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개의 소원 100일의 기적 - 잠들기 전, 쓰기만 하면 이루어진다!
이시다 히사쓰구 지음, 이수경 옮김 / 김영사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깨달음을 얻으면 지금까지의 인생을 형성해온 기존의 마음이 싹 바뀐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으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누구나 반드시 깨달음의 상태가 된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깨달음이란 신체에
고통을 주는 고행도,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체험도 아니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 당신이에게 필요한 것은 펜 한 자루뿐이다. - '인생을
바꾸는 우주의 법칙' 중에서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책의 저자 이시다
히사쓰구는 멘탈 코치, 심리 테라피스트, 세미나
강사로 활동하며, 주식회사 안사 대표이사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세계를 방랑하다 귀국해서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중퇴하고 27세에 완벽한 니트족이 됐다. 그후 비정규직으로 일했지만 격무와 생활고를 견디기 힘들어
정신세계와 자기계발 책들을 닥치는 대로 따라했다. 하지만 결국 4년 반 만에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퇴직하기 전해에 어떤 깨달음을 경험하고는 블로그와 폭포 수행을 시작했다. 창업하던
당시에는 3무無(돈 없음, 연줄 없음, 실력 없음)상태였지만 우연히 접한 우주의 법칙을 공부하고 우직하게 실천하면서 수입, 시간,
가족, 동료
등 모든 면에서 꿈꾸던 인생을 실현했다. 지금도 최신 심리학과 명상 등을 공부하면서 우주의 법칙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마음을
바꾸고 난 뒤 많은 소원을 성취했지만, 그의 전반부 인생은 아주 형편없었다. 공부도 못했고, 이성에게 인기가 없어 시시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대학 입시는 두 번이나 낙방하다가 별로 가고 싶은 않은 대학을 어쩔 수 없이 입학했다. 구직 활동은 거의 전패였고 심지어 연애 경험도 전무했다.
대학원도 중퇴하고 니트족으로 변해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였다.
이후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겨우 시급 6천원짜리 계약직 사원이 되었지만 잠잘 시간도 없을 만큼 죽어라 힘들었다. 폐렴이 걸리기 일보 직전, 링거를
맞으면서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보모들 두고 죽는다는 것은 최대의 불효가 아닌가.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정신세계 쪽으로 향했다. 전생의 과업을 제거하는 법, 기를 맑게 하는 법, 운을 상승시키는 법 등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1년에 10억 원을 번다는 사업가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그 사업가는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했다. 묘한 설득력에 마음이 동하여
그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마음을 '이루어진다'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9년, 지금은 그가 바라던 모든 소원을 이루었다. 그 사업가의
말을 증명한 셈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그의 성공담을 담고 있다.
책은 제1장(소원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선 어떻게 소원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2장(소원이 이루어지는 100일의 법칙)에선 이루어지게 하는 실천법을 이야기한다. 제3장(인생을 바꾸는 우주의 법칙)에선 비법을
꾸준히 실천해 소원을 이루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제4장(이제 우주에 맡기면 된다)에선 저자 자신의 깨달음 상태에서 경험한
우주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록으로 '비법 노트'가 있는데, 펜 하나만 있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는 순간, 소원이
이루어진다
옛날 어느 마을에 구두 가게를 하는 노부부가 있었다. 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낡고 해진
구두를 신은 사람을 보면 무상으로 수선해 주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이젠 구두를 만들 가죽조차 한 장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멋진 구두를 만들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다음 날 아침, 멋지게 완성된 구두를 발견한 노부부는 이를 가게에 진열하자마자
팔려나갔다. 번 돈으로 새 가죽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구둣방 작업대 위엔 멋진 구두가 가득했다. 이를 모두 팔아 큰돈을 번
노부부는 한밤중에 몰래 일어나 구둣방을 훔쳐 보았다. 꼬마 요정들이 나타나 신나게 구두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부부는 감사의 표시로
꼬마 요정에게 줄 옷과 신발을 만들어 작업대 위에 올려 놓았다.
그렇다.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실린 <꼬마 요정과 구둣방 할아버지>라는
이야기다.
