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충돌 - 독일의 부상, 중국의 도전, 그리고 미국의 대응
장미셸 카트르푸앵 지음, 김수진 옮김 / 미래의창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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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하더라도 G2가 대세였다. 그래서 권력의 중심추가 태평양으로 기울었다고들 했다. 그러나 차이나메리카의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이 이인자에 머문다는 조건에서 G2 체제를 수용할 입장이었으나 중국은 일인자가 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 '서론' 중에서

 

 

독일과 중국의 부상, 그리고 미국의 대응

 

인류사에 의하면 지구상엔 수많은 제국들이 명멸해왔다. 강국들은 자신들의 게임 규칙을 약소국에게 강요할 때 항상 무기만 휘두른 게 아니다. 이들은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상의 힘을 앞세우고 부를 창출했다. 팍스 로마나를 이룩한 로마제국도 그들만의 특출한 경제, 사회 조직이나 창의성과 도전이 없었다면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양에 로마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중국이 있었다. 제국의 존속기간은 오히려 로마보다 더 길었다. 하지만 중국의 제후들은 팽창주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비록 중국 선원들이 무역을 위해 중국 바다를 건너 먼 곳으로 진출했지만 미지의 땅들을 정복하는 것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국은 자기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자 세계 그 자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이 몰락한 후, 서양에선 12세기가 되어서야 신성로마제국이 등장해 수세기 동안 유럽을 지배했다. 당시 이 제국은 무기보다는 오늘날의 연방聯邦제와 유사한 조직을 통해 관장했다. 같은 시기의 오스만제국은 이스탄불에서 세비야, 카이로에서 트빌리시(현, 조지아의 수도)에 이르기까지 큰 번영을 구가했다. 심지어 빈과 모스크바도 점령할 뻔했다.

 

이후 유럽은 프랑스가 지배했다. 막강한 인구와 농업을 바탕으로 루이 14세가 장수하며 유럽을 호령할 수 있었다. 루이 14세 이후에는 영웅 나폴레옹이 프랑스 패권의 대미를 장식했다. 19세기엔 영국이 세계를 지배했다. 1차 산업혁명을 탄생시킨 영국은 다른 모든 나라에 자유무역주의를 요구했다. 말을 듣지 않을 경우 해군 함대를 동원해 굴복시켰다. 아편전쟁으로 거함 중국의 붕괴도 가속시켰다. 이처럼 19세기는 대영제국의 전성기였다. 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더 이상 영국과 주도권 싸움을 벌일 상대가 되지 못했다.

 

프로이센을 주축으로 새로이 등장한 신생 독일제국은 보호주의와 중상주의를 혼합하여 번영을 이룩했다. 당시 독일의 비스마르크 총리는 독일 경제를 대표하는 질서자유주의의 초석을 놓았다. 이후 제국주의를 표방하는 열강들 간에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이 급부상했다. 종전 후 미국, 소련, 영국 3국은 얄타회담을 통해 세계를 분할했다. 들러리인 영국을 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세계는 양극화되었다. 그후 40년간 미소는 이념,군사적으로 대치하다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련의 불안정한 경제 상황으로 이제 세상은 단 하나 미국제국만 존재하게 되었다.

 

 

   

 

저자 장미셸 카트르푸앵은 23세에 프랑스 최고의 언론인 학교 CFJ를 졸업한 후, 1996년에 서 1999년까지 이곳에서 교편을 잡았다. <레제코>와 <르몽드> 기자를 거쳐 <라 트리뷘 드 레코노미>, <라게피>,<라 트리뷘 드 렉스팡시옹>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또한 라디오에서 경제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라 레트르 아>와 프랑스 경제지 <르 누벨 에코노미스트>의 편집장을 맡았다. 저서로는 <글로벌 위기>(2008)와 <마지막 버블 경제>(2009), <위안화를 위해 죽다?>(2011)가 있다.

 

 

애플과 중국

 

애플은 2004년부터 자사의 컴퓨터 생산을 폭스콘으로 대량 이전했다. 이는 서방의 다른 컴퓨터 업체들과 동일한 행보였다. 델, 시스코, 휴렛 패커드, 노키아 역시 폭스콘의 고객이었다. 그런데, 2007년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출시를 몇 주 앞둔 시점에 시제품의 스크린에 스크래치가 많이 나 있는 것을 보고 유일한 해결책인 특수 처리 유리로 만든 스크린을 원했다.

