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의 길
서광원 지음 / 흐름출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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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고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사장에게 중요한 게 뭘까? 사람을 쓰고 경쟁자를 이기는 법도 알아야겠지만,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야 오래 갈 수 있고 멀리 갈 수 있다. 날이면 날마다 무엇이 나를 넘어뜨리는 돌부리인지 모르면서 하루하루 팍팍하게 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게 또 있을까? - '서문' 중에서

 

 

사장의 길은 외롭고 험난하다

 

겉보기엔 매우 화려해보이지만, 사장이란 자리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아마존에 비싼 가격에 피인수된 신발 유통회사 자포스의 젊은 사장 토니 셰이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다. 자포스 이전에 그는 링크 익스체인지 라는 회사를 설립 2년 만에 2억 6,500만 달러를 받고 마이크로소프트 매각했는데,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처음 시작할 때 직원은 5~10명밖에 안 돼 하루종일 일에 빠져 살면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르고 살았는데, 직원이 100명 가까이 될 규모로 덩치가 커지면서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무서워 알람시계를 끄고 , 또 끄고 잤습니다. 출근하는 게 겁이 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습니까? 저는 아니었어요"

 

창업을 해서 회사를 일정 규모 이상 키워본 사람들은 안다. 회사가 커지고 직원이 늘어나면 기쁨도 커져야 하는데, 회사가 성장할수록 정나미 떨어지는 일이 너무나도 자주 발생한다. 이때마다 겨우 버텨오던 마음이 무너지면서 흔들리게 된다. 마냥 앞이 암담해진다. 이는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장이 되면 다른 회사로 옮겨가기도 쉽지 않다. 앉은 자리가 편하겠는가, 잠이 오겠는가, 밥을 넘긴들 소화가 되겠는가? 소화가 된들 피와 살이 되겠는가. 남들 보기렌 어떨지 몰라도 파리 목숨이 따로 없다. 암담하다. 직원들에게 불확실성이란 강 건너 산일 수 있겠지만 리더들에게 그것은 일상생활이다.

 

 

 

'오늘도 외로웠다'

 

경남 거창의 부잣집 다섯째 딸에게 사업자 아버지는 언제나 멋지고 근사했다. 어린 딸은 그런 아버지의 사무실 책상 가운데 서랍이 늘 궁금했다. 항상 꽁공 잠가두는 데다 근처에 가지도 못하게금 '접근 금지' 엄포를 놓기에 더욱 그랬다. 소녀는 분명 돈다발이 가득할 거라고 믿었다. 하루는 그 서랍이 열린 채 아버지가 없었다. 기회였다. 소녀는 그 금기를 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돈다발은 커녕 돈은 한 푼도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5권의 공책이 있었다. 그중 4권 가득 글이 빽빽했다. 아버지의 일기였다. 첫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오늘도 외로웠다', 충격이었다. 아버지의 겉모습이 저렇게 근사한데, 안에는 다른 모습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진실로 읽어야 할 존재임을 깨달았다. 이는 시인 신달자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왕이 된다는 것'

 

전 세계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영웅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에 의하면 영웅들은 주로 깊은 숲 속이나 큰 나무 아래, 그리고 험한 곳에서 자신의 소명을 받는다.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소명을 깨달은 그들은 그 소명을 성취하고자 먼 길을 떠난다. 익숙한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고 미지의 땅으로 혼자서 머나먼 여정을 시작한다.

 

아프리카 동북부의 수단과 에티오피아 국경 접경지대에는 아누아크 족이 살고 있다. 총 7만여 명쯤 되는 토착민인데, 1990년대에 왕이 사망하면서 수많은 아들 중 아동고 아가다를 왕위 계승자로 지명했다. 지명된 아들은 무조건 왕위를 이어받아야 하는 게 이 부족의 전통인데, 공교롭게도 당시 아동고는 그곳에 거주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수단과 에디오피아는 자국의 영토를 넓힐 목적으로 아동고 체포령이 발동되었고, 독립을 지향하던 아동고는 캐나다로 망명했다.

 

막상 캐나다로 와보니 생활이 녹록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고민 끝에 현지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부족들이 눈에 밟혀 고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체포되지 않은 그는 무사히 즉위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즉위식이 끝나자 부족의 원로들이 왕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제시했다. 납득할 수 없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왕은 거처에서 혼자 지내고, 식사도 혼자, 부족민과 함부로 대화해도 안 된다.

