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읽는 힘 - 지적 교양을 위한 철학 안내서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서양사상을 이해하는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세 가지 산맥이다. 제1산맥은 서양사상의 시작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제국의 건설까지를 포괄한다. 제2산맥은 근대 합리주의에 의한 철학의 완성을 뜻한다. 제3산맥은 '완성된 철학을 때려 부수자!'는 현대 사상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를 서양사상으로 안내하는 교양 철학

 

이 책은 약 2500년에 걸친 장대한 철학사를 현대에 맞는 해석을 가미해 알기 쉽도록 정리한  해설서이다. 또한 저자 사이토 다카시가 청년 시절 서양사상에 빠져 시도한 여러 일탈적 경험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즉 근대적 자아라는 관념에 빠져 연애 자체를 비판하다가 여자 친구에게 보기 좋게 차인 사건이나, 플라톤이 말한 '진선미'를 모두 갖춘 인물로 거듭나기 위해 독서에 열을 올렸던 재미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이는 현재까지 그가 흔들림 없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자양분이 된 가장 강렬한 지적 모험이기도 하다. 교육학, 신체론, 커뮤니케이션론을 전공한 그는 메이지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데, 지식과 실용을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선보이며 교육전문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최고의 교육심리학자이자 CEO들의 멘토로 인정받는 그는 자신의 철학적 경험을 되살려 흥미진진한 서양철학 입문서를 펴냈다.

 

 

그는 철학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산맥'을 제시한다. 제1산맥은 사상의 시초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제국의 건설까지, 제2산맥은 근대 합리주의에 의한 철학의 완성까지, 제3산맥은 완성된 철학은 부수자는 현대 사상까지로 나누어지는데, 각각의 산맥을 가르는 기준은 '바로 앞의 (사상적) 산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출의 움직임'에 있다.

 

구체적으로 제1산맥에서는 '세계의 본질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고 싶다'는 욕구가 지배한 시기로, 이러한 사상적 특징은 2000년 넘게 지속되다가 근대 합리주의가 등장하면서 그 사조가 흔들린다. 제2산맥으로 구분되는 근대 합리주의에서는 '인간은 본질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력을 믿어보자'는 사상이 주된 흐름을 이룬다. 그러나 이는 다시 제3산맥으로 이어지며, 이 시기에는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의 배후에 무언가가 있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은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핵심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를 설명한 지知의 거장

 

사실 우리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철학의 공백'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해버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간이 이렇게 광범위한 분야를 다룰 수 있나 경탄할 정도로 많은 연구를 했다. 가령 그는 생물 분야를 비롯해 물체의 운동에 대해서도 말했고, 형이상학과 문학 이론 등 온갖 분야에서 일가견을 피력했다.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해버린 인물이기 때문에 어떤 분야를 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온다. 모든 영역에 걸쳐 전능한 지知의 거장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을 한 사람이냐고 물으면 한 마디로 혼자서 '세계를 설명한 사람' 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가 이렇게 광범위한 분야에 손을 댄 것도 서양 특유의 ‘도저히 멈출 수 없는 파워’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의 원리로 세계를 설명하다

 

하나의 원리로 세계를 설명하고 싶다는 것은 매우 오래된 욕망이다. 그 증거로 그리스에서 처음 철학이 생겨났을 때 사상가들이 빠짐없이 매달린 명제가 바로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나'하는 것이었다. 철학의 시조로 불리는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아에르(공기)라고 했다.

 

인간은 어째서 이런 욕망에 사로잡히는 걸까? 그것은 이 욕망의 정체가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그러나 우주를 창조할 수는 없다고 해도 인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야망을 품는 것이 인간이다. 즉,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 가운데 '전능'은 무리더라도 '전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야망이 많은 사람도 전능을 바라지는 않았다. 반면에 전지는 수많은 인간이 품었던 야망이다.

 

 

데카르트의 사상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코기토 에르고 숨)"

 

데카르트의 사상은 장기간 지속된 아리스토텔레스, 기독교 사상의 제국으로부터의 탈출을 뜻하는 철학사의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코기토'가 근대 철학에서 이 정도로 중요한 명제가 된 이유는 그것이 '근대적 자아의 각성에 대한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의심하기 때문에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이것이 데카르트의 사상이다.

