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40대 중반의 백화점 여성복 제1과 과장이자 띠동갑인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둔 쓰바키야마 과장, 그는 '초여름 대 바겐세일'의 첫날에 거래처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갑작스러운 뇌일혈로 숨을 거둔다. 그의 영혼은 사후 7일간 중유中有에 머물게 된다. 얼마 전에 구입한 집의 대출금, 열두 살이나 어린 아내, 일곱 살짜리 아들, 치매에 걸린 아버지 등등 저승으로 가기에는 너무나도 미련이 많다. 그런 그에게 중유의 공무원들은 '음행의 죄'라는 믿기지 않는 판결마저 내린다.

 

 

인생의 의미를 다시 조명하다

 

비록 죽더라도 현세現世에 남겨놓은 일이 너무 많다면 저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당연히 무거울 것이다. 쓰바키야마 과장이 그랬다. 그런 그를 어여삐 여긴 탓인지 하늘의 공무원들은 그에게 현세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 현세로 다시 넘어가 남은 일을 처리하고 저승의 세계로 복귀하라는 것이다. 다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사흘이고 세 가지 조건이 붙어 있다. 즉 제한시간 엄수, 복수 금지, 정체의 비밀 유지 등이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무서운 일을 당한다고 엄포를 놓는다.

 

이리하여 쓰바키야마 과장은 현세로 돌아온다. 하지만 생전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현세로 돌아온 그는 혼란의 세계에 휘말리게 된다. 살았을 때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과는 정반대의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자신의 인생이 생각해왔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유의 원칙에 따라 원래 인격의 정반대 모습으로 되돌아온 그는 본인조차 낯선 모습으로 회사와 집 근처를 배회하며 회사 사람과 가족들을 만나 여태껏 자신만 몰랐던 진실에 부딪히게 된다. 믿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한없이 행복하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가정에 대해 뿌리부터 흔들리며 슬픔이 북바쳐오른다. 돌이켜보면 우리네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누구보다 가깝지만 오히려 가족에게서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하고, 항상 최선을 다했지만 주위에서 인정받지 못한 때도 있으며,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도 힘든 순간에 자신의 어깨를 도닥여주는 따뜻한 손길이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쓰바키야마 과장인지도 모른 채 울고 있는 그를 오랜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도모코가 위로해 준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책의 저자 아사다 지로 스타일의 휴머니티인 셈이다. 그는 우리 모두의 쓰라린 인생사, 그저 그런 이야기에 불과한 평범한 삶을 이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줄 줄 아는 작가다. 그는 도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9살에 집안이 몰락 한 후 야쿠자 생활을 한 특이한 경력을 가졌다. 이후 자위대 입대, 패션 부티끄 운영, 다단계 판매 등 다채로운 직업에 종사하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 1991년 36세의 늦은 나이에 야쿠자 시절의 체험을 그린 <빼앗기고 참는가>로 데뷔했다.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던 유명 소설 <철도원>도 그의 작품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라. 비록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할지라도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작가 아사다 지로는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는 듯하다.

 

 

"26번 강의실은 음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교육하는 곳입니다"

 

불교에선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을 부여받기까지 49일간 중유中有에 머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다음 삶에서의 과보果報가 결정된다는 것다. 현생에서 일종의 과로사로 사망한 소설의 주인공 쓰바키야마 과장이 머물게 된 곳도 바로 여기다. 철저하게 샐러리맨인 그는 죽는 순간에도 "1만 엔짜리 정장..... 부탁해. 있는 대로 몽땅...."이라는 말로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순간 아내와 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 후 무거운 어둠이 그의 온몸을 내리눌렀다. 눈 앞에 새하얀 건물이 펼쳐졌다. 마치 관공서나 학교처럼 보이는 청결한 느낌의 건물이었다. 자동차와 사람들 모두 빨려들어가듯, 이 건물 안으로 속속 들어가고 있었다. 스바키야마 과장의 발거음이 이처럼 가벼운 적이 없었다. 어린아이로 돌아간 느낌이다. 건물 옥상 스피커에선 담당자의 지시대로 지정 화살표를 따라 질서를 지켜달라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건물 안은 노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신청'이라는 아크릴판이 보였다. 불교는 하얀색 종이, 기독교는 노란색 종이, 일본의 고유신앙인 신토神道는 분홍색 종이, 다른 종교 또는 무교는 파란색 종이에 기재사항을 기록하라고 제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안내를 했다. 법명法名을 기재하는 란이 있어 문의했더니 그의 법명은 '소광도성거사昭光道成居士'라고 알려줬다. 바닥에 표시된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 '사진 촬영'이라는 아크릴판을 향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계속 화살표를 따라가자 밝은 빛이 비치는 넓은 홀에 도착했다.

