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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지중해에 빠지다 - 화가 이인경의 고대 도시 여행기
이인경 지음 / 사문난적 / 2010년 7월
평점 :
"그저 쏟아져 나오는 바다를 캔버스에 그대로 받듯이 내 발로 밟은 땅에서 스쳐갔던 생각과 기억과 감정, 느낌들을 나오는 대로 다 담았다" (7 쪽)
저자는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다.
나홀로 여행을 한번 시도하겠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나이 50에 비로소 결행했다.
그리스, 이스라엘, 이집트 등 3 개국을 방문했다. 그래서, 이 책이 탄생했다. 저자의 여행기인 셈이다. 못 가본 곳이야 많지만 무조건 여기를 가기로 작정했단다. 막연히 고대문명, 문명의 고향, 올드 월드에 대한 동경심이 마음 한 편에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아마도 서양 미술사를 전공한 것도 여행지 결정에 큰 영향을 준 듯하다.
그리스 아테네하면 "아크로폴리스"가 머리에 떠오른다. 비록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주입식 암기 공부에 잘 길여여진 탓에 가보지 않아도 가본 듯 많이 안다. "아크로폴리스"란 도시국가의 가장 높은 언덕이란 의미인데, 고대 그리스엔 거의 모든 도시국가에 아크로폴리스가 있었다. 이곳은 신전과 요새 그리고 보물창고의 역할을 했던 중요한 장소였다. 서울로 치자면 남산 꼭대기 아닐까?
저자가 가본 아크로폴리스 언덕은 꽤나 가파른 돌길이고,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기이나 손길에 닳고 닳아서 아주 반들반들 하다고 한다. 1687년, 터키와 베니스 간에 벌어진 전쟁에서 터키군이 아크로폴리스에 진을 치고 도리아와 이오니아식 건축 양식이 잘 어우러진 파르테논 신전에 폭약을 보관하면서 불행한 역사가 만들어 졌다. 베니스군의 포탄이 파르테논에 떨어지자 폭약이 한꺼번에 폭발하여 아크로폴리스 대부분이 파괴되고 말았다. 1822년, 그리스 독립전쟁때 터키군의 폭격으로 한번 더 대파되었고, 1967년 그리스의 군사 쿠데타로 일부 더 파괴되었단다. 가슴 아픈 일이다.
"파르테논의 인상을 내 언어로 바꾼다면, 한마디로 아주 좋은 아줌마다" (53 쪽)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1호가 뭔지 아시나요? 맞다. 파르테논이다. 이곳의 이미지가 저자에겐 마치 푸근한 아줌마의 그것으로 느껴졌나 보다. 50대 여성이라면 생리적으로도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지니는 나이라고 한다.
이젠 먹는 얘기를 좀 해보자.
고대 그리스의 연회시 같이 밥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평화를 의미한다. 수다를 떨면서 천천히 식사를 하는 그리스인들의 전통 정식은 화려하진 않지만 끝도 없이 연이어 음식이 나오는 특징을 지녔다.
그리스의 샐러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강식 중의 하나이다. 특별하게 만들어지는 결정적 요인은 신선하고 질좋은 올리브 기름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샐러드는 토마토, 오이, 양배추, 양파, 피망을 올리브유와 식초에 버무리고 페타치즈를 얹어서 만든다. 그리스는 세계 3위의 올리브유 수출국이다.
한국인들을 비하하는 말중 코리안 타임이 있다.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성 말이다.
외국인들은 'GMT(Greek Maybe Time)'란 농담으로 그리스인들을 깔본다. 우리야 좀 늦다는 지적이지만, 그리스인은 늦는 것은 둘째이고 올 지 안 올지 여부를 도대체 알수 없다고 한다.
그리스의 에게 해는 지중해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명함과 색상 모두 환상적이라 한다.
또한, 비릿한 바다냄새도 없어서 맑고 부드러운 바람의 느낌만을 만끽할 수 있다니 전라도 사투리로 참으로 '징'하다.
한마디로 육지 풍광은 별로라서 바다가 없었다면 여행지로서의 명성을 얻기 힘들었을 듯하다.
"내게 떠오르는 성지순례자의 이미지는, 신에게 헌신하는 방법으로 순례의 고행을 택한, 닳아빠진 검은 옷을 입고, 지팡이를 집고 먼 길을 걸으며, 최소한의 음식만으로 육체의 정욕을 이겨낸, 깡마르고 지친, 그러나 눈빛 만은 형형한, 세상의 것이 아닌 영적 기쁨과 만족감으로 빛나는, 그런 모습이었다" (93 쪽)
기독교가 태어났고, 예수께서 사망후 사흘만에 부활하여 승천했던 곳이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가는 나라
이스라엘, 지금도 순례자의 발길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예수께서 기도했던 감람산, 감람은 올리브란 뜻이다. 옛날부터 그 산에 올리브 나무가 많았나 보다. 예수도 올리브를 축복받은 나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감람산의 겟세마네 바위 위에 지어진 만국교회 정원엔 수령이 2천년인 올리브 나무가 몇 그루있다. 구불구불 얽힌 굵은 나무줄기 마디마다 세월의 이력이 새겨져 있다.
예루살렘이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성지인데 반해,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은 기독교인에게만 성지이다.
예수탄생교회 제단 밑, 굴속같은 지하에 별모양으로 표시된 예수 탄생자리에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모여든다.
"나일 강없는 이집트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게 여겨질 지경인데, 그러려니 해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 아침이면 은빛으로 저녁이면 금빛으로 물드는 나일 강은 분위기 있고 낭만적인 것이었다" (164 쪽)
모세를 강에서 건져 양아들로 삼아 궁에서 길러준 공주는 핫셉수트이다. 핫셉수트 여왕 재위기간엔 이집트 전쟁도 없었다. 이 여왕의 묘이면서 신전인 장제전은 왕가의 골짜기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름답고 우아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장례를 지낼 때, 죽은 자가 사후세계에서 겪을 여러 상황을 무사히 해결하도록 주문이나 신에 대한 서약을 기록한 파피루스 두루마리인 '사자의 서'를 함께 묻었다. 여기엔 시시콜콜한 집안 일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는 죽음의 신 오시리스 앞에서 마지막 심판을 받을 때 생전에 베푼 선행의 무게가 무거워야 영혼이 부활하여 자신의 육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기에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는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지저분하고 행동거지가 불량한 행상들은 관광객에게 호객행위를 한다. 물건을 안기고 돈 달라는 식이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 높은 수준의 삶을 영위했던 민족이 지금은 왜 이리 살고 있는지 서글프다. 그나마 조상 덕에 이렇게라도 먹고 살고 있으니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리스가 바다라면 이집트는 해다!" (208 쪽)
살을 드러내면 즉시 1도 화상이다. 과연 '무서운 태양신'이 이곳의 진정한 주인이다. 고대 이집트인은 해를 똑바로 쳐다만보아도 눈이 멀어진다고 믿었단다. 유네스코에선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세계문화유산 1호로 지정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한다. 카르나크 신전, 왕들의 계곡, 왕비들의 계곡, 핫셉수트 장제전 등 한마디로 압권이다.
숨가쁘게 50대 아줌마를 따라가며 그리스, 이스라엘, 이집트의 3 개국을 돌면서 각국의 고대 역사, 풍물, 먹거리, 풍광 등을 즐겁게 감상했다. 화이팅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