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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인문학 - 제자백가 12인의 지략으로 맞서다
신동준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6월
평점 :
춘추전국시대는 난세 중의 난세에
해당한다. 난세의 현장에서 치열한 삶을 살다 간 제자백가의 행적을 살펴보면 G2시대의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지략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제자백가의 가르침을 21세기 G2시대의 경영전략에 접목할 경우 커다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현재 중국의 리더들은 제자백가서를
비롯한 동양 전래의 고전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국 고전을 읽어야 한다. - '머리말'
중에서
제자백가의 천하경영 이론을 배운다
이 책은 난세 중의 난세,
춘추전국시대에 꽃피운 제자백가 12인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통해 국가와 기업, 개인에 이르기까지 적용 가능한 '천하경영' 이론을
제공한다. <한비자>를 통해 결단과 타이밍의 의미를 이해하고, <손자병법>을 통해 복잡한 세계 경제에서 살아남는 전략을
찾아내며, <논어>를 통해 신용을 근본으로 삼는 신뢰경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나아가 제자백가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을 통해
모택동의 '신 중화제국 창립' 배경, 애플제국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성공비결 등 역동적 혁신의 지혜를 읽어낼 수
있다.
저자
신동준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현재 21세기
정경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그는 격동하는 21세기 동북아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해 동양고전의 지혜를 담은 한국의 비전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는 <조선일보> 주말판 경제 섹션 〈위클리비즈〉의 인기 칼럼 '동양학 산책'을 연재
중이다.
흔히 21세기 G2시대를
경제전경제전의 시대라고 했다. 난세는 치세와 다를 수밖에 없다. 저자가 제자백가의 백가쟁명을 분석대상으로 삼은 이유다. 난세를 타개하고자
고심했던 이들 제자백가의 가르침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능히 역동적인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제자백가 모두가 한결같이 서민이 빈곤층으로 추락하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고 역설했다는 점이다. 아니 역설을 넘어 경고한
셈이다.
저자는 유가儒家의 공자와 맹자 및
순자, 도가道家의 노자와 열자 및 장자. 법가法家의 상앙과 한비자, 묵가默家의 묵자, 병가兵家의 손자, 종횡가縱橫家의 귀곡자, 상가商家의 관자
등 12명의 인물들을 분석했다. 이들 모두 제자백가의 학단學團을 만들거나 하나의 학파學派를 구성할 정도로 뚜렷한 족적을
남겨서다.
인학仁學과 인문학
공자는 생전에 제자들에게
군자유君子儒가 될 것을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위정자가 되지 못할지라도 '정신적인 위정자'로서의 품위를 잃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공자에 의해
유가儒家의 행동규범을 따르지 않는 군주들은 자동적으로 '비군자非君子', 즉
'소인小人'으로 분류되었다. 공자는 이상적인 위정자의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자신의 학문을
'군자학君子學'으로 정의했다.
'군자'에 대한 공자의 새로운 해석은
21세기 G2시대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천민賤民 자본주의에 올라탄 '소인배'의 천박한 행보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기업 CEO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인문학 열풍도 이런 맥락에서
접근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결코 인문학이 치부治富의 기술로 한정돼서는 안 된다.
공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군자의
치평학은 국가 및 천하 단위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뜻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공자는
자신의 인간에 대한 이런 신뢰를 '인仁'으로 표현했다. '인인人人'을 합성한 이
글자는 사람 간의 신뢰위에서 생성된 인간성을 의미한다. 그는 인이 실현된 상태를 바로 '성인成人'이라고 했다.
공자가 생각한 '인'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상 속의 다양한 인긴관계에 내재해 있는 실천적인 개념이다. 공자의 인은 인간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선행되어야만 실현가능한
덕목이다. 이는 인간 자체의 영원한 승리를 의미한다. '인'속엔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한다는 의미가 두루 담겨 있다.
소크라테스의 '지知'와 부처의 '자비慈悲', 예수의 '사랑愛' 등과 서로 통하면서 동시에 이를 총괄적으로 포함한 개념이다. 그래서 군자학 내지
치국평천하의 군주학을 '인학仁學'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인仁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리석게 되고 지혜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방자하게 된다" -
<논어>'양화陽貨' 중에서
한비자와
정치학
군주에게 성군의 모습을 보여야만
민심을 그러모을 수 있다고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밝혔다.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잘하면 치국평천하가 절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치세엔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난세에는 이게 거꾸로 간다. 청나라 말기에서 민국 초기에 활약한 이종오는
후흑술厚黑術로 무장해야만 서구 열강의 침탈로부터 중국의 독립을 지켜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위 후흑구국厚黑救國은
마키아벨리가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자비와 신의, 정직, 인정, 신앙심 등 5가지 선한 품성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라고 주문한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이는 삼국시대 당시 유비가 구사한 후흑술인 가인술假仁術과 매우 닮아
있다. 이종오는
<후흑학>에서 유비의 '가인술'을 이같이 분석해 놓았다.