 

이미 애플의 기술자들은 2년 전부터 미국의 코닝사와 이 문제를 놓고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6주 안에 수백만 개의 스크린 제작 납품을 요청했다. 하지만 코닝은 현실적으로 이 작업이 불가능했다. 이때 중국의 한 공장으로부터 견적서가 날아들었다. 이 업체는 애플과의 계약을 염두에 두고 미리 새 공장 건물을 신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장에는 직원들이 24시간 대기할 수 있도록 이미 기숙사도 지어둔 상태였다. 결국 이들은 계약을 따냈다.  

 

중국의 전략은 분명하다.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 유연성 있는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 주도의 재정 시스템 덕분에 현지 협력업체는 현대식 공장에 투자할 자본을 무상으로 지원받을 수 있었다. 애플의 유리 공급업체 사례는 중국에서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똑같은 시나리오가 반복되었다. 중국은 펄프 산업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여 무상으로 자본을 지원해서 공장을 지었다. 이를 바탕으로 가격 파괴를 이루어 결국에는 막강한 세계적 경쟁업체들을 하나둘씩 제거했다.

 

 

중국 시장을 넘어 세계시장으로

 

세계시장을 장악하려는 중국 기업의 시나리오

 

1단계, 외국 업체들이 발명, 디자인한 재화를 단순히 생산한다

2단계, 기술 습득 후 중국 현지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을 생산한다

3단계, 제품 수출, 생산기지 해외 이전, 기업 인수 등을 통해 해외시장으로 진출

4단계, 순수 중국 브랜드가 세계시장을 장악한다

 

중국의 레노버는 2005년 IBM의 PC사업권을 인수한 후 세계 1위의 컴퓨터 제조회사가 되었다. 레노버 그룹은 현재 35%의 중국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신흥국 시장을 우선 공략했다. 이젠 전 세계시장을 호령하며 휴렛패커드를 따돌렸다. 나아가 레노버는 PC 시장의 침체를 예상하고 스마트폰과 IT 서버 사업 진출을 위해 2014년 초 IBM으로부터 관련 사업권 일부를 인수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통신장비 시장은 에릭슨, 알카텔-루슨트, 노키아가 지배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중국의 화웨이가 이 분야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세계 제1의 4G 통신망 장비 계약자가 되었으며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해 7억 5천만 명의 가입자가 있는 역동적인 중국 시장을 바탕으로 삼성을 추월하고 세계1위의 등극을 꿈꾸고 있다.

 

중국은 초기에 다른 나라 업체들이 발명하고 디자인한 재화를 생산하고 수출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두 번째 단계에 들어갔다. 기술을 습득한 중국 업체들이 중국 현지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을 생산한 것이다. 이때 중국은 서방의 다국적기업들이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여 수출한다는 조건으로 이들에게 시장 문을 열어주었다. 이어서 세 번째 단계가 이미 진행 중이다. 이제 중국 기업들은 제품을 수출하거나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기업을 인수하는 등 해외 시장 정복에 나섰다. 그렇다면 그다음에 올 네 번째 단계의 윤곽도 그려진다. 순수 중국 브랜드가 시장을 장악한다는 시나리오다. 물론 그 대상은 중국 국내시장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이다.

 

 

에어포칼립스

 

에어포칼립스: 공기(air) + 종말(apocalypse)


베이징에서는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대기의 질이 나쁜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 세어보는 일이 무의미해졌다. 이곳에서 사는 앵글로색슨계 사람들이 '에어포칼립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을 정도니 말이다.

 

수십 년간 중국은 환경문제에 전혀 무관심했다. 오로지 경제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경제성장을 하려면 결과적으로 오염을 유발하는 에너지가 필요했다. 중국은 연간 30억 톤 이상의 석탄을 생산하는 세계 제1의 석탄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오늘날에는 공장에서 전기를 사용하므로 공장의 굴뚝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문제는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대부분 석탄을 사용한다.