이 꼬마 요정의 정체는 뭘까?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잠재의식'이다. 이는 빙산의 수면 아래에 숨겨진 부분으로 비유할 수 있다. 평소엔 모습이 보이지 않다가 중요한
순간에 멋지게 힘을 발휘한다. 마치 한일전 축구경기에서 한국대표팀이 보여주는 놀라운 투혼과 경기력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는 언제
나타날까?
절대절명의 위기 순간에 등장한다. 가죽이 딱 한 장 남았을 때 꼬마 요정이 나타났던
것처럼 말이다. 소원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것이다. 예컨대 회사 이익이 2.5배나 늘었다고 말한 40대 남성은 전년도에 큰 폭의 적자
때문에 눈 앞이 캄캄했던 경험이 있었고, 최고의 남자를 만나 초스피드로 결혼에 골인한 40대 여성은 많은 나이에 애인과 막 헤어져 '내 팔자에
결혼은 없구나'라고 체념했을 때 백마탄 왕자님이 나타났던
것이다.
저자의 세 가지
깨달음
1. 차이를 없애는 것
2. 자아자아가 사라지는 것
3. '뭐야, 이거였어?'
욕망은 바람직한
변화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만일 정말로 욕망을 부정한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 포기할 수 없다면 솔직히 바라자. 물론 욕망이 많으면 힘들긴 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게 아닐까?
욕망이 없으면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게 즐거울까? 기쁨을 느낄까? 두근두근 설렐 일이 있을까?
물론 모든 욕망을 부정하고 인간이 아닌 동물처럼 사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다. 혹은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인간이기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원할 것인가?
그는 원하는 쪽을 선택하겠다. 즉 인간의 욕망을 긍정했다.
잠재의식이 변화를
수용한다
다시 <꼬마 요정과 구둣방 할아버지> 동화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할아버지의 잠재의식이다. 이제까지 할아버지는 쭉 가난하게 살아왔다. 이 상태에서 갑자기 부자가 되는 일은
오히려 위험한 일이다. 할아버지는 구두를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식이 작동한다. 그냥 여기서 끝낼 것인가, 아니면 구두를 계속 만들어 팔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잠재의식은 '가난'과 '구두를 만든다'라는 상반된 현상이 충돌하게 되면 딜레마에 빠져
스트레스를 크게 받을 것이다. 가난을 유지하면 구두를 만들 수 없다. 이때 잠재의식이 내린 지령은 '구두를 만들어 풍족하게
살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구두를 만들면서 가난하게 산다'를 유지했던 현상을 리셋하게
된다.
소원을 이루는
메카니즘
우리의 소원이 실현되지 않는 것은 잠재의식이 착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것도 잠재의식이고 또한 이루어주는 것도 잠재의식이다. 잠재의식은 우릴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지 않는다. 즉 우리의
안전한 환경을 유지시키려고 한다. 우리는 이에 감사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순간, 잠재의식은 긴장을 풀고 우리들을 응원한다. 이때
비로소 진짜 소원이 이루어진다.
넉 달 만에 월수 1천만원을 넘긴
사나이
2005년, 저자가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그의 수중엔
30만원이 전부였다. 더구나 자격증, 연줄, 능력 등 아무 것도 구비한 게 없었다. 그래서 재취업 의사 또한 전무했다. 그런데, 당시 그를
버티게 한 것은 지인으로부터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빈 손으로 시작해서 넉 달 만에 월수 1천만원 이상을 번다는
것이었다.
"나 그거 아직도 계속하고 있어",
그것이란 예전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함께 들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수입에 변화가 없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비즈니스에 성공한
사람이 극비라며 알려준 방법이었다.
'소원을 날마다 종이에 열 번 쓴다'
그 사람은 종이에 날마다 열 번씩
"월수입 1000만 원을 넘었다"라고 쓴다고 했다. 물론 이것 말고도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넉 달 만에 그것을 꾸준히 실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명암이 확실하게 갈렸다. 실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저자는 운이 좋아서인지 프리랜서로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었다. 비록 월수입 1천만원에는 한참 못미쳤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현금이 다 떨어져 카드빚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에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원을 써보기로 했다. 2009년 7월 1일부터 시작해서 정확히 10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8월에 블로그 접속자 수가 3배로 늘었다.