 

데카르트는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것이 바로 '좌표축'이다. 수학에서 배우는 'xy축'으로 표현되는 평면을 '데카르트 평면'이라고 부른다. 사실상 좌표축은 데카르트스러운 획기적인 발명품인 셈이다. 이는 엄청난 발명으로 내가 있는 장소에서 내가 만든 선으로 우주의 모든 위치를 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좌표축''코기토' 가 관계성을 갖고 언급되는 일은 없는데, 책의 저자는 이 두 가지가 원리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제로 지점은 나다!' 하는 것이 바로 '코기토'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좌표축을 설정하려면 원점을 정해야 한다. 즉, 좌표축을 설정한다는 것은 '내가 제로 지점이다' 하는 선언이다. 그리고 원점을 기준으로 다른 모든 것들의 위치가 정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은 타인대로 좌표축을 설정해 "제로 지점은 나다" 하고 말하면 된다. 나도, 다른 사람도 각자 자기 중심이면 된다.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엄청난 존재다.

 

이렇게 생각하면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양식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다"라고 한 말은 조리에 맞는다. 그리고 이성을 이용해 스스로 좌표축을 설정해서 제로 지점이 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신에게 축복받은 존재인가도 알 수 있다. 그런 놀라운 양식을 받은 인간은 그것을 활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나을 정도로 이성을 잃어버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왜일까.

 

 

정신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라

 

니체가 기존의 가치관에 던진 도전장의 내용은 '진리라는 이름으로 속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진리라는 미명에 현혹되지 말고 그것들의 허식을 벗겨 정체를 밝혀서 자신의 손으로 주체성을 되찾으라는 외침이었다. 간단히 말해 니체는 "기죽지 마!" 하고 외쳤다. 아마도 그는 위축됐던 경험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기독교의 압력을 받으며 기독교 사상에 의심조차 갖지 못한 유소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성인의 니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우고 연구했다. 그런 과정에서 숨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고 의문이 싹텄을 것이다. '내게서 생기를 빼앗는 이것은 뭘까' 하고 말이다. 그가 그렇게 느낀 이유는 가장 중요한 진리는 항상 '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진리는 이데아계에 있다고 했다. 기독교에선 신의 세계에 있고 그 내용은 '성서'에 쓰여있다고 한다. 그래서 니체는 인간의 손에 닿지도 않는 이런 진리의 세계를 '배후세계'라 불렀다.

 

어쩌면 우리는 있지도 않은 진리에 스스로를 구속하는 게 아닐까. 배후세계를 실제로 본 인간은 없다. 이는 기독교의 근간인 '원죄原罪'와도 연결된다. 아담과 이브가 범한 죄를 후손인 우리들이 동일하게 이어받는다는 게 원죄인데, 조상이 죄인이면 후손인 자신도 죄인이라는 현대의 형법 이론상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기독교는 '인간은 죄인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예수는 이 원죄를 인류를 대신해서 혼자 속죄했기 때문에 '구세주救世主'이다. 예수가 속죄했음에도 여전히 인간은 기독교를 믿어 세례를 받고 성경의 말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대신 빚을 갚아줬으니 두고두고 이를 분할 상환하라는 것과 같다.

 

비록 힘들고 괴로워도 인간의 정신은 완전한 자유여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니체는 자신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기죽지 마!"라고 외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강한 바람이 부는 곳에 홀로 선다.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는 혹독한 곳이지만 자기 자신의 주인은 바로 나이기에 그 바람을 맞아 고독해지라고 말한다. 서양에선 이 책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명실상부한 고전이다.

 

 

 

 

서양사상의 핵심을 살펴본다

 

비록 우리가 동양인이지만 굳이 서양사상을 알아야 할 이유가 뭘까? 우리 사회와 사고사고가 서양사상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헌법이나 과학 등 여러 분야에 이미 서양사상은 깔려 있다. 그래서 사회 시스템이나 사고방식이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니체 등 한번쯤 들어봣던 철학가의 이름이지만 "코기토의 진짜 의미는?", "니체는 왜 기죽지 마라고 외쳤을까?" 등의 질문에 쉽게 답할 사람은 철학 전공자 외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들에게 2500년 서양철학을 '세 가지 산맥'으로 요약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철학의 지름길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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