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숨은 골목 - 어쩌면 만날 수 있을까 그 길에서…
이동미 글 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골목길 접어들때에 내 가슴은 두근거렸지. 대학 시절 내 여자 친구의 집은 골목길에 있었다. 높은 가로등이 내려 비치는 그녀의 2층 집은 낡고 허름한 집이었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얼굴만이라도 한번 보겠다고 먼 길을 찾아온 나는 발걸음을 돌리기가 일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그녀에게는 다른 남자가 있었다.

 

골목길 접어들때에
내가슴은 뛰고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수줍은 너의 얼굴이
창을열고 볼것만 같아
마음을 조이면서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만나면 아무말 못하고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 태우네
바보처럼 한마디
못하고서
뒤돌아 가면서 후회를 하네

 

김현식의 <골목길> 중에서

 

어릴 적 내가 살던 골목은 많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골목길 양편으로 좁은 시궁창이 흘렀는데 늘 악취가 풍기는 동네였다. 동네 골목은 어린아이들 차지였다. 딱지 치기, 비석 치기, 잣 치기, 술레잡기, 말뚝박기, 구슬치기, 제기차기 등이 주된 놀이였다. 주먹과 발이 날라 다니는 싸움도 잦은 편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골목은 삶의 터전이요, 동심이 자라나는 고향이다.

 

한때 나라의 위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경제력과 군사력이었다면 이제는 문화가 그 판단 기준이 된다고 한다. 문화란 그 민족만의 독특함이며 살아온 방식이며 힘의 근간이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로마의 거리가 인상적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파스텔톤의 예쁜 집들이 늘어선 프라하의 황금소로가 멋지다고 한다.

 

K-POP이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생성된 한류열풍 때문에 한글을 배우고 온돌을 궁금해 하며 한국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한다는 외국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우리가 외국 관광 때 그런 것처럼, 그들도 한국을 방문하면 분명 서울의 골목길을 찾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서울의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골목을 직접 발로 뛰며 사진을 찍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별로 추천할 만한 명소 골목을 에세이 형식으로 예쁘게 꾸민 책이다. 온통 샛노란 꽃의 향연을 펼치는 봄의 금호동 골목에서부터 비오면 파전에 동동주가 생각나는 피맛골과 6백년 전 서울로의 여행인 가회동 골목을 거쳐 서울 속의 강원도인 부암동 골목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른 곳의 골목을 소개하고 있다. 

 

 

봄을 부르는

미친 개나리의 향연

금호동

 

봄이 되면 응봉산에 개나리가 핀다. 20만 그루의 개나리가 예고도 없이 어느 날 확 핀다. 그래서 '미친 개나리'라 불린다. 노란 물감으로 온통 응봉산을 물들이면 드디어 서울은 봄울 맞는다. 응봉산 서족에 위치한 금호동 골목은 오르막이다. 헉헉 거리며 걷는 이방인에게 담벼락에 그린 '똥'그림은 웃음을 선사한다. 하늘을 수놓은 거미줄처럼 얽힌 전깃줄까지, 골목의 풍경은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

 

오트바이를 타고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 아저씨들은 꼬불꼬불 골목길을 잘도 찾아 간다. 그런데, 중간 중간 눈에 띄는 높은 계단길은 어떻게 올라갈까? 높은 계단길은 지치게 한다. 이럴 땐 한 박자 쉼이 최고의 보약이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금호동 골목길을 오르면 등에 땀이 맺힌다. 내려갈까 하고 잠시 멈춰 뒤돌아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강과 용비교 그리고 금호동 주택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유럽의 지중해가 부럽지 않다.

 

찾아가기 지하철 3호선 금호역 2번 출구로 나가면 금남시장 방향이다. 금남시장 삼거리에 닿기 전 왼쪽으로 쉬엄길 골목이 있다. 금남시장을 지나 대로가 이어지고 응봉파출소 지나면 암벽공원길과 응봉산 개나리길이 나온다. 응봉산과 개나리만 보고 싶다면 중앙선 응봉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딱딱이를 치던 종묘 옆 작은 길

종로 순라길

 

서울 도심 한복판, 종로통에 무성한 숲이 있다. 바로 종묘다. 종묘 담벼락을 따라 작은 골목길이 나 있다. 조선시대 순라군들이 딱딱이를 치며 순라를 돌던 길이다. 종로통 네거리의 종루에서 종이 울린다. 28번의 종이 울리면 인정人定(밤 10시경)으로 사대문이 닫힌다는 뜻이다. 통행이 금지된다. 파루罷漏(새벽 4시경)가 되어 33번의 종이 울릴 때까지.

