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교과서 퇴계 - 사람 된 도리를 밝히는 삶을 살라 플라톤아카데미 인생교과서 시리즈 5
김기현.이치억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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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은 김기현(전북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이치억(성신여자대학교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의 글로 구성되었다. 퇴계에게 묻고 싶은 29개의 질문 중 한 질문에 두 저자가 답한 경우도 있고, 한 저자가 답한 경우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마지막 30번째의 질문은 여러분 스스로 만들어보고, 이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 ' 이 책을 읽기 전에' 중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퇴계의 정신이 무엇일까?

 

2010년에 설립된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는 인문학 연구 역량을 심화시키고, 탁월함의 추구라는 인문 정신의 사회적 확산을 위해 설립된 공익재단이다. 지난 삼 년 동안 부처, 공자, 예수 등 인류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현자 19명을 오늘의 시점으로 소환하여 그들과 상상의 대화를 나누었다.

 

위대한 현자賢者들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등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물어보고, 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살펴보는 그런 시리즈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그런 삶의 고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사유思惟하는 그런 장場인 셈이다.

 

이 책은 이런 플랜 하에 출간된 우리들의 스승 퇴계 이황을 이 시대로 호출한다. 과연 조선시대를 살았던 퇴계 선생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삶의 도리를 말하는지 성찰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깊은 사색과 함께 스무 번째 현자가 될 수 있는 행운을 누려보자. 

 

저자 김기현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방문교수(1995~1996), 전북대학교 대학원장(2010~2012)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 이치억은 퇴계의 17세손으로, 후손이라는 무게 탓에 어릴 적에는 오히려 유교에 반감을 갖고 '유교문화 퇴출방안 모색'이라는 불순한(?) 의도하에 유교철학에 입문했으나, 현재 '유교에서 없애야 할 것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본 메지로대학교 지역문화학과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유학과에서 공부했고,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학교와 (사)동인문화원에서 교학상장을 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의 됨됨이는 수양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온갖 욕망으로 흐려진 마음이 수많은 번민과 괴로움, 그리고 고통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따라서 일상에서 마음가짐을 마치 샘물처럼 '망ㄱ고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다. 깊은 샘의 맑고 청량한 물처럼 내 삶의 기쁨을 가져다 줄테니 말이다.

 

"생각을 조금도 불순하게 갖지 말고 마음을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

- 퇴계 이황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김기현 교수가 먼저 답한다. 소위 '퇴계학'의 국내 권위자인 그는 전북대학교 고전독서모임인 '여택회麗澤會'에서 27년 이상 강의하고 있다. 안도현 작가의 말에 의하면 전주천변이나 건지산 기슭을 깡마른 노신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걷는다면 틀림없이 김 교수란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족히 두 시간을 걷는다고 한다.

 

김기현 교수

 

 

인간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즉 자신을 존엄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고상하게 살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덧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은 평생 공허한 삶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를 철학자 미카엘 란트만"모든 인생은 그 자체가 해석학적이다"라고 요약한다.

 

우리 국민들이 제일 자주 사용하는 지폐 천원권의 모델이 바로 퇴계 이황(1502~1571년)이다. 그렇지만 이름 정도만 알 뿐이지 좀 더 구체적인 지식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조선시대의 유학을 다소 경시하는 신학문의 교육 탓이 아닌가 싶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나도 퇴계 선생에 대해 깊은 지식이 부족하다. 그저 안동, 도산서원 정도를 떠올릴 뿐이다.

 

공경하고 공경하라

하늘은 밝으신지라

그 명명을 지키기 쉽지 않나니

하늘이 높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강림하여 나의 삶을 

날마다 살피며 여기에 계시니라.

 

이는 <시경詩經>에 실린 시다. 퇴계는 임금에게 "하늘을 외경畏敬"할 것을 강조하며 이 시를 인용했다. 저자는 이를 퇴계의 '경敬'사상이라 부르며 퇴계의 사유와 삶의 중심엔 이 사상이 놓여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존재 내부에, 더 나아가 만물 안에 '하늘의 소명'이 있음을 자각하고 삶에 있어서 경건함을 견지했던 것이다. 그가 임금에게 올린 <성학십도聖學十圖>'경재잠敬齋箴'에도 이런 삶의 정신이 나타난다.

 

의관을 바르게 차리고, 시선을 존엄하게 가지며, 마음을 고요히 상제를 우러르듯 하라. 발걸음은 장중하게, 손놀림은 조신하게, 땅도 가려서 밟아 개미두둑까지도 돌아서가라. 문을 나서 사람들을 만날 때는 손님을 대하듯 하고, 일에 임해서는 제사를 받들듯이 하여, 경건하고 조심히 처신하여, 감히 조금도 안일하게 나서지 말라. 입 지키기를 병마개 막듯하고, 삿된 생각 막기를 성문 지키듯 하여, 공경하고 엄숙하게 거동하여, 감히 조금도 경솔하게 나서지 말라.

