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이소영 지음 / 홍익 / 201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스물셋 겨울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졸업에 필요한 영어 성적을 위해 방학 때도 매일 도서관에 갔다. 하지만 도서관에 들어서면 모두가 공부에 열을 올리는 열람실을 제쳐두고, 정작 내 발길이 찾는 곳은 1층 구석의 외국 도서 서가였다. 그곳에서 손바닥보다 큰 영어 머리글자가 적힌 화가들의 도록을 무작위로 뽑아 책상으로 가져왔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딸려 온 책 한 권에 눈길이 멈추었다. <Grandma Moses>라고 적힌 얇고 낡은 책이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어느 미대생의 그림 동화책

 

인생 후반전에 관한 자기계발도서를 통해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는 모지스 할머니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 도서는 접하지 못했는데, 이 책의 저자 이소영 또한 그녀의 삶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이렇게도 많은 자료들을 취합해 우리들 앞에 그녀의 스토리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먼저 어린 시절부터 미술과 국어를 좋아해 미술을 전공했고 그림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자.

그녀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교육 석사과정을 마친 뒤 '소통하는 그림연구소 빅피쉬미술' 중에서 아이들에게 미술교육을 하고, 전시 해설과 명화 강의를 하며, 신문 지면과 온라인상에서 그림 이야기를 연재하는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림을 전하고 있다. 이런 자신을 스스로 '아트메신저'라 부른다. 

 

 

 

 

 

 

매우 늦은 나이인 75세에 처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101세까지 살면서 그림 하나로 미국인들을 매료시킨 할머니가 있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할머니의 손으로 빚어낸 작품들은 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미국인들에게 응원의 노래가 되었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그림들은 그 어떤 유명화가의 작품보다 더 따뜻한 위안이 되었다. 이 책은 40여 편의 그림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그녀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눈망울이 큰 소녀, 시시

 

1860년 9월 7일, 미국 버몬트 주 경계와 가가운 뉴욕 주 그리니치의 가난한 농장에서 10남매 중 셋째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어릴 적 그녀의 이름은 시시Sisssy였다. 이는 '작은 여자아이'라는 뜻이다. 커다란 눈을 가진 이 소녀는 호기심이 많았고 매사에 긍정적이었으며 농부인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즐겁게 했다. 유년 시절의 이 기억은 마치 동화책과 같아 그녀의 그림에 모두 반영되었다.

 

1870년대 뉴일글랜드 지역의 자녀가 많은 집, 특히 딸들이 있는 집은 온갖 집안일을 딸들이 했다. 그 시절의 딸들은 부모들이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레 평범한 가정부였다. 집안의 재정적 부담을 줄여야 했기에 어릴 적부터 살림살이를 배우고 가사를 돌보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심지어 딸들이 없는 다른 집으로 가서 살면서 그 집 살림을 도와주는 일이 흔했다.

 

1850년대의 인구조사를 살펴보면, 당시엔 3명 중 1명꼴로 자녀들이 다른 집의 가정부로 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모지스 할머니의 어린 시절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도 다른 집의 가정부로 일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집 식구들은 거녀를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그래서 학교까지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던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학교생활 기록은 '우리 가정이 행복하기를'이다. 이는 14살에 남긴 졸업식 문구이다.

 

 

붉은 체크무늬 벽돌집을 사랑하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속엔 붉은색과 흰색으로 된 체크무늬의 집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의 랜드마크였다. 비록 낡고 허름한 정류장이었지만 이 건물은 평생 그녀의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건물은 1907년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것은 낡았었어요. 여행길에 머무르는 정류장이었는데, 사람들은 2마일마다 있는 정류장에서 말을 갈아탔었죠"

 

누구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어른이 되면서 이 기억이 희미해지다가 어느 순간 힘들 때 불쑥 또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을 지녔다. 그렇다. 그녀에게 체크무늬 벽돌집은 잘 보관되었던 어린 시절의 씨앗과도 같았다. 힘들 때마다 미소를 짓게 만드는 추억의 장소였을 것이다.

 

이처럼 작은 그림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가 말이다. 이를 감상하는 우리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그 시절로의 추억여행을 떠난 기분이 든다. 모지스 할머니가 어린 시절을 주로 보냈던 버몬트 주에는 베닝턴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서 그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모지스 할머니의 기억 저장소인 셈이다.

 

 

퀼팅 모임에 관한 추억

 

우리들의 선조들은 함께 모를 심고 김을 맸다. 뉴잉글랜드의 시골 아낙네들은 함께 퀼팅을 하며 친목 모임을 가졌다. 이곳의 겨울은 유난히 다른 곳보다 길었고, 땅도 척박했다. 그래서 농사로 생계를 삼기엔 부족했기에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녀가 살던 시절의 마을 아낙네들은 가을부터 봄까지 자수를 놓으며 함께 지냈다.