 

궁궐을 호위하던 조선시대 순라군들이 한밤중에 도적을 막고 화재가 날까 염려해 순라를 돌았다. 조선시대 궁중과 도성 안팎을 돌며 도둑과 화재를 경계했던 순라군이 지나다녔던 곳이라 '순라길'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지명이 남아 있는 지역은 이 골목이 유일하다.

 

순라길은 종묘 정문을 기준으로 좌측이 서순라길, 우측이 동순라길, 뒷 편이 안국 로터리에서 원남 로터리로 가는 율곡로다. 가운데 쯤에 종묘와 창경궁을 오갈 수 있는 구름다리가 이어져 있다. 순라길을 걸으면 보석 세공을 하는 오래된 가정집들을 만난다. 서순라길 옆의 대각사, 이 절은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분인 용성스님이 세운 사찰이다.

 

 

비 오면 생각나는 곳

피맛골

 

비가 내리면 특히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막걸리와 빈대떡 또는 파전이다. 이 환상의 콤비를 만날 수 있는 곳이 '피맛골'이다. 마음이 딱 맞는 친한 친구 또는 애인과 함께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는 해질녘의 기쁨이자, 삶의 여유요 낙樂이다.

 

"쉬이~ 물렀거라! 영의정 대감 행차시다!" 

 

종로 거리는 항상 지체 높은 사람들의 교자나 가마가 지나가던 곳이라 길 가던 아낙네부터 무거운 짐을 잚어진 남정네까지 엎드려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이러나 보니 종로통이 아무리 넓다해도 높으신 양반이 몇 번만 지나가도 길을 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피맛골'이다. 좁은 골목으로 말을 피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조선시대의 민초들이 돌아다닌 골목이었던 셈이다.      

 

 

6백년 전 서울로의 여행

가회동

 

조선시대에는 서울에 5개의 궁궐이 있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이 차례로 지어졌다. 이 중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동네가 바로 가회동을 포함한 북촌 한옥마을이다. 궁궐에 드나드는 왕족과 왕실의 일가친척, 고관대작들이 사는 곳이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가 계동길을 따라간다. 우측으로 게스트 하우스, 중앙탕을 지나 중앙고등학교와 한류 기념품점이 있다. 가회새싹길에는 한상수 자수박물관, 가회박물관, 동림매듭공방 등이 이어진다. 큰 길을 건너도 모두 북촌 한옥마을이다.

 

 

배용준을 '욘사마'로 만든 드라마 <겨울연가>의 학창시절은 중앙고등학교에서 촬영되었다. 이 학교는 1908년에 설립된 고딕양식의 건물로 마치 유럽식 사립 고등학교처럼 고풍스럽다. 학교 앞 문구점이 학교를 찾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가게로 바뀐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울 속 강원도

부암동

 

행정구역은 서울인데 강원도 시골길 같은 곳이 있다. 백사실 계곡을 끼고 있는 부암동. 개구리, 맹꽁이, 도마뱀이 사는 이곳은 한가로움과 여유가 풍긴다. 눈이 가득한 텃밭 옆으로 우체부 아저씨가 지나간다. 연하장 배달인가보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가 버스를 타고 창의문에서 내린다. 부암동 주민센터에서 왼쪽 길로 가면 무계정사, 현진건 집터가 있고 오른족 길로 오르면 백사실 계곡과 삼각산 현통사 방향이다. 현통사로 내려가면 세검정이 나온다.

 

서울이지만 공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원래의 성곽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자하문 아래에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올라본다. 시구가 입가에 맴돈다. 학창시절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를 읊조려 보지 않은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언덕길 한 걸음이 시 한 구절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부암동은 오래된 집에 인테리어를 가미해 카페를 만든 곳들이 잇다. 낡은 벽을 통유리로 바꾸고 선반에는 장난감을 얹어 소품화했다. 오랜 시간에 세련됨을 입혀 고급스러움을 창출했다. 부암동 골목에선 콧대 높지 않은 예술을 만날 수 있기에, 이곳 사람들은 은근히 자기 동네를 자랑한다. 교통이 불편하다고 퉁퉁거리면서도 부암동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 

 

 

저자는 책을 제작하는 동안에 사라진 골목이 있음도 지적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지는 골목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 대단위의 동네 하나를 모두 밀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내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요즈음이다. 멸종이란 단어가 동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골목도 이미 없어졌다.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더듬코자 찾았더니 낯선 공간에 내가 서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우리의 골목은 멸종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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