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기술
안셀름 그륀 지음, 김진아 옮김 / 오래된미래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아내와 저녁 밥상을 두고서 대화를 나누었다.

"당신은 '노년의 기술'을 뭐라고 생각해?"

"무식이"

짧은 말로 즉답을 하는 아내에게 그게 뭐냐고 재차 물었다.

 

나이든 아내가 최고로 꼽는 남편상이 '무식이'란다. 집에서 밥상을 한번 받는 남편을 '일식이', 두번 받으면 '이식이', 그리고 세번

받으면 '삼식이'라고 부른다는 설명이었다.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남편을 '무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내는 매일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찾고 아침상을 보라고 주문하는 나는 기술이 없는 노년이란다. 졸지에

두식이가 된 나는 아내의 개그콘서트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늙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은 점점 줄어든다. 즉 평생을 두고 늙는 것이다. 그러나, 이 늙음은 기우는 것이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다" - 성 아우그스티우스 (8 쪽)

 

자연은 사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계절별로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들의 삶도 유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거치며 그 시기별로 각각의 의미를 갖는다. 청년기엔 자신의 삶에 대한 정체성을 찾는 때이며, 노년기에는 삶의 열매를 거두는 시기이다. 노년은 성장과 성숙, 탄생의 과정을 위해 삶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명망높은 영적 조언자인 안젤름 그륀 신부는 이 책을 통해 시간, 깨어남, 도전, 사랑, 내려놓음, 화해, 그리고 이별이라는 일곱 가지 주제어로서 노년에 대한 그의 명상을 이야기한다. 그의 말은 한마디로 오래 동안 그 향기가 남는 산사의 차와 같은 느낌을 준다.

 

시간

 

아이들에겐 시간이 느리게 간다. 반면 노인은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낀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시간의 유한함을 느낀다. 우리는 소위 동안童顔이 최고인 시대에 살고 있다. 외모의 경제란 생각때문에 지난 10년간 미국의 미용성형이 무려 450%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외관을 젊게 만든다고해서 젊어지지는 않는다.

 

'자기가 느끼는 만큼이 그 사람의 나이'란 말이 있다. 내면의 젊음은 나이에 상관없이 평생 가져야 할 마음자세이다.

 

깨어남

 

겉으론 나이가 들었지만 마음만은 젊은 노인의 경우, 우리는 오히려 존경심을 표하게 된다.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다르게 늙어간다. 늙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갈수록 더 성숙해지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노년도 '퇴직 - 사회참여 - 병들어 죽음을 기다림' 이라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노인들은 의지할 데 없는 처지, 외로움, 쓸모없다는 생각, 병으로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요즈음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사는 노인들이 많다. 몇 시간씩 등반을 할 정도로 정정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해서 자신의 한계를 도외시하거나 젊은이를 이기려는 욕심을 내어선 안된다. 단축 마라톤대회에서 젊은이를 추월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부끄럽기만하다. 건강은 선물일 뿐이다. 등산할 때 힘든 코스에게는 이젠 작별을 고하자.

 

오늘 날 오십대 후반의 직원에게 명예퇴직을 권유하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이는 나이든 직원의 잠재력을 못 알아 보았기에 발생하는 처사이다. 그들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보고 머릿속에 문제의 개념도를 그려낸다 (80 쪽)

 

도전

 

노년은 자신의 진짜 모습과 대면해야 하는 도전의 시간이다. 상상조차 하기 싫었던 노화를 수용하고 타인의 도움에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 자신의 처지를 목도하는 때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대면함으로써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울 수 있게 된다.

 

사랑

 

노년의 사랑은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더 이상 감정의 격한 동요에만 그치지 않고 상대를 지켜봐주는 것,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113 쪽)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을 갖고 산다. 노년의 사랑은 이런 환상과 작별하는 것이다. 늙은 부부들은 부부관계에 환멸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재미없다, 할 이야기가 없다 등의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이런 경우 두 사람은 지루한 관계가 되었음을 당당하게 인정해야 한다. 또한, 서로에게 매력적이지 않음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내 삶에 활기를 불러넣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자신이다.

 

내려놓음

 

"바보들에게 노년은 겨울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수확의 시간이다" (131 쪽)

 

진정한 의미의 수확은 나 스스로가 열매를 맺는 것이다. 노년에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지나간 실수와 상처 주위를 맴돌지 마라. 만일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이는 내적으로 더욱 그 사람에게 구속됨을 의미할 뿐이다. 자존감에 해를 끼친다. 상처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은 자신감의 키만큼 젊다" - 알베르토 슈바이처 (144 쪽)

 

화해

 

만일 하루가 잔소리와 짜증, 말다툼으로 채워진다면 이는 엄청난 시간낭비이다. 성과에 얽매이지 마라. 시간이 아깝다고 최대의 성과를 얻기 위해 최대로 많은 일을 하는 것은 과연 현명할까? 더 많은 일을 더 잘해야 하다는 강박감으로부터 벗어나라. 의식적으로 시간을 느끼려고 노력하라. 온전히 순간을 느끼기, 대화속에 빠져들기,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기, 타인을 위한 시간을 남겨두기는 노년에 습득해야 할 새로운 기술이다.

 

이별

 

살면서 우린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정든 학교를 졸업하고, 먼곳으로 이사하면서 동네 친구와 헤어지고,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다니던 회사를 떠난다. 또한, 사랑하던 이와 크게 다툰 후 영영 헤어지거나 나이든 부모가 노환으로 생과 이별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죽음은 우리에게 삶의 유한성을 일깨운다. 심리학자 융은 죽음을 자각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가 죽음과 친구할 수 있다면 삶의 기술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말해준다. 삶은 죽음에서 끝난다. 삶과 죽음은 한 줄에 꿰어진 진주알과 같다.

 

"지금 아무도 당신이 한 일, 당신이 살아온 삶에 감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의 삶은 값지다" (197 쪽)

 

 

노년은 우리에게 더욱 성숙해질 것과 점점 더 내면을 향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과 타인에게 너그러워지고, 새로운 삶의 자세를 배우고 터득할 것을 요구한다. [늙어가는 사람을 위한 기도]를 소개하면서 책의 끝을 맺는다.

 

오, 주님, 내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것,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는 것을 당신이 더 잘 아십니다. 어디에서든 내가 나서야 일이 된다는 착각을 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타인의 일에 끼어들고 싶어하는 나의 과한 열정을 다스려 주소서..... (중략)...........

다른 사람에게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오, 주님, 그 재능을 입 밖에 내는 훌륭한 재능도 겸비하게 하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