 

화력발전소 때문에 중국의 모든 대도시는 오염 문제를 앓고 있다. 이것만이 유일한 주범이 아니다. 자동차와 교통량으로 인해 대기오염이 더 증가했다. 공장들은 환경 규제를 무시하고 온갖 오염원을 분출하고 있다. 2010년 중국은 최대 최대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 되었음을 인정했다.

 

 

일본의 심상찮은 행보

 

중국과 일본 사이의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이 다시 일어난 배후에 미국이 있는지 여부는 아마도 훗날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2012년 4월, 이론 도쿄 도지사가 폭탄선언을 했다. 방미중에 그는 작은 섬 5개로 이루어진 센카쿠 열도를 5억 달러에 매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소설가 출신인 신타로 이시하라 도지사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로 유명하다.

 

2012년 여름, 중일 관계는 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중국 소비자들은 일시에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벌였다. 양국 간의 여행 산업은 붕괴되었다. 결국 중국과 일본의 화해는 실패햇고, 이에 가장 만족한 결과를 얻은 쪽은 미국이었다. 2013년 5월 12일, 아베 총리가 '731'이라는 번호를 달고 있는 일본 전투기 조종석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웃는 모습이 일본 신문에 실리자 중국과 한국은 동시에 일본에 항의했다.

 

만주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시험했던 일본 황군 소속 731부대를 연상시켰다   

 

일본은 다시 한 번 미국의 혈맹이 되어 오바마 대통령이 수립한 중국 견제 전략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견제 전략에는 군사적인 측면도 포함된다. 일본 자위대와 미 해군은 '불특정 적으로부터의 원거리 도서 탈환'이라는 주제로 합동군사훈련을 확대 시행했고, 중국은 당연히 이 합동 군사훈련이 자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 같은 일본의 조치에 대한 대가로 미국은 일본이 후쿠시마 사태 수습과 에너지 수급 증가 상황에서 숨통을 틀 수 있도록 환시장에 엔을 푸는 조치를 수용해주고 있다.

 

 

7대 위험

 

중국 신구 정권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면서 사회주의 색채를 줄여나가되, 외국인들이 시장을 장악하거나 공산당이 권력을 잃게 해선 안 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미국이 공세를 퍼붓고 일본이 민족주의로 전향함에 따라 중국은 지정학적 전략 선택을 변경했다. 중국이 서구 민주주의 모델을 채택하도록 국제사회가 캠페인을 벌일수록, 자유무역과 인권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중국에 교훈을 줄수록 중국은 문을 더 꼭꼭 걸어 잠갔다. 대외적으로나 내부적으로도 폐쇄적이 되어갔다.

 

서구식 모델을 채택해 단번에 자유화된다면 통제불가능 상태가 되어 공산당이 권력을 잃을 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가 분열되어 혼란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대규모 천안문 시위에 대해서 강제로 진압을 결정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즉 외국인들이 시장을 장악해서도 안 되고 공산당이 권력을 잃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신구 정권이 안고 있는 딜레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면서 사회주의 색채를 점차 줄여나가되, 외국인들이 시장을 장악하거나 공산당이 권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미국이 이념 공격을 가할수록 중국 정부는 더욱 긴장하게 된다.

 

중국 국민들은 상징과 숫자를 좋아한다. 특히 숫자 9를 좋아한다. 지난 봄, 중국공산당은 간부들을 위해 자료 하나를 발간했다. 이 9호 자료에는 '서방의 반중 세력과 중국 내 반체제 인사들이 이념 공세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들'이란 글이 담겨 있다. 이를 비난하기 위해 서양에서 온 '7대 위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서구의 제헌적 민주주의, 인권의 보편적 가치 홍보, 언론의 독립, 신자유주의에 대한 선전, 당의 어두웠던 시절에 대한 '허무주의적' 비판 등이 언급되었다.

 

 

새로운 축, 모스크바-베이징

 

중국과 러시아, 이 두 공산주의 종주국의 관계가 항상 밝은 것만은 아니었다. 차르 시대, 중국이 굴욕의 세기를 보내는 동안 러시아는 서방 강대국의 편에 섰고, 베트남전 때 중국은 소련의 혈맹인 베트남을 충분히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양국 간의 기류가 점차 변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점차 공동의 이익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공동의 경쟁자를 공유하는 새로운 파트너가 됐다.

