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팽이 - 1세대 콘텐츠 리더 최신규의 문화콘텐츠 현장 이야기
최신규 지음 / 마리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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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작은 소프트파워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이다. 2001~2002년, 손오공은 탑브레이드로 전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탑블레이드의 신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질서를 잘 지키기로 소문난 일본도 프레미엄이 붙을 정도가 되자 이성을 잃은 일본완구상들이 한국으로 입국하여 사재기를 했고, 지구촌에선 남자 어린이가 있는 집은 팽이 때문에 실랑이를 벌일 정도였다.

 

'한류'라는 말이 제일 먼저 사용된 곳은 일본에서의 한국 드라마, K-POP 등의 분야에서다. 2011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화를 세계화시키기 위해 '대중문화산업팀'을 신설했다. 문화콘텐츠산업실 내에 신설된 대중문화산업팀은 그동안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던 대중음악, 연예산업, 한류, 패션 등 대중문화산업 관련 업무를 총괄해 분야별 지원 사업과 법제도 개선 등 산업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 드라마, 케이팝 이외에도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 상품이 있다.

 

이 책은 한국의 1세대 문화콘텐츠 사업가 최신규의 성공스토리를 보여준다. 문화콘텐츠에 대한 개념이 생소할 때부터 업계에 몸담고 세계적인 콘텐츠 상품을 만들어낸 그에게 '무학無學의 최고경영자'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다닌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가 소쿠리 행상을 하며 꾸려가던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그는 초등학교 3학년 1학기에 중퇴를 했기 때문이다.

콘텐츠 산업 종사자들의 시선을 끄는 생생한 현장 정보들도 있다. 탑블레이드 탄생을 위해 일본 제휴사들과의 자존심을 건 한 판 협상, 일본 최고의 완구 회사 다카라의 핵심 로봇 기술을 익힐 수 있었던 비결 등이 소개된다. 세계적인 완구 회사 미국 하스브로사,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마텔사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노하우도 공개한다.


 



 

팽이 하나로 1조 원 매출을 올린 사나이가 있다. 완구, 게임, 애니메이션 등을 융합한 상품을 개발하는 (주)손오공의 창립자인 최신규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2001년 일본 회사와 합작으로 팽이 이야기를 다룬 탑블레이드란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면서 탑블레이드 팽이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팽이에 왜 프리미엄이 붙었냐며 다카라에 경고할 정도였다.

 

"왜 팽이가 프리미엄이 붙어 팔리도록 혼란한  상황을 만들어냈느냐? 상품을 제때 만들어 팔아라" (24~25 쪽)


 

1999년 5월, 일본 도쿄 지바현 마쿠하리메세 컨벤션센터 비즈니스 룸에서는 일본 완구회사 다카라의 와다비키 전무, 미쓰비시의 스요시 카지 부사장, 그리고 손오공의 최신규 대표가 새로운 팽이를 선보일 TV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젝트를 협의 중이었다. 다카라는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했기에 투자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손오공과 미쓰비시가 컨소시움을 결성했다.

 

새 팽이의 이름을 '탑블레이드'로 결정하고 제작과 기획을 협의해 나갔다. 콘셉을 두고 한일 간의 시각차가 컸다. 가장 먼저 지적한 문제점은 주인공들이 일본 정서에 맞게 기모노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배경도 일본에 맞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일본측 주장을 받아들이면 한국에선 방송심의를 통과할 수 없다. 일본에서 성공하고 한국에서 실패한다면 3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할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에 지구촌 어린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배경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2001년 <탑브레이드>가 완성되고 한 차례 또 논란에 휩싸였다. 이제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방송사상 한국인 스태프의 이름이 올라간 적이 없었다. 최신규 대표는 엔딩 크레디트에 한국인 스태프 이름이 올라가지 않으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단호한 의사를 전달했다. 결국 받아들여졌다. 탑블레이드는 한국의 완구와 애니메이션에 새로운 역사와 신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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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늘도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방송을 시청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를 항상 고민한다.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의 시각으로 만들어야 성공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이를 무시하고 파행적으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2000년 SBS에서 방영된 <하얀 마음 백구>가 좋은 예다. 어린 백구가 주인공이어야 함에도 제작진은 어른 백구를 내세웠다. 어린 백구의 시청률은 좋았지만 이후 어른 백구의 등장과 함께 시청률은 떨어지고 말았다.

 

백화점 진열대에 있던 로봇 완구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들을 보고 그는 직감적으로 사업 아이템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1990년, 일본 다카라로 출장가서 기술 제휴를 요청했다. 당시 한국은 모방의 나라로 인식되던 시절이라 작은 회사 손오공을 믿어줄 리 없었다. 그래서 로열티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협상에 성공했다. 손오공은 다카라의 OEM방식으로 로봇 완구를 일본에 역수출했다. 이후 미국 하스브로사에도 납품하게 되었다.

 

CEO는 끊임없이 개발하는 사람이 인정받아야 한다. 그는 완구 사업으로 승승장구하다가 2000년대에 들어 IT완구와 온라인 게임에 투자하는 바람에 고전했다. 당시 신규 사업을 반대하는 사내의 목소리도 컸다. 1980년대 초중반 삼성전자가 기술투자 때문에 부도날 거라는 루머가 돌았다. 삼성이 그때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과연 현재의 삼성이 되었을까? 

 

1999년 상영된 영화 심형래의 <용가리>는 손오공에서 최초로 투자한 작품이다. 1996년 겨울 손오공이 영구아트에 4억 원을 투자하고 TV 방영권과 파생 콘텐츠 권리를 확보했던 것이다. <용가리>의 제작 중엔 자주 만났던 심형래 씨를 영화 상영 후엔 도통 만날 수가 없었다. 투자 소득이 별로 없었다. 이후 <디 워>제작시 투자 요청을 받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미국 블리자드의 게임인 디아블로와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 인기가 매우 높다.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의 국내 유통사인 한빛소프트와 마찰을 빚고 있었다. 2003년 5월 '스타크래프트 2' 계약에 대한 암시를 받고 워크래프트 3 등에 300억 원을 투자했으나 결과는 최악이었다.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됐다. 이에 관해 최근 블리자드의 대표 마이크 모하임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며 당시 한국 지사장이었던 한정원의 책임이라고 언론에서 밝혔다.        

  
손오공은 완구로 돈을 벌지만 새로운 비전에 계속 투자한다. 그는 콘텐츠 산업의 미래는 완구, 애니메이션, 온라인 게임의 융합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완구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수백억 원씩 손해를 보면서도 계속 만화와 게임 산업에 도전한다. '멈추지 않는 팽이'는 그가 창의성을 발휘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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