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날들
이형동 글.그림 / 별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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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평범하지만, 흔하지 않은 내 일상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적어도 이제는, 나에게 참 좋은 날이 된 하루들이다. 그동안 내가 탐험한 이야기가 당신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바라본 세상을 통해 당신도, 당신만의 세상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을 갖길 바란다. 소소하지만,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발견이 되고, 저마다의 하루를 다시 추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꿈꿔 본다. -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 모두는 외로운 탐험가

 

책의 저자 이형동은 '일상의 감성'을 엄선해 소개하는 '감성 큐레이터'의 역할을 자처한다. 즉 자신의 어린 시절과 지난 사랑의 날들, 여행, 음식, 직장 생활, 음악, 영화, 공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로 '참 좋은 날들'의 이야기를 ?친다. 지극히 평범한 날들 속에서 아주 특별한 감성을 길어 올려, 때로는 영화처럼 때로는 음악처럼 잔잔하면서도 감각적인 따뜻한 일상으로 우리들을 초대한다.

 

그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하고 늦게 사회에 입문해 감성 쇼핑몰 텐바이텐에서 3년 간 근무하고, 현재 피키캐스트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다. 2012년, 한 월간지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이때 쓴 원고를 토대로 감성적인 소품을 소개한 <탐난다>를 출간했다. 두 번째로출간한 이 책은 단순한 '감성팔이'나 '추억팔이'가 아닌, 독특한 사고방식과 자신만의 감성으

 

 

 

 

 

 

 

 

 

 

 

 

 

"야근이요? 아, 네. 괜찮습니다"

 

일찍 들어가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저자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이 거짓말은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그 '거짓말'과 성격이 다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처세술'이다. 이런 행동을 잘 하지 못하는 직장인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아니다. 하나도 괜찮지 않다. 따지고 보면 불합리하고, 힘들고 불편하다. 전혀 괜찮지 않다. 지금 당장 너무 힘들고, 오늘만큼은 일찍 퇴근해 쉬고 싶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괜찮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만약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사회생활이라고 말한다면, 사회생활을 매우 잘하고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생활의 능력치가 높은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말들이 습관처럼 튀어나온다는 건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만큼 자신감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 정말 괜찮은 걸까. 오늘 정말 괜찮은 걸까. 앞으로도 괜찮을 수 있을까?

 

 

호의

 

때로는 영화보다 영화 속 대사가 더 유명해지곤 한다. 흥행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시간이 지나 재조명 받는 경우도 있다. 지금 말하려고 하는 영화도 그렇다. 배우 황정민과 류승범이 주연을 맡아 연기 대결을 펼쳤던 영화 <부당거래>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알아"

 

이 짧은 대사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얻으며 여러 상황에서 회자되곤 한다. 일상 속 많은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 간, 친구 사이, 선배와 후배, 선임과 후임, 스승과 제자,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 점원과 고객 등 대부분의 관계에서 쓸 수 있는 말이다. 기가 막힌 대사다.

 

 

 

 

루체른의 주말

 

신혼여행으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그리고 스위스의 인터라켄, 루체른에 갔다.  이는 물론 저자의 얘기다. 인터라켄 '융프라우'의 감동을 뒤로 하고, 루체른 기차역에 도착했다. 역 앞으로 나오면 눈앞에 로이스강이 흐르고 있고, 오래된 목조교인 카펠교와 강가의 호텔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는 아내와 함께 들뜬 마음에 서둘러 짐을 풀고 도시 구경에 나섰다. 루체른은 평일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늘 사람들이 붐비는 관광도시다. 쇼핑을 뒤로 한 채 걷고 또 걸으며 도시를 눈으로 구경했다. 다섯 시간 쯤 걸었다. 해 질 녘, 부부는 식사를 위해 번화가로 들어섰다. 토요일인데 상가들이 모두 문을 닫고 있었다. 이상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이게 정상이었다. 주말은 진정'자기를 위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관광객이 몰려 올지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을 보장받고 즐겁게 이를 누리고 있었다. 식당으로 둘어섰다. 현악 4중주가 흘러나왔다. 먹음직한 음식을 주문하고 나니 한 정치인의 캐치프레이즈가 떠올랐다.

 

 

 

왼손을 위한 선물

 

때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명했던 피아니스트 비트겐슈타인은 전쟁 중, 오른팔을 잃는 중상을 입는다. 피아니스트에게 팔을 빼앗기는 일만큼 절망적인 것이 있을까. 그 소식을 들은 라벨은 그를 위한 곡을 만들어 헌정한다. 한 손으로 칠 수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곡,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남아 있는 왼손으로 이 곡을 연주하고, 다시 한 번 유명세를 얻는다. 라벨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선물 받게 된 것이다.

 

신이 아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저자는 강연을 들으며 이 곡이 그런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러한 선물을 받는 것보다, 줄 수 있는 것이 훨씬 큰 축복일 것이다. 그는 자신도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왼손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람

 

외근에서 돌아오는 길에 팀장이 저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주위에서 욕을 먹어야 성공해. 좋은 사람 소리 들으면 경쟁력이 없는 거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이 말이 참으로 씁쓸하게 느껴졌다. 마치 공존이 불가능하므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그는 여전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여기저기서 욕을 많이 먹으면서가지 오래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어떤 누군가는 그를 좋은 기억으로 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성공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오천 원

 

"이 꽃 한 묶음에 얼마예요? 한 다발 말고, 한 묶음이요"

 

4월, 인사동 거리를 걷던 한 아가씨는 망설이듯한 발걸음을 트럭으로 옮겼다. 현금이 얼마 없었고, 트럭에는 카드 단말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는 손으로 한 묶음을 잡더니, "오천 원이오"라고 답했다. 그 한 묶음은 정말 작아 보였다. 지갑에 있던 현금은 달랑 오천 원이 전부였고, 순간 살지 말지 꽤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런 그녀를 본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는 오천 원으로 봄을 사는 거예요" 오천 원으로 봄을 사는 것. 그 한마디에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오천 원을 냈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봄을 건네받았다. 다시 길을 걷는 그녀의 손에는 작지만 싱그러운 봄 한 묶음이 들려 있었다.

 

 

지금 오천 원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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