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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지 마라 - 선사들의 공부법
장영섭 지음 / 조계종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책을 펼치면 알 듯 모를 듯한 글귀를 만난다.
"호난지주 비불외곡 胡亂指注 臂不外曲"
이는 "제멋대로 해석하고 야단이다. 팔은 밖으로 굽지 않는다" 란 뜻으로, <선가귀감 禪家龜鑑>에 실린 글귀이다.
<선가귀감>은 1500년대인 조선 중기의 서산대사 휴정 스님이 참회, 염불, 육바라밀 등 불교의 요긴한 가르침을 일목요견하게
정리한 책이다. 선 수행의 주의사항 등을 기술하고 있기에 불자들의 수행에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책이 불교와 관련된 책임을 직감하게 한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딱딱한 불교 경전의 해석이 아닌 철학적이며 해학적인 깨우침을 전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중국 당나라 때엔 "선의 황금시대" 라고 불릴 정도로 위대한 선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6 세기에 보리달마가 중국에 도착하면서
소위 "선종"이 시작되었다. 당시 중국 불교는 사찰을 화려하게 짓거나 경전을 펴내는 일에 치중하는 귀족화가 대세였던 분위기였다. 부처님을 이해하기보다 부처님을 꾸미는 데에만 열중했다. 이런 현실에 실망한 달마가 소림사에서 壁觀 수행에 들어 세속과 단절한 채 9년을 지냈다.
달마의 침묵을 깨뜨린 사람이 출현했다. 나이 마흔에 달마를 만나 그를 스승으로 모신 신광이라는 스님이었다. 그가 소림사를 찾았을 때 달마는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눈이 내려 허리까지 쌓인 밤, 그는 자신의 팔을 끊어 보이고서야 마침내 달마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유명한 안심법문 (安心法門)이 탄생했다.
"저는 마음의 평화를 구할 수 없습니다. 아무조록 스님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너의 불안한 마음을 내게 가져와라. 그러면 해결해주겠다"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찾을 수 있다면 어찌 마음이겠느냐. 나는 이미 너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었다"
달마는 마음의 실체란 없고, 마음이 없으니 고통스런 마음이 있을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신광은 "단비 斷臂" 즉 팔을 끊어 보이는 결연한 의지로 집착과 망상이 허깨비임을 일시에 깨닫자, 달마는 그에게 혜가란 법명을 내리고 법통을 잇게 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마음이 없다면 세상을 느낄 수 없다. 마음이 있기에 배가 고프고 먹고 나면 졸린다. 마음이 있기에 선이 존재하고 악도 동시에 있다. 마음이 있어서 서로 다투고 또한 서로 화해한다. 마음이 있어서 소통하고 또한 갈등한다. 육신이 죽어도 마음은 죽지 않는다.
선사들의 공부는 "마음이 부처요 중생이 부처다" 란 통찰에서 출발한다. 마음에 모양이 없다. 또한, 깨달음에도 모양이 없다. 그래서, 조사선의 수행론은 수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수행은 마음이 빚어낸 작위에 지나지 않다. 깨달음이니 번뇌니 이 모두 마음놀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부처하는 사실을 아는 것 이외에 더 공부해야 할 내용이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卽佛이다.
"만약 누군가가 부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잃어버릴 것이다. 약인구불 시인실불 若人求佛 是人失佛
만약에 누군가가 도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도를 잃어버릴 것이다. 약인구도 시인실도 若人求道 是人失道"
- 임제 의현 <임제록> (111 쪽)
공부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자아의 확장이다. 이것 저것 지식과 기술을 주워 모아 나의 가치를 높이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함이다. 대부분 남을 이기고 세상을 지배하려는 데 활용하려고 배운다. 반면 조사들은 진리를 소유해 이를 길들이려 하지 않았다. 진실을 알기 위해 읽거나 외우지도 않았다. 문자와 개념이 훼손되지 않은 날 것에 주목했다.
서암 불교의 창시자 서암 스님이 입적을 앞두자, 지근에서 시봉하던 스님들이 열반송을 지어 달라고 졸랐다. 열반송이란 죽음을 앞둔 스님이 한시 형식의 짧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일반 대중들이야 유언장에 이건 누구 앞으로, 저건 누구 앞으로 남길 것이 많을 것이다. 반면, "坐脫立亡" 을 경험하려는 큰 스님들이야 육체로부터의 후련한 해방감을 서너 줄의 임종게로 남긴다.
조계종 종정을 지냈던 서암 스님은 존재의 무상함을 열반송으로 남겼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215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