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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읽는 시간 - 불필요한 생각에서 가벼워지는 연습
스즈키 도시아키 지음, 김정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선입관'에 대해 20년 이상
연구해왔다. 세상에는 "나를 바꾸고 싶다", "성격을 바꾸고 싶다", "인생의 흐름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를 위한 책도 많이
나와 잇다. 그러나 나라는 인간은 벼락치기로 익힌 기술을 이용해 바꿀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다. 나라는 자아는 생각 이상으로 강고하며 쉽게
바뀌지 않는다. - '들어가며' 중에서
내 인생을 속박하는 각본을 고쳐 쓰라
20년 동안 '자아' 분석에
매진해온 심리학자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불필요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정리한 이 책은 정신의학자 에릭 번(Eric Berne)의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 이론에서 제창한 '인생 각본'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자아와
선입관의 관계를 심도 있게 고찰한다.
저자인 스즈키
도시아키 시코쿠대 교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공허한 사람들, 행복해지고 싶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아
고달픈 우리들에게 무의식에 있는 부정적인 사고의 구조를 파헤치고 내면세계에 들어가 불완전한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행복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한결 자유롭고 가벼워지는 삶의 방식을 안내한다.
이 책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다양한 심리치료를 통해 부정적 선입관에
둘러싸인 과거와 이별하고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자기 긍정감'을 키우는 방법을 알려준다. 자신을
진단하는 '차트 분석법'과 '인지 요법',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발코니 사고법', 마음의 공간을 만드는 '마음 정리법', 의식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자신을 다독이는 '빈 의자 치유법', 자기애를 높이는 '일기 쓰기' 등 어떤 상황에서든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마음 단련법'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인생 각본을 따른다
정신의학자 에릭 번은
교류분석 이론을 통해 심리적 프로그램인 '인생 각본'을 제창했다. 이는 실제로
각본을 쓴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면의 깊은 심리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인생의 각본을 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체험을 통해 느꼈던 점을 '난
이런 인생을 살 거야' 처럼 자신의 마음 속에 각본을 그려나간다. 그야말로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어떤 신념이나 생각을 품게 되면 무의식중에 이를
따라 행동하고, 마침내 이를 현실화하는 무서운 힘을 지녔다고 한다. 심리학에선 이를 '자기실현적 예언'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심심풀이로 본 점괘에서 '일주일 안에 사고를 일으킬 겁니다'라는 걸 받게 되면 불길한 마음이 들어 이를 잊어버리려고 애쓰지만
자신도 모르게 출근을 서두르다 가벼운 접촉 사고를 내는 그런 경험을 할 경우를 가리킨다. 즉 자신도 모르게 이미 사고를 낼 거라고 믿고
그런 방향으로 움직인 셈이다.
'나는 운이 나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각본을, '나는 운이 좋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각본을 스스로 쓰고 있는 셈이다. '항상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각본을, '어째서인지 중요한 순간에 일이 틀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각본을 쓰고 그 각본대로 움직인다. 실제로 운이 나빴거나 우울한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전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스토리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야구에서도 스스로 부정적인 심리에
빠져 포볼을 남발하여 위기에 빠진 다음 장타 한 방을 맞고 강판당하는 투수들에게 야구팬들을 '작가'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제대로 승부를 펼쳐
보기도 못하고 스스로 멘탈이 붕괴되어 과거의 나쁜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쁜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가 결국엔 대량 실점을 한 후 마운드를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스토리에 울고 마는 투수이므로 '작가' 라는 비아냥 대접을 받는 것이다.
각본에 숨어 있는
선입관先入觀
행복해진다는 각본을 갖고서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게임을 계속 한다면 이는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불행해진다는 각본을 빠져 스스로 날마다 불행해지기 위한 게임을 한다면
자연스레 불행의 길로 돌진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인생 긱본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에 바꾸려 해도 쉽게 바꿀 수가
없다.
