가 닿은 곳은 우주였다. 광대무변의 경지... 그곳은 분명 우주였다. 하지만 내 두 발은 여전히 처음 먼지로 떠오르던 그곳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 알갱이의 먼지가 우주의 넓이만큼 커진 것과 같았다. 그때 문득, 어떤 영상 하나가 만들어졌다. - '갇힘과 풀림'
중에서
이 책은 작가이자 수행자인 이외수와 그의 도반
하창수가 '마음으로 느끼고 영혼으로 보는 세계'에 관한 신기하고 기묘한 대화를 담고 있다. '먼지'로부터 시작된
이들의 대화는 마치 끝말잇기 놀이를 하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한번 얘기가 시작되면 대여섯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외수 작가는
함암치료의 후유증 탓으로 자주 물이나 차를 마셨다. 그럼에도 대화는 계속되었다. 육체는 쇠잔해고 정신과 영혼은 결코 무너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 알갱이의 먼지가 날아오르며 시작된 대화가 마침내 도착한 종착지는 바로 우주였다.
티끌같은 먼지가 광대무변廣大無邊의 경지인 우주의 넓이만큼 커진 것이다. 유튜브에 동영상으로 올라온 이외수의 '젓가락
신공'이 있다. 그는 나무젓가락을 던져 벽에다 꽂는다. 순식간에 벽에 꽂힌 젓가락으로부터 먼지는 벽 아래로 천천히 내려 앉는다.
순간이동, 즉 먼지는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작가 이외수를 흔히 기인奇人이라고 칭한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여전히 주목하지 못한 그의 이야기가 있다. 우여곡절의 인생여정이 만든 파격적인 성찰과 깊은 절망과 상처를 딛고 닦은 수행과 도력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신비주의와 우주적 영성을 탐구해왔지만, 우리 사회의 관습이나 이성에 비추어 볼 때 쉽게 이를 동의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영역이다.
먼지에서 우주를 깨달을 때 우리 모두 자유로워지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소통할 때 세상이
행복해진다. 물질 중심의 세계에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깨어있는 삶을 위한 지혜이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잊고
있었던 마음을 점검하고 참 자아를 찾아가는 공부에 나선다. 이제 먼지와 대화를 시작해보자.
먼지와의 대화
"우리가 만약 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 칸트
이들의 대화 속에 고사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이 등장한다.
이는 우공이라는 노인이 자신의 집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을 옮기려고 삽질을 시작했다는 고사로 어떤 이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아냥댈 때 사용하는
말이다, 사실 태산이 아무리 크고 높다한들 작은 알갱이들의 집합체이므로 비록 사소하고 하찮은 일일지라도 계속 하다 보면 못 이룰 것도
없다.
그래서 먼지를 작은 것, 하찮은 것, 별거 아닌 것이라고만 비하할 게 아니라 매우 거대한
것으로부터 최종적으로 분리되는 무엇, 즉 최초의 무엇이라고 생각한다면 먼지라는 존재는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물질인 것이다. 따라서 먼지는
무한無限의 다른 이름이요, '먼지라는 이름을 가진 우주'로 부를 수 있다.
이처럼 이들의 대화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통찰의 자세를 일깨워준다. 그리고 인식하고
자각하는 과정 내지는 태도를 바꾸라고 말한다. 이리 되면 우리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될 것이고 세상엔 진실로 하찮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 주변의 모든 것들은 모두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먼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우리들에게 가치의 수정을 요구한다. 세상 만물이 결국 먼지로
바뀐다는 것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재산이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학식이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마침내 동일하게 변한다는 의미이다. 즉 우주
안에서 공평한 존재라는 것이다. 더구나 이는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우주적 존재로서의
통과의례이다.
우주만물은 결국 먼지에 불과하다.
가장 하찮게 여겼고 보잘것없이 생각해온 그것이 가장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자의식을 내려놓게 만든다. 먼지는 자의식이 철저히
배제된 상태로 떠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는, 정착하려는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자유방임 그 자체이다. 어느 누구도 먼지처럼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먼지는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스승인 것이다.
삶의 신비에
대하여
"사물은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나의 생각을 거쳐서야 이상해지는 것이기에, 이상함은 결국 나에게 있는 것이지 사물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 곽박,
<산해경山海經> 중에서
채널링은 서양 용어이다. 채널이란
소통이나 대화를 뜻하는데,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방식의 대화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아무튼 1960년대 이후 채널링이라는 용어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해지게 되었다. 작가 이외수는 10년 이상 달에 있는 지성체와 채널링을 통해 다양한 대화를 나눈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달 친구'들한테 채널링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는데, 그들은 "의식의 조우, 의식의 여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답을 했다고 한다. 그는 채널링을 통해 물론 여러 가지 정보를
얻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말하듯 의식의 만남임을 강조한다. 만물과 합일한다는 개념으로 봤을 때, 그 합일을 이뤄내는 대전제가 되는
소통과 공유를 말한다. 채널링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영혼의 치유는 신과 교류할 수 있는 역량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기도를 통해 신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이외수가 말하는 신은 조상신이니 장군신이니 하는 수준의 귀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특정 종교의 우두머리 역할을 담당하는 그런
존재도 아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교류해야 하는 건 우주를 창조하고 관장하는 존재, 먼지에서 우주까지 두루 편재하는 존재,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존재인 신이다.
신과 소통하려면 우리 자신을 정精-기氣-신神이 고루 조화된 건강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연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우주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자연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우주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결국 그 안의 현상들이
'초자연'이 되어버리고, 신비에 빠지고, 몽매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 신의 사랑도 아름다움도 우리 것이 될 수 없다. 낙엽이 되어보고
돌이 되어보면 낙엽도 알게 되고 돌도 알게 된다. 알면 느끼게 되고, 느끼면 깨닫게 된다. 먼지도 우주도 모두가
자연이다.
신을 알고, 깨닫고,
느낀다는 것
그들은 먼지와 우주가 별개의 것인 줄
알고 있었으며 모래와 산이 별개의 것인 줄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불가분의 관계들을 맺고 있으며 하나로부터 태어나 하나로
돌아가기 위한 순환의 고리들임을 그들은 의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 이외수, <벽오금학도碧梧金鶴圖>
중에서
가끔 신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사를 버았다거나, 성모마리아를 보았다거나, 부처님을 보았다거나,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의 진술을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은 볼 수 있거나 들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은 오직 마음으로, 사랑으로, 아름다움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자신이 나무가 되면 그 안에 임해
신을 느낄 수 있다. 하늘이 되면 그 안에 임해 있는 신을 느낄 수 있다. 먼지가 되면 먼지에 임해 있는 신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고 천차만별하고 무량무한하다. 이렇게 무궁무진하고 천차만별하고 무량무한한 것 안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신이다.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나만을 위한 신, 나만을 사랑하는
신은 없다. 내 가족, 내 나라, 내 종교만 사랑하는 신은 가짜 신이다. 신은 만물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름답게 하는 존재이다. '스스로 돕는
자'란 '스스로 하기 힘든 일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를 말한다. 자신이 아닌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신은 바로 이런 사람을
돕는다. 한 알의 먼지를 사랑하는 존재만이 광활한 우주를 사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