 

시진핑 주석은 첫 해외 순방지로 모스크바를 선택했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20년 사이 양국 간의 교역 규모가 14배나 증가했다. 러시아는 서방국가들이 팔기를 꺼리던 무기와 우주항공 기술 등을 제공했다. 이에 중국은 러시아에 소비재를 수출했다.

 

무엇보다도 두 나라 사이엔 가장 중요한 쟁점은 에너지 분야다. 태평양 지역의 긴장이 고조될 경우를 대비해서 중국은 에너지 공급을 받는 안전한 루트의 확보가 필요하다.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라는 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 원자재 가격의 하락은 약점이기도 하다. 미국의 새로운 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가격이 하락할 경우 꼭 필요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그래서 중국이 이런 러시아를 충족시켜 줄 파트너인 셈이다.

 

 

게르마니아의 귀환

 

"독일이 통일되면 독일을 유럽에 잡아두는 효과는 불행히도 생기지 않고, 원래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유럽이 독일에 종속될 것이다" - 마거릿 대처

 

나치 시대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서독에게 유럽 통합 계획은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 간 협력 무대에 복귀할 기회였다. 즉 유럽 통합은 독일에게 허락된 유일한 민족주의였던 셈이다. 그리하여 프랑스와 독일이 이끄는 쌍두마차가 유럽연합의 역사를 만들어갔다. 이후 유럽통화체제가 수립되면서 수십 년간 지속한 프랑스와 독일의 공동 체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배상에 관해 독일은 매우 유리한 조건을 얻었으나 지난 수십 년간 유럽에서 이에 대한 논란은 한 차례도 일지 않았다. 상세한 내용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 한 가지 이유였고, 베르사유 조약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지배적인 여론이 다른 이유였다. 그 후, 통합 유럽 건설이라는 과업에 가려 이 문제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그런데 유로존에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서 그리스에서 논쟁이 다시 일었다. 독일 정부의 강경한 요구와 그리스 국민의 부정행위와 나태함을 질타하는 독일 언론의 원색적인 공격에 맞서 그리스 정부는 독일의 전후 배상 문제를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거대해진 하나의 독일이 유럽의 중심을 차지한다. '중화제국'을 지향하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제국'을 꿈꿨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이러한 새로운 지리적 상황을 잘 반영한다. 알랭 그리오트레에 따르면, "베를린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국가의 수도가 빙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베를린이 거미줄의 정중앙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듯 베를린은 여러 네트워크와 길, 도로, 문화권이 뒤섞여 있는 복잡한 그물망의 교차로에 위치해 있다"


 

"현재 베를린은 지정학적으로 봤을 때 일국의 수도가 아니라 제국의 수도다"

- 피에르 베아르

 

 

유로는 마르크다

 

유로는 곧 마르크다! 2001년 경상수지가 플러스로 돌아오며 독일이 경쟁력을 회복했는데, 특히 유로존 회원국들에 대한 경쟁력이 높아졌다. 단일 화폐를 채택한 이후 다른 유럽 국가들이 평가절하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EU회원국들이 메이드 인 저머니 제품의 주요 고객이 된 것이다.

 

독일의 인구 붕괴 현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인구도 고령화되고 있다. 그래서 인구문제로 강박증을 갖게 된 독일은 중상주의를 펴고 있는 것이다. 인구 고령화와 그에 따른 비용 발생에 대처하려면 재정을 비축해야 하고 이를 아무에게나 함부로 빌려줘서도 안 된다. 지금은 100만 명의 인구가 노인 인구 1,600만 명을 부양하지만, 2030년이 되면 2,400만 명을 부양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상품 수출과 노동력 수입, 이것이 바로 메르켈이 이끄는 독일 어젠다 2020의 골자가 될 것이다.