 

퇴계의 외경 정신은 바깥생활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내면 깊숙히 맑고 순수한 영혼의 원천을 가져야 함을 깨달았기에 평소 영혼을 맑게 하려고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 그는 마음을 쓸데없는 상념이나 욕망에 흔들리지 않도록 명경지수明鏡止水같은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퇴계가 견지했던 외경 정신은 산만하고 방종한 우리들의 삶을 반성하게 만든다. 오늘날의 인간관계는 이해타산에 치우쳐 가볍기 짝이 없고 또 수박 겉 핥기와도 같아 깊이가 부족하다. 이는 스스로 고결하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나 처방으로 우리들은 퇴계의 외경 정신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퇴계 선생의 후손이기도 한 저자 이치억은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즐거운 자족의 삶이어야"한다고 말한다. 그는 삶이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바로 '꿈'이라면서 꿈을 성취하는 것은 삶에서 큰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 설명이다. 즉 꿈을 이루는 삶은 지극히 행복할 것이며, 비록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꿈이 있는 삶은 아름답고 풍요로와 이는 가슴 설레게 하는 마법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꿈''장래의 희망직업'을 동의어로 사용한다. 이에 생동감이 넘치는 진정한 의미의 '꿈'은 사라지고 단지 명함 위에서나 의미를 가질 그런 허상을 쫓게 된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가르치는 교육도 그러하다. 오직 '직업'에 근접하는 방법인 것이다. 대학 진학이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취업'을 향해 거쳐가는 통과의례일 뿐인 것이다.

 

'되기'가 아닌 '되지 않기'를 추구하다

 

사회적으로 퇴계는 무언가가 '되기'가 아니라 '되지 않기'를 추구한 인물이다. 그는 24세까지 과거에 연달아 세 번이나 낙방했지만 전혀 낙담하지 않았다. 28세 때, 한양에서 진사 회시에 응시하고 합격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한양을 떠났다. 한강을 건너기 전 2등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그대로 남으로 향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비로소 대과大科에 합격했지만 이때에도 전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일년 전, 이미 성균관 유생들의 부박浮薄한 풍토를 목격하고는 과거를 아예 그만두고 낙향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형의 간곡한 만류로 이를 실행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관직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는 승진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다. 고관 욕심은커녕 기회가 닿기만하면 외직을 요청했다. 당상관이 되어도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나중엔 아예 관직 자체를 거부했다.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은거하고 있음에도 동지중추부사의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자 그는 이 직함을 거둬 달라고 상소를 올렸다. 65세 때의 일이다. 벼슬과 명예에 대한 욕심을 멀리한 그가 15세에 지은 아래의 시 '가재'를 살펴보라.

 

돌을 지고 모래를 파니 저절로 집이 되고,

앞으로 가고 뒤로 달리니 발도 많구나.

일평생 한 줌 샘물 속에서 족하니,

강호江湖의 물이 얼마인지는 묻지 않겠노라.

 

그런 그가 '되어야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신선神仙'이다. 그가 말하는 신선은 은유적 표현이다. 술수와 조작, 협박과 거래, 큰소리치기와 타협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은 정치판의 생리이다. 이는 그의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그래서 그는 억지로 꾸미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본업은 학문이다. 학문을 통해서 성인聖人이 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 그의 첫 번째 목표였다. 신선과 성인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런지 모르나 전혀 그렇지 않다. 성인이 되는 학문과 같은 긴요한 일도 있지만, 신선처럼 자연을 즐기는 느슨한 일도 있기 때문이다. 퇴계에게 있어서 자연속에서의 소요유逍遙遊는 학문의 청량제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 스스로의 분수에 맞는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퇴계가 추구한 삶은 자족의 삶이다.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의미 있고 즐거운 그런 삶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퇴계의 신선은 첫째 자연 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그것과 더불어 하나 되어 사는 사람, 둘째 세속의 칭찬과 비방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인 것이다. 누군가는 정치판을 바꾸겠다는 그럴 듯한 포장을 했지만 속마음은 명예와 권력을 누려보려는 심산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퇴계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위인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도덕성보다는 오히려 절대자유의 경지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분수를 지킨, 그의 일관된 삶에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삶의 진정한 의미를 더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도산서원의 가을풍경 

 

 

사람답게 삶을 살자

 

이밖에도 '행복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자녀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바른 직업윤리는 무엇인가?',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겸손은 왜 중요한가?', '왜 자기성찰이 필요한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소유를 택할 것인가, 존재를 택할 것인가?' 등 스물아홉 꼭지의 질문에 대하여 두 저자들이 답한다.

 

사랑공경의 정신으로 인생을 살았던 위대한 스승 퇴계 선생의 인생관과 철학은 우리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그만큼 우리들이 가볍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 삼가하라는 '신독愼獨'의 자세가 그대로 나타난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단 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 깊은 속내를 음미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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