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가야사 - 신화 시대부터 가야의 후손 김유신까지
이희근.김경복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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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베일에 싸여 있던 가야 왕국이 대형 고분군이 속속 발굴되면서 그 실체를 드러 냈다.

"가야"하면 대부분 김수로와 허황옥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들은 토착세력이 아닌 외래세력이다. 한국의 고대 왕국들의 건국에 나타난 공통점은 외래세력과 토착세력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김수로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탄생했으므로 이는 북방 이주민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허황옥도 역시 이주민이다.

가락국기에 의하면 허황옥의 고향은 인도의 아유타국인데, 이는 오히려 신화의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MBC TV에서 특별기획드라마 [김수로]가 방영중이다.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 이 책이 출간되었고 책 내용은 가야는 신비의 왕국이었나, 임나일본부의 실체는 무엇인가, 전기 가야 연맹과 후기 가야 연맹, 가야의 멸망에 이르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3세기에 가야 지역에서 철을 생산하여 왜에도 공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수로, 허황옥, 석탈해 집단의 도래는 당시 최첨단 문명인 철기문명이 형성, 확산되는 가운데 동아시아 민족들 간에 연쇄적인

민족대이동으로 보여진다. 철기문명이 군사력 향상뿐만 아니라 철제 농기구를 생산함으로써 농경사회에 있어서 생산성의 증대라는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

 

가야 땅에선 철정(덩어리쇠)과 철기제품이 많이 발견되었다. 풍부하게 매장된 철을 이용하여 가야인들은 철제 농기구와 철제 무기를 제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야는 김해평야를 중심으로 풍부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바다를 끼고 있어 어업도 자연 왕성했다. 또한, 철을 수출하는 무역업도 번창했었다. 석탈해 집단은 본디 거대 선단을 지닌 해상세력이었는데 철의 무역권을 장악하려다가 포상팔국의 난에서 김수로 집단에게 패배하고 신라로 귀화하고 말았다.

 

일본 나라 지방의 초기 고총고분은 입지조건이나 내부구조 그리고 장법 등에서 가야의 고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총고분은 지배계층의 무덤인데, 이들이 한반도의 가야계통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일본 속에는 가야의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가야인들이 일본 규슈 북부에 건너가 야마토 지역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각지에 정착하면서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후쿠오카 현에는 가라 산이 있다. 가라는 가야와 동일한 이름이다.

 

가야하면 보통 금관가야 등 6가야를 떠올린다. 이는 [삼국유사] 5 가야조에 아라가야, 고녕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소가야가 기록되어 있다. 6 가야 연맹은 수로왕의 건국신화에 나타나는 여섯 알의 탄생때문에 역사적 사실로 믿게 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가야는 6 가야가 아닌 변진 12국이었다. 구야국, 감로국 등의 이름이 나오는데 구야국은 지금의 김해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고증이 쉽지 않다. 따라서, 가야국의 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6개국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그 수가 달랐던 것이다. 다만 이중 6개국이 강성한 세력집단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전기 가야 연맹의 맹주국은 김해의 구야국이었고, 후기 연맹은 고령의 대가야였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런데, 6 세기 초반부터는 함안의 안라 세력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자료에 나타난다. 안라국은 김해의 구야국이 멸망하고 대가야가 맹주권을 제대로 행사 못하면서 지역 맹주로 등장했다. 구야국이 3세기 초 정치적 변화를 겪자 함안의 안라국을 중심으로 포상팔국이 연합하여 김해의 세력에 도전했다. 그러나, 포상팔국은 참패를 당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고 만다.

 

6 세기 한반도의 국제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고구려는 수 차례에 걸친 중국 수, 당과의 전쟁으로 남쪽으로는 신경을 슬 겨를이 없었다. 이 틈을 이용해 백제와 신라는 가야를 차지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에 대해 고령의 대가야는 신라와 혼인동맹을 맺어, 위기를 벗어나려 했지만, 신라는 가야가 안심하는 사이에 가야소국들을 병합시키는 작전을 차근차근 진행시켰다.

결국 562년 사다함이 이끄는 오천여 기병이 대가야를 멸망시켰다. 가야의 후손들은 신라에 편입되어, 삶을 이어갔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신라왕족인 만명부인과 혼인하여, 왕족대우를 받았고, 이후 김유신은 신라군 최고 지휘관이 되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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