 

자살한 사람은 3번 방으로 가서 심사를 받으라고 했고, 한 노파는 강습 면제이므로 4번 에스컬레이터를 탑승하라는 안내와 함께 하늘나라 공무원들이 일제히 이 노파에게 박수를 쳤다. 강습이 필요 없을 만큼 훌륭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란다. 엉겁결에 함께 박수를 친 쓰바키야마를 호출한 공무원은 그에게 2층의 '26번 강의실'에서 강습을 받으라고 말했다.

 

에스컬레이터 끝을 올려다보니 하늘 위에서 눈이 시리도록 환한 빛이 비추었다. 노파는 쓰바키야마의 손을 잡으며 강습을 마치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그는 이대로 왕생往生(이승을 떠나 저승에서 다시 태어남)할 순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남겨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랑스런 아들은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내도 끔찍하게 사랑하고 있다. 노인병원에 계신 아버지는 누가 돌볼 것이며, 겨우 마련한 집의 대금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서재의 서랍에는 아무도 모르게 야한 책과 에로 비디오를 숨겨 놓았다. 따로 숨겨놓은 비상금은 없지만 그 대신 아내 몰래 소비자금융에서 빌린 돈도 있다.

 

아무튼 26번 강의실로 안내받은 쓰바키야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음행淫行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여자들에게 인기 없는 외모와 체구였고, 퇴폐 이발소나 사창가엔 발길을 한 적도 없었던 그였다. 혹시 마스타베이션이 음행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그에게 어쨌든 강습을 받으면 희망자에겐 재심사 기회가 있다고 했다.

 

중년의 남성이 교단에 등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정한 심사 결과, 교육대상자들은 현세에서 음행을 저질렀다고 판정받았으며 과거엔 인정사정 없이 바로 지옥행이었지만 최근엔 시스템이 다소 너그러워져 일단 강습을 받은 후 '반성 버튼'를 누르면 대부분의 죄가 면제된다는 설명이었다. 이어서 수강자들의 전력들이 공개되었다. 많은 여성들과 외도한 노인, 독거노인들을 상대로 이혼 경력이 화려한 예순일곱살의 여성 등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쓰바키야마의 케이스를 공개햇다.

 

언뜻 보면 품행이 방정한 인물 같지만 본인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악질적인 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같은 백화점에 근무하는 입사동기 사에키 도모코라고 공개했다. 주위 사람들은 아주 친한 동기생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둘은 18년 동안 친구 사이를 뛰어넘은 섹스 파트너였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쓸쓸한 그의 장례식 장면을 보여주며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슬프하는 도모코의 모습에 앵글을 멈췄다.

 

"지난 18년간 한결같이 프로포즈를 기다렸는데...., 다른 사람과 연애한다는 얘기는 전부 그의 질투를 끌어내기 위해 꾸며낸 얘기였는데..... 그는 음행을 저지르고 결국 도모코 씨를 버렸지요"

 

이어서 음행이란 결코 불륜이나 이상한 성행위나 금전에 의한 육체의 매매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의해 상대방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상대의 진심을 이용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라며 수강자들의 반성을 촉구하듯이 더 이상 입을 다물었다. 결국 억울하다고 느낀 쓰바키야마는 '반성 버튼' 대신에 재심사를 청구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TV 드라마로 만들었다.

 

잘 들어요, 쓰바키 씨. 이 세상에 100가지 사랑이 있다고 했을 때, 그중 아흔아홉 가지는 가짜예요. 그것들은 모두 자신을 위한 사랑이니까요. 난 그 100가지 중에 하나밖에 없는 진짜 사랑을 했어요.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사랑이에요.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필요 없어요. 돈도, 자존심도,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조차도 필요 없어요. -본문 309~310쪽

 

 

그럼에도 우리의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소설은 인간사의 모든 문제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떤 부조리한 상황 앞에서도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문장으로 웃음을 이끌어냄으로써 덩달아 웃다 보면 다시 감동으로 가슴이 저며온다. 작가 아사다 지로는 인생의 고비마다 찾아오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면서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며 희망을 가져야만 한다고 현재를 살고잇는 우리 모두에게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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