 

당시 미국은 섬유 산업이 활발했고 천 속에 솜을 넣어 누비는 퀼트를 많이 햇다. 퀼팅 모임에서 자연스레 부녀자들은 함께 일하며 공동체 의식을 쌓았다. 각자 집에서 남은 천 조각을 가져와 둥글게 둘러앉아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바느질을 했던 것이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를 중심으로 모여 앉아 때로는 디자이너가 되고, 때로는 앞집 아들과 언덕 너머집의 딸을 연결하는 중매쟁이가 되고, 누구네 자식은 도시에 나가 회사에 취직했다거나, 우리 남편은 잔소리가 심하다며 흉을 보기도 했다.

 

 퀼팅 모임(1950년)

 

이러는 가운데 주방에서는 요리가 한창이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서 함께 먹는다는 것이 풍요로움 그 자체이다. 마치 잔칫날을 방불케하는 이런 모임을 그림에 담지 않을소냐. 연애를 하면 무뚝뚝했던 사람도 애교가 생기고, 말이 없던 사람도 수다쟁이가 되는 것처럼 그림도 그렇다. 좋은 그림은 우리의 삶에 다가와 우리를 변하게 하고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준다. 

 

 

마을 축제일

 

모든 축제는 그림이 된다. 아래의 그림은 1950년에 그린 <마을 축제>이다. 우리들의 1950년은 동족상잔의 피를 뿌린 기억조차 하기 싫은 그런 해이다. 그림 속의 사람들은 분주하다. 각자의 공간에서 축제를 준비하면서 즐기고 잇다. 그림 정가운데 풍선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덕분에 우리들 마음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 시절 핵심적인 교통수단은 말이다. 당연히 이런 날엔 말을 사고판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풍성하다. 앞집 사는 꼬마도, 뒷집 사는 청년도 빼놓지 않았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들을 가득 담아내고 있다. 그림만 보면 욕심쟁이임에 틀림없다. 그 덕분에 우리들은 마을 구석구석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을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들은 시간도 공간도 지배할 수 없다. 오직 우리는 순간만 지배할 수 있다. 순간을 지배하는 것 중 하나가 그림이다. 자신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순간을 화가는 그림이라는 행위로 지배한다. 잊지 못하는 것은 수동적이고, 잊지 않는 것은 능동적이다. 아마도 그녀는 숱하게 행해왔던 많은 일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림으로 그렸던 것이리라.

 

 

삶은 아름다운 소풍이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歸天>이란 시를 통해 우리들의 인생길은 아름다운 소풍이었음을 노래했다. 한때 나는 이 시를 읽고 또 읽었던 적이 있다. 당시 내 삶은 매우 팍팍했었다. 매년 찾아오는 긴 겨울도 결국엔 떠난다. 우리들의 삶 또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의 고통이 너무나도 괴로워 생을 마감하고 싶지만 꾸역구역 지내놓고 보면 그처럼 아름다울 수가 없다. 우리들의 인생은 사계절과 같다. 이를 수용하면 또 그렇게 다 지나간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은 소풍이다.

 

1961년, 모지스 할머니는 101세의 나이로 귀천했다. 남은 작품이 모두 팔리면 그 돈으로 농촌 기술 지원금과 극빈자와 불치병 환자들에게 기부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하얀색 눈이 내리던 겨울날에 그녀는 아름다웠던 지구에서의 소풍, 즉 삶을 마감하고 떠났던 것이다. 그녀의 묘비명엔 이렇게 쓰여 있다.

 

"그녀의 목가적인 그림들은 사라져가는 시골의 풍경을 보존하고 그 정신을 담아냈다" 

 

 

<오늘은 휴교>(1947년)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들의 생은 길든 짧든 간에 참으로 다양한 일들이 발생한다. 모지스 할머니도 그러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을 먼저 하늘로 보내야 했고, 갑자기 남편과도 사별했으며, 더 이상 십자수를 할 수 없을 만큼 손이 굳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모든 일들을 자신의 상처로 받아들였다. 그런 후 또 다른 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열정이 있는 한 늙지 않습니다"

 

가난한 농가의 딸로 살며 가정부 일을 했던 '인생 1막',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로 살았던 '인생 2막', 그리고 한 개인으로 살면서 화가로서 그림을 그려나갔던 '인생 3막'을 통해 우리들은 나 자신의 삶을 존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우는 듯하다. 무릇 인간이란 오로지 열정과 의지로 지구에서의 소풍을 즐길 뿐이다.

 

 

"삶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에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