"유비의 특기는 보통 뻔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는 조조를 비롯해 여포와 유표, 손권, 원소 등에게 붙으면서 이쪽저쪽을 오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남의 울타리
속에 얹혀살면서 이를 전혀 수치로 생각지 않은 것은 물론 울기도 잘했다. 훗날 명대의 나관중은 <삼국연의>에서 '유비는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봉착하면 사람들을 붙잡고 한바탕 대성통곡을 해 즉시 패배를 성공으로 뒤바꿔 놓았다'고 묘사해 놓았다. 그래서 유비의 강산은 울음에서
나왔다는 곡출강산哭出江山의 속담이 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또한 본래 영웅의 모습이다. 그는 조조와 쌍벽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술을 먹으며 천하의 영웅을 논할 때의 모습을 보면 조조의 속마음은 가장 시꺼멓고 유비의 낯가죽은 한없이 두꺼웠다. 서로 상대방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던 이유다"
종횡가와
유세
1994년에 작고한 미국의 저명한
중국학자 크릴은 <공자, 인간과 신화>에서 공자가 주나라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중앙권력을 세울 생각으로
'새로운 문물제도' 운운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 분석은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 공자는 비록 군자가 다스리는 이상국가를 꿈꿨지만 접근 방식만큼은
철저히 현실주의에 입각해 있었다.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위해 책략과
유세의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한 종횡가의 행보와 별 다를 게 없다. 실제로 <논어>'자한'의 다음 대목은
<귀곡자> '오합忤合'에서 '세상에는 영원히 귀한 것도 고정불변의 법칙도 없다. 성인이 하는 일은 모두
해당 사안이 성사될 수 있는지, 나아가 해당 계책이 현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근본으로 삼는다'고 언급한 것과 취지를
같이한다.
"공자에게는 4가지가 없었다. 사사로운 뜻이 없었고,
꼭 하겠다는 것이 없었고, 고집하는 것이 없었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없었다"
'현실
부합' 운운은 천하대세에 올라타는 것을 주문한 것이다. 종횡가가 이상보다는 현실, 명분보다는 실질을 중시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오합'이 '세상에는 영원히 귀한 것도 고정불변의 법칙도 없다'고 역설한 것은 <주역>의 변역變易 이치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공자
역시 천하유세 당시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가 나오기만 하면 충성을 바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조조의
전략전술
<손자병법>'시계始計'는
적을 속이는 속임수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전술은 필승을 목적으로 하는 계책이기에 한 치의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된다. 전장에서 평생을 살다시피
한 조조는 궤도詭道의 달인이었다. 그는 매번 싸울 때마다 궤도를 구사해 객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내 승리를
얻어냈다. 그렇다면 조조가 구사한 궤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그는 궤도를 이같이 풀이했다.
"병법의 요체는 일정하게 정해진 모습이 없는
병무상형兵無常形에 있다. 오직 상황에 따라 적을 속여 이기는 궤사詭詐만이 유일한 길이다"
궤도를 임기응변으로 나타나는
'무정형의 속임수'로 해석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조조가 말한 '궤사'를 두고 흔히 간계奸計내지 휼계譎計로 이해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조조가 말한 궤사는 임기응변으로 구사되는 무정형의 모든 계책을 지칭하는 것이다. 적의 입장에서 보면 '궤사'이지만 실상 아군에서는
'필승지계必勝之計'인 것이다.
맹자와
도덕철학
프랑스 정치철학자
줄리앙은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에서 맹자의 성선설을 인간 중심의
도덕철학으로 재해석했다. 사실 맹자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도덕의 기본논리를 제시한 최초의 사상가이다. 맹자가 말한
'불인不忍', 즉 '측은지심'은 서양 전통의 '동정pity'에
해당한다.
21세기 경제전에서 맹자의
'측은지심'을 적극 활용할 경우 의외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듯 싶다. 그러자면 기업이윤과 기업윤리가 대립 개념이 아닌 동전의 양면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윤경영이 단기적 이익의 추구로만 진행되거나 윤리경영이 사회적 책임만 따지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양자는 대립의 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21세기 경제경영의
관점에서 볼 때 맹자의 이론과 주장은 윤리경영의 전형에 해당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묵자의 '겸애경영'과 서로 통한다. '윤리경영'이 전제되지
않은 '겸애경영'은 자선과 박애를 가장한 '위선僞善경영'에 지나지 않고, '겸애경영'이 배제된 '윤리경영'은 인정이 메마른 '무정無情경영'으로
전락하고 만다. 겸애경영과 윤리경영은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장자의
안빈낙도安貧樂道
<장자>'산목山木'에 나오는 일화중 하나다.
한번은 위왕이 장자를 초청했다. 장자가 여기저기 기운 헐렁한 베옷을 입고 삼줄로 이리저리 묶은 신발을 신은 채 위왕 앞으로 다가오자 위왕이
측은한 듯 장자에게 물었다. "선생은 어찌 이처럼 고달프게 사는
것이오?"
"저는 가난할 뿐 고달프지는 않습니다. 선비에게 도와
덕을 행할 수 없는 것은 고달픈 일입니다. 그러나 옷이 해지고 신발이 터진 것은 가난한 것일 뿐 고달픈 게 아닙니다. 이는 때를 만나지 못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어두운 군주와 어지러운 재상 사이에 머물면서 고달픈 일이 없기를 바란들 과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난세에 태어나 너무 높은
학문을 가진 탓에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고 불행이라면 불행이지, 남루한 옷차림이 무슨 잘못이냐고 반문한 것이다. 입으로만
위민爲民을 떠드는 위정자들을 통렬히 비판한 셈이다. 이는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의 행보와 유사하다하겠다.
"동양의 모든 사상은 제자백가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