아플 때도 아프다는 것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아내를 많이 얻어야 한다. 혈통이 끊기는 불행을 방지해야 한다.

 

초원의 제왕인 사자는 태어나서 2년쯤 지나면 그 무리를 떠난다. 짝짓기의 충동이 밀려오지만 그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근친혼을 방지하는 사자들의 생존전략이므로 일찌감치 알아서 스스로 떠나게 된다. 충동을 못 이겨 무리의 사촌들에게 구애한다면 무조건 추방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혼자서 방랑하는 시간을 견뎌낸 사자는 힘을 축적한 다음 지켜본 무리의 보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이겨야만 제왕이 된다. 유라시아와 북미 대륙의 초원에는 늑개가 최강자이다. 이들도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와 동일한 과정을 밟는다. 

 

새로운 젊은 왕을 모신 아누아크 족은 왜 '왕은 혼자 지내야 하고 혼자 식사를 해야 한다'는 전통을 새로운 왕에게 내밀었을까? 누군가와 밥 먹는 걸 통해 공정함이 훼손되지 않아야 왕의 권위가 서고, 권위가 있어야 부족민들이 그의 지시를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고 아무하고나 대화하고 농담을 나누게 되면 권위가 훼손되듯이 밥 먹는 것도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당연히 아프지도 말아야 한다. 자신보다 부족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리더의 고독은 나누는 게 아니다. 아니, 나눌 수 없다. 나눌 수 없는 고독을 나누려는 순간, 그러니까 고독하지 않으려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고독을 뜻하는 영어 단어 solitude는 sole에서 시작된 단어다. sole은 태양을 의미한다. 하늘의 태양이 둘일 수 없듯 홀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호랑이는 병든 듯이 걷는다

 

<채근담>에 '응립여수 호행사병鷹立如睡, 虎行似病'이라는 말이 나온다.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이 든 듯이 걷는다'는 뜻이다. 존재감을 높이고 위세를 높일수록 주변의 경계심 또한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 위기가 임박했다는 징조를 느낀 사냥감들은 바람처럼 사라져버린다. 적당한 거리에 사냥감이 있어야 쉽게 사냥을 할 수 있는데, 다들 사라져버리면 먹고사는 게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노련한 매는 조는 듯 앉아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쏜살같이 덮치고 경험 많은 호랑이는 병든 듯 걷다가 전광석화처럼 달려든다. 매섭게 앉아 있고 당당하게 걷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조는 듯 앉아 있고 병든 듯 걷는 게 힘들다. 자연의 최강자들은 평소에는 져주고 또 져주다가 반드시 이겨야 할 때 이기는 허허실실 전략의 고수들이다.

 

 

고려 말기에는 대표적인 두 장수가 있었다. 최영과 이성계였다. 두 장수 모두 전쟁에 능했지만 시대는 이성계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둘의 승패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부하들의 마음에서 갈렸던 것이다. 최영은 청렴하고 강직하고 엄하기만 했다. 사실 칼 같은 성격에 따뜻함이란 없다. 반면 이성계는 자신에게 엄했으나 부하들에겐 관용을 베풀었다. 최영의 부하들조차 이성계 휘하에서 싸워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미 게임은 끝난 셈이다.

 

배기가스 조작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결국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난 전 폴크스바겐그룹 CEO 마르틴 빈터코른은 카리스마를 내세워 혁혁한 실적을 올리며 세계 1위를 향해 거침없이 달렸지만 마침내 일이 터지고 말았다. 무리한 목표를 달성하라고 엔지니어들이 압박당하자 그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조작이었던 것이다. 실패가 용서되지 않는 마당에 이판사판 아니었을까 말이다. 마찬가지로 김정은 정권에 상납금을 더 이상 바칠 수 없는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 단체로 택할 수 행동은 망명 뿐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먼저 받기를 원한다

 

회사에서 사장은 어떤 사람인가? 주는 사람이다. 월급을 주고 관심을 주고 마음을 주는 건 물론 수시로 '믿는 도끼'에 찍힐 걸 알면서 발등까지 내주어야 한다.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어디로 가야 할지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자신을 믿고 따르기를 원한다면 그들에게 먼저 자신을 따르라고 하기보다 자신이 그들에게 '먼저', 뭔가를 '줄'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존재와 능력을 믿어'주어'야 한다.

