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일하는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박현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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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에겐 매월 19일에 모이는 모임이 있다. 자의든 타의든 직장을 그만둔 예전 동료들과 만나서 새로운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자리이다. 저녁 모임이라 당연히 음주를 하게 된다. 취기가 오르면 그만둔 직장의 상사를 안주로 삼아 씹어대기 시작한다. '그 자식이 보기 싫어 내가 그만 두었어'라고 누가 한마디 뱉어내면 '맞아, 맞아!' 라고 맞장구 치면서 자기가 당했던 경험 한 두 가지를 도마 위에 올려 놓는다. 이때 만큼은 모두 일류 요리사 부럽지 않게 회를 친다.

 

전철 안에서 멍한 채 앉아 '아, 오늘도 피곤한 하루였어'라는 생각을 한다. 이어서 정말 그 상사는 생각할수록 개 같은 인간이네. 인간인 내가 왜 그런 개의 명령을 받으면서 일을 해야 되는지 세상 말세다. 개라면 개사료를 먹어야지 왜 우리와 같이 직원식당에서 점심을 먹는거지? 생각할수록 열불이 올라온다.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이 책은 <생각버리기 연습>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본 동경대 출신의 신세대 스님 코이케 류노스케의 신작 도서이다. 이 책의 내용은 일하면서 겪게되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근원을 밝히고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특히,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마음 훈련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젠 카툰이 눈길을 끌어 흥미롭다.

 

사람의 말투에는 그 사람 특유의 '욕망,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번뇌 에너지가 숨어 있다. 불가에서는 '탐.진.치貪嗔痴'라부르며 삼독三毒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근본적인 번뇌 요소라는 것이다. 이러한 탐진치는 지금까지 그에게 축적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그 사람에 대해서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탐진치를 가미하여 받아들이면 마음속에서 반발심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상대가 "이 서류 정리 좀 해줘"라고 나에게 부탁했다고 치자. 이 말을 듣는 순간 '미안하지만'이란 말을 붙이는 게 예의인데, 왜 이렇게 무례하지? 란 생각이 든다면 불쾌해 질 것이다. 상대방의 욕망 에너지에다 '나를 존중해 달라'는 나의 욕망 에너지가 합쳐지고 또한 이것이 충족되지 못해서 생기는 분노 에너지가 마치 양념처럼 한데 버무려질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례한 말투에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예. 그러죠, 뭐"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불쾌해졌던 이유는 상대방의 말투나 행동 때문만이 아니다. 내 마음 안에 있던 나의 번뇌 에너지, 즉 '자존심이라는 번뇌' 때문이었던 것이다.

 

어릴 적 갖고 놀았던 말굽 자석을 떠 올려보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아니 과학적으로는 자력磁力에 의해 서로 자석을 밀쳐 내거나 때론 합쳐지는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번뇌 에너지에도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같은 종류의 번뇌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은 서로 끌리고, 다른 번뇌 에너지를 가진 경우에는 서로 반발하거나 미워한다는 것이다. 직장이 마음에 안든다, 잔소리 해대는 상사 또는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직장인들의 고민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런 고민들은 자기자신이 지금까지 쌓아 온 마음의 충동 에너지가 상대방이 가지는 번뇌 에너지를 자극해서 마음의 세 가지 독인 '욕망', '분노', '미망'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생긴다" (29~30 쪽)

 

우리는 눈, 코, 귀, 혀, 신체 그리고 의식을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감각기관을 통해 '색, 성, 향, 미, 촉, 법色聲香味觸法'이라는 욕구를 느낀다고 한다. 마음에서 충동이 일어나는 에너지를 '욕망'이라고 한다. 반대로 들어온 정보를 거부하는 충동 에너지를 '분노'라고 하며, 아예 흥미가 없어 이를 무시해 버리는 마음 에너지를 '미망' 이라고 한다. '미망'의 경우는 권태기에 빠진 연인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어리석음'이라 할 수 있다. 상대가 열심히 얘기해도 내 마음은 콩 밭에 가 있어서 상대의 이야기는 마이동풍 격이다. '무시해야지' 하는 번뇌 에너지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럴진대 '나를 소중하게 대해 달란 말이야!'라고 말하는 쪼잔함을 추구하려는가? 아니면 나의 번뇌 에너지를 통제해서 스스로 더욱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으로 나를 변화시킬 것인가? 아무도 쪼잔함을 유지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아무튼 어느 것을 선택하든 이는 자신의 몫이다.

 

마음 속에 에너지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이를 멈출 수가 없어 계속 마음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처럼 과거의 생각이 계속해서 다른 생각에 영향을 주는 에너지를 '업業'이라고 부른다. 불가에서는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게 '구업을 짓지 마라'고 충고한다. 직장에서의 점심시간, 삼삼오오 식사하러 나간다. 그런데, 그 중 유독 한 사람이 싫지만 따돌림이 두려워 어울리게 된다.