 

독일은 EU의 결정이 자국에 크게 불리하다 싶으면 다 반대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위상이 높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독일식 유럽에 반대하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짧은 에세이에서 독일의 전술을 메르키아벨이라 부르며 이렇게 기술한다. "독일은 경우에 따라 압력을 행사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압력은 전쟁의 논리가 아닌 경제 붕괴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노NO'라고 표현하는 거부 전략(투자하지 않겠다, 대출이나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은 독일 경제력의 원동력이다"


 

프랑스나 다른 국가들은 "독일이 남유럽 국가에 긴축을 강요하는데, 이는 독일 자신도 같이 앉아 있는 벤치를 톱으로 자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일이 유럽 경제를 부양하고 긴축의 굴레를 풀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못 들은 체했다. 독일 주변 지역에서 독일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었더라도, 이미 세계시장 재편에 착수한 독일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미국을 향해 산업을 재편성했기에 독일 지도층은 이웃 유럽 국가들의 경고나 위협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독일 이민정책의 목표는 사회 통합에 있지 않고, 독일 경제의 이익 창출에 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독일은 터키 이민자들이 필요했고, 어제는 중유럽 출신 저임금노동자들이 필요했다. 오늘날에는 선별적 이민정책을 통해 남유럽에서 고급 노동력을 지닌 실업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현재 독일에서 전적으로 수용된 상태다. 2011년, 독일은 외국인 96만 6,000명을 받아들였다. 2012년에는 이 수치가 108만 명으로 늘었다. (매년 많은 이민자들이 다시 나라를 떠나기 때문에) 독일에 출입국한 이민자 수의 차이를 계산하면 총 이민자 수는 2011년에 27만 9,000명, 2012년에는 37만 명이었으며, 2013년에는 50만 명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본다. 매년 출생자 수가 20만 명씩 줄어드는 상황을 만회하는 수치다.

 

다임러, BMW, 폭스바겐 같은 독일의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에게 미국 시장은 이미 수익의 원천이다. 이 업체들은 미국에 현대식 공장을 이전하기도 했다. 가령, 폭스바겐은 테네시 주에 있는 신규 생산 시설에 40억 달러를 투자했고, BMW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메르세데스는 앨라배마 주에 투자했다. 이 세 업체의 경우, 미국에서의 판매 증가율이 중국에서보다 더 가파르다. 폭스바겐의 경우, 2013년에 60만 대를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특히 파사트 모델이 많이 팔렸다). 미국 내 고급 승용차 시장의 50퍼센트 이상이 독일 대기업 수중에 있다.

 

 

프랑스는?

 

30년 전, 새로운 생산기술 시스템의 출현과 더불어 3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3차 산업혁명은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를 동력으로 하는 I경제(IT+경제)를 의미한다. 21세기 글로벌 패권 다툼에서 살아남으려면 단도직입적으로 3차 산업혁명에 진입해야 한다. 전방위적으로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공생을 위한 새로운 협정이 필요한 때다.

 

"프랑스가 독일과 더불어 (유럽의) 양대 축이 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위축과 유럽통합을 지지하는 프랑스지도층의 의지 부재로 인해 더 이상 독일에 반대할 수 없게 된 데 있다"


프랑스는 다양성을 믿는 나라이다. 프랑스는 상대방이 자국의 문화, 관습,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한 이를 모두 존중한다. 프랑스는 입국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에 필요한 규칙을 수용하는 한 얼마든지 이들을 받아들이는 환영의 땅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의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열강의 다툼에서 프랑스는 이미 그라운드 밖으로 밀려나 있다.

 

"한 국가를 정복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칼로 정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채(빚)로 정복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두 번째 대통령 존 애덤스가 한 말이다. 오늘날 독일은 후자를 택했다. 군사력 대신 경제력으로 유럽의 맹주가 된 것이다. 프랑스는 어느 길을 선택할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

 

 

탈산업화, 나라의 미래를 좀먹다

 

한국은 프랑스의 사례를 전철로 삼아 탈산업화의 길을 걷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산업이 없다면 성장도 일자리도 없다. 유럽의 경우, 독일은 이를 인지하고 있었으나 프랑스는 망각했다. 한국이 오늘날의 경제 전쟁에서 탈락하지 않고 경제 대국의 자주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자국 산업의 항구적인 혁신과 원화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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