애초에 금지령을 통해
갖게 되는 '이렇게 해야 해', '이래야 해' 라는 생각은
유소년기에 우리가 멋대로 품은 선입관이다. 아무도 "그렇게 되어야 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부모나 교사가 "이래야 해"라고 말했다
한들 그 말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는 그 사람의 자유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이 그들의 말을 따르겠다고 결심한다면 그 시점이 바로 '부모나
교사는 옳다'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정된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각본에
지배당한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각본을 구성하고 있는 선입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입관은 '끼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색안경'과
같다"
누구에게나 '내 성격은 이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런 것을 선입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두운 성격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 이유를 댈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기가 꺼려진다", "금방 침울해진다" 등의 이유를 들겠지만 사실은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행동을 선택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것을 스스로 '나는 어두운
성격이야'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성격은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어떻게든 바꿀 수 있다.
선입관의
특징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며 당연해서 그것이 있는 줄도 의식하지 못한다
자기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네 그것을 전제로 삼아버린다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근거를 물을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 유명한 그림은 보는 이의 생각에
따라 노老부인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젊은 여성으로도 보인다. 어떻게 보이는가?
동일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달리 보인다는 것은 각자의 견해나 사고방식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편향, 즉 선입관을 부여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유의 필터를 통해 특정한 시각을 확립하면 나머지 정보는 배경으로 후퇴하고 만다. 동시 두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다. 어느 한쪽만
보게 된다.
마이너스 방식을 버리고
플러스 방식으로 바꾼다
완벽주의자인 경우엔 이상으로 삼는
100퍼센트의 자신을 기준으로 현재의 자신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런 인지적 왜곡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제로'를 기준으로 자기평가를 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업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이번 달은 망쳤어'라고
자책하는 대신에 '첫 영업 때는 한건도 못 따냈지?'라고 출발점을 제로로 설정하는 것이다.
완벽주의자일수록 과거의 '가장 잘나가던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그때보다 못한 결과에 대해 '마이너스'라고 자기평가를 한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의욕도 높아지지 않고 항상 좌절만 맛보게
된다.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자세는 중요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낮게 평가해서도 안 된다. 조금이라도 좋은 결과를 냈다면 그것을
'플러스'로 파악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렇듯 사고법을 감점 방식에서 가점 방식으로 바꾼다. 이 과정을 통해 잘한 점을 찾게 되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로 훌륭한 성적을 낼 수 있다.
말버릇
바꾸기
'하지만'이나
'그렇지만'이란 말투는 동일한 부정적 사고를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 상사가 질책을 했을 때 "하지만..."이라고
반론할 경우 상사는 이를 결코 이해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사는 이를 '자신의 부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혼이 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리 되면 부하 직원은 '어차피 상사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라고 '어차피'라는 용어까지 끌어당기고 만다. 따라서 선입관에서
벗어나려면 '하지만' 등과 같은 말을 의식적으로 금해야 한다.
말버릇도 사람의 인격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그렇지만', '어차피'가 이미 말버릇이 돼버린 사람이라도 평소에 쓰지 않도록 주의하면 결국은 뇌가 여기에 익숙해져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사고가 들어찬다. 그리고 커다란 장해물을 맞닥뜨려도 '하지만',
'그렇지만'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되어 장해물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말은 사고를 지배한다. 고작해야 말버릇일 뿐이라고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젠 '어린 나'와 이별하자
우리의 일상은 '훙내
놀이'의 연속이다. 만약에 오래 사귀던 애인과 이별하면 지금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에 들
것이다. 반면에 중요한 업무를 성공리에 마감하면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라는 마음이 들
것이다. 이처럼 선입관이 지나치면 좋지
않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치하의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이자 아버지인 귀도는 힘든
상황에서도 전혀 슬픔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아들 조수아가 겁을 먹지 않도록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그는 절망적이어야 할 수용소 생활도 '즐거운 게임'으로 바꾸어버린다.
그렇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인지'다. 우리들이 무엇을 믿고 어떤 맘을 먹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인생은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이렇게 말하는 게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