 

모든 종교는 이웃들에게 '먼저 주라'고 가르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신도들은 '먼저 받고자' 한다. 인간의 유전자 속엔 손해보는 일을 하지 말라고 각인되어 있다. 일을 제대로 시키려면 이런 본능을 이겨내야 한다. 먼저 주는 것으로 고마음을 느끼게 하고 열심히 일하는 태도를 이끌어내야 한다. 인사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이젠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주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하라고 주는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란 싹을 제거해야 한다

 

'싹수가 노랗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보지 않아도 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을 이끌어가는 데 방해가 되는 괴물 때문에 속 썩고 골머리를 앓지 않으려면 '노란 싹'을 잘 가려내어 미리 특별 관리를 해야 한다. 화단의 잡초들을 미리 제거하지 않으면 급속도로 성장한 일들 때문에 나중에 몇 십 배의 노력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최근에 중국의 안방安邦보험그룹이 국내의 알리안츠생명을 헐값에 독일 알리안츠그룹으로부터 인수했다고 보도되었다. 알리안츠그룹이 인수하기 전 이 회사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제일생명이었다. 국내에선 차이나머니의 국내 금융계 공습이라는 표현가지 사용했지만, 나는 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알리안츠생명은 한마디로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알리안츠그룹이 내부 컨설팅을 통해 구조조정을 시도하여 했지만 강성노조의 벽에 막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감내하다가 인수자가 나타났을 때 35억원에 매각했던 것이다. 참고로 이 회사의 2015년 실적은 약 87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리더가 가진 힘이란 나쁜 힘이 자라는 걸 억제하고 생산적인 힘이 생기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난초 같은 식물들이 그러는 것처럼 힘을 가져야 평화로운 공생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리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지금처럼 힘이 커져 '외나무다리 결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싹이 노랄 때 알아보고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게 노란 싹일까? 경험 많은 사장들이 말하는,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세 가지 노란 싹들이 있다. 이미 시효가 지났지만 맹목적으로 작동하는 본능처럼, 조직을 병들게 하는 좋지 않은 조직 본능들이다. 흔들릴 것인가, 흔들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세 가지 노란 싹은 다음과 같다.

 

능력 부족을 욕심으로 메우는 사람들~ 영화 <노스페이스>의 윌리같은 인물

무능력자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 불평불만 분자

아프지만 내쳐야 할 사람들~ 끝까지 반대하는 사람

 

 

유능함의 두 가지 조건

 

리더십이란 두 가지 원초적인 능력에서 시작한다. 성과를 내는(먹을 걸 찾아내거나 만들어내는) 능력과 조직을 하나로 만드는(그래서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다. 조직이 리더를 따르는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이유이다. 이 능력을 효과적으로 증명하는 순간 조직은 리더를 따르지 말라고 해도 따른다. 사람들 안에 있는 리더 희구 본능이 자동으로 작동하여 그들의 몸을 이끌어간다. 리더가 자격이 있다는 걸 능력으로 증명할 때 조직은 스스럼없이 따르고, 가치가 있다고 믿으면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 목숨까지 바친다.

 

특히, 한국인은 탁월한 리더가 앞장서서 숙명처럼 느껴지는 비전이나 목표를 제시히면 이에 빠르게 응집한다. 왜 따라야 하는지, 명확하고도 강력한 이유를 제시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똑똑한 사람들이 회사를 위해 일하고 싶은 강력한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 리더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가시방석이 바로 꽃자리이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구상, <꽃자리> 중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장일지라도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화살이 몇 개 남지 않았을 때 사냥꾼의 진정한 면모가 드러나는 법이다. 사장이라는 자리와 역할은 바로 구상 시인의 시가 적절하게 답한 듯하다.

 

1939년, 런던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유럽을 휩쓴 나치 독일이 무차별 미사일 공습에 이어 조만간 영국에 상륙한다는 악성 루머가 돌면서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당시 국왕인 조지 6세와 윈스턴 처칠 수상은 국민들에게 힘으로 맞서야 하며, 용기와 기운은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므로 침착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부탁했다.

 

지금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맞서야 한다. 굳게 마음 먹고 이겨내야 한다. 가고자 했던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장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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