9월, 10월에는 기획했던 고액 세미나가 모두 만원이었다.
9월에 마침내 월수입 1000만 원 돌파했다.
10월 1일에 도서 출판을 결정했다.
마침내 그는 궁지에서
탈출했다. 그 후 밀린 카드빚도 모두 갚고, 출판한 책은 종합 1위에 올라 곧바로 증쇄에 들어갔다. 게다가 세미나와 코칭 사업도 순조롭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강연 요청도 들어와 지금은 월수입이 2000만~3000만 원 정도가 되었다. 실질적으로는 일주일에 2~3일만 일하면서 일과
가정의 행복을 모두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실천
6단계
1단계~ 필기도구와 '비법 노트'를 준비한다
2단계~ 세 가지 소원을 정한다
3단계~ 크게 숨을 들이마셔 참으며 첫 번째 소원을 세 번 쓰고 크게 숨을 내쉰다
4단계~ 다시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동일한 방법으로 두 번째 소원을 쓴다
5단계~ 동일한 방법으로 세 번째 소원을 쓴다
6단계~ 마지막으로 '고맙습니다'라고 한 번 쓴다
샘플 노트
매일 써야 한다
소원을 이루는 비법은 매일 쓰는 것이 절대적인 조건이다. 단 하루를 건너뛰어도 안 된다.
만약 저녁 회식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음주 만취 상태에서 그냥 잠들어버렸다면 다음 날 아침에 기상해서 1시간 이내에 쓰면 괜찮다. 이를 자주
악용하면 안 된다. 그래서 단 세 번만 허용된다. 이 횟수를 넘기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카운트가 시작된다.
날마다 쓴다는 것이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해보면 안다. 겨우 1분 정도 걸리는 작업이지만 이게
상당한 스트레스다. 이 스트레스가 중요하다. 100일만 하면 일단 해방되는데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수록 에너지도
압축되어 릴랙스했을 때 폭발력이 엄청나다.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렇게 해서 소원도 이루어지는 것이니
우선 100일 동안 열심히 해보자.
깨달음은 자전거 타는 법과
같다
모든 것은 깨달음에서 출발하고
깨달음으로 통한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도 깨달음리고, 자신의 힘든 삶에서 해방시키는 것도 깨달음이다. 우리들릉 애초엔 하나인 세계를 굳이
쪼개서 차이를 만들어내고선 "뭐야, 이건!"이라고 말하며 살고 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일반적인 상태다.
한 번이라도 깨달음의 세계를
알아버리면 마치 자전거 타기를 배운 사람이 평생 자전거 타는 법을 까먹지 않듯이 우리 모두의 앞에 펼쳐진 인생은 즐거운 일로 가득해진다.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던 저자의 인생이 그 깨달음으로 인해 지금은 얼마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말이다.
솔직하게 원할 때 소원이 이루어진다
얼룩말에게 힘이 세어지라고 고기를
주어도 소용이 없다. 사자에게 좀 온순해지라고 풀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 얼룩말도 고기를 먹고 싶어 할지 모르고, 사자도 풀을 먹고 싶어 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얼룩말이나 사자나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역할을 성실하게 하는 것, 그것이
솔직함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원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바라고, 그리고 말로
표현해보자. 말로 표현하면 그만큼 소원이 훨씬 쉽게 이루어진다. 비법도 좋고, 블로그도 좋고, 먹고 마시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저 솔직하게 바란다. 그리고 때때로 기도한다. 어느 순간
뭔가 '뻥' 하고 터지면서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도 갑자기, 제멋대로 말이다.
여기까지 읽고 '그래, 솔직하게 원하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된 거다. 어떤 소원이든 이루어지는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아니, 여전히 이해가 안 돼'라며 거부감이 든다면 일단 100일 동안 비법이라도 실천해보면 어떨까? 적어도 손해는
아니니까. 솔직하게 원하면 된다. 어린아이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