 

퇴근해서도 점심시간의 장면이 생각나며 '아, 아까 정말 싫었어'라는 부정적인 사고가 계속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일에 마음을 붙잡는다면 부정적인 에너지를 떨칠 수 있을 것이다. 방을 청소하는 것이 싫더라도 억지로 이런 마음을 뇌 속에서 쫓아내고 몸이 하도록 하자. 이런 경험이 쌓이면 '싫어도 참고 했더니 즐거울 수 있구나'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법륜스님이 진행하는 '즉문즉설'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아이들의 육아때문에 직장을 그만 둬야 할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안가는데 어떻게 할까요?, 새벽기도는 어떻게 하면 힘들지 않을까요?, 며느리가 미워 죽겠는데 어쩌면 좋아요? 등의 질문에 법륜스님이 즉석에서 명쾌한 답을 내려준다. 어떤 질문자는 스님의 즉답을 듣고 감동하여 그 자리에서 울기도 한다.

 

이 책의 3장(류노스케 스님에게 일에 대해 묻습니다)도 '즉문즉설'과 유사하다. 점심시간에 자리에 없는 사람을 험담하는 무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 내가 없다면 나 역시 난도당할 것같아 동참하지만 이젠 점심시간이 두렵다는 질문에 험담에 자주 동참하면 자신의 마음도 덩달아 오염되므로 이젠 점심을 제의해 오면 그들에게 분노를 표출하지 말고 센스있는 말로 거절하라고 답한다.

 

"화를 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화를 내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화를 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분노의 연극을 멀리서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70 쪽)

 

부하직원에게 호통치고 싶은가? 그러나, 말하기 전에 3초 정도 자신의 마음을 정지시켜 보자. 자신의 분노가 무슨 원인 때문인지, 이 분노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호통의 결과는 무엇일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한다. 호통치는 대신에 오히려 부하직원에게 스스로 통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현명하다.

 

"이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점이 불만인지 들려주지 않겠나?"

 

반대로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고 화가 났는가? 이를 해소하려고 동료들과의 위로성 음주, 분위기 쇄신용 고스톱 등에 탐닉하면서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도망쳐서는 안된다. 오히려 자신을 혼낸 상사에게 보란듯이 평소보다 배의 노력을 기울여 업무에 몰두해보라.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일을 통해 긍정적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스트레스 관리법이다.

 

일에 의욕이 없다는 말은 눈 앞에 당장 해야 할 일에 대해 '아, 일하기 싫어 죽겠어'라는 분노의 에너지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취할 정도의 음주나 도박 등이 업무 의욕을 되찾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중대한 착각이다. 일시적인 기분전환은 '일하기 싫다'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잠시 맨홀 뚜껑으로 덮어 둔 꼴이다. 당장 해야 할 일은 먼저 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탐진치'라는 삼독은 고통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를 해소해야 할까? 석가는 수행의 기본을 이루는 여덟 개의 덕德을 설법했다. 불가에서는 이를 팔정도八正道라고 하는데, 원시불교의 경전인 <아함경>에 수록되어 있다. 이중 둘째 '정사'와 셋째 '정어', 그리고 넷째 '정업'은 일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는 덕목이다. 

 

정견正見 올바로 보는 것

정사正思 올바로 사고하는 것

정어正語 올바로 말하는 것

정업正業 올바로 행동하는 것

정명正命 올바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

정정진正精進 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정념正念 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정정正定 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것

 

마음과 몸과 언어가 가능한 일치되어야 충실감을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일을 지속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이를 신체의 행동 '신身'과 언어 '구口', 그리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의意'의 삼업三業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거짓말하지 않기', '비난하지 않기', '나쁜 소문 만들어 내지 않기', '그 자리에 필요 없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남에게 하지 않기'의 네 가지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제 묵언수행을 왜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그것도 충실하게 살면서 행복하고 싶은 것이다. 충실하려면 '진지하게 몰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서'란 의미는 나만의 의식주만이 아니라 가족, 동료, 회사원 모두의 그것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노는 것도 일이다'라며 빈둥댄다면 남에게 경멸받기 쉽다. 사람들은 타인의 번뇌를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귀찮아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분노의 에너지는 삽시간에 주위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린 이미 배웠다.

 

 

"석가가 살아있던 시대의 원시불교는 '사람의 마음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완벽하게 해명한 학문과 그런 탄탄한 심리학에 기초하여 마음을 단련하기 위한 연습이라는 두 가지로 나눠져 있다. 즉 당시 불교에는 신과 부처가 존재하지 않았다. 석가시대의 불교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다 잘 살기 위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245~246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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