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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매달린 원숭이
헤르만 요세프 초헤 지음, 박병화 옮김 / 열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인간은 어떤 유전자를 지녔든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이것은 유전자 탓이 아니라 선악의 본질 때문이다. 악행은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는 속성이 있는데, 선행은 어떤 계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또는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렵다.
"종선여등 종악여붕, 從善如登 從惡如崩"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좋은 일은 배워 행하기는 높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지만, 나쁜 일을 배워 타락하기는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쉽다" 는 의미이다. 결국 악당이 되느냐 아니면 천사가 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린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은 선과 악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헤르만 요제프 초헤 신부는 쾌락, 탐식, 무관심, 시기심, 분노, 자만심, 탐욕 등 중세 기독교가 대죄라고 규정한 인간의 일곱 가지 죄악을 현대에 맞게 재조명하고 있다. 왜 성공에 집착하는 사람은 의미를 찾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지나치게 경험을 탐해서는 안되는가? 왜 한없는 자유가 우리를 혹사시키는가?, 왜 우리는 타인의 질투에서 행복을 느껴서는 안 되는가?, 왜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는가?. 왜 우리는 아무에게도 고마워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하는가?, 마지막으로 왜 선을 행하는 것이 힘이 든단 말인가? 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을 빌어 일곱 가지의 대죄에 대한 재조명과 새로운 윤리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죄가 하필 일곱 가지인 이유는 중세가 선호하던 수나 수의 조합 방식, 열거 방식과 관련이 있다. "7"이라는 숫자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지도 오래되었다. 성서의 창세기편의 천지창조도 7일 동안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스러운 숫자"로 간주한 것이다. 고대부터 알려진 일곱 개의 천체,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어울려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 중세 우주론이었다. 전통적인 기독교인의 윤리에도 믿음. 소망. 사랑. 지혜. 정의. 용기. 절제의 일곱 가지 미덕이 있다.
초헤 신부는 일곱 가지의 죄악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의 악습 또는 성격적 약점에서 나타난 악덕을 아무 저항 없이 반복적으로 행하거나 성격으로 고착되도록 방치할 때 비로소 죄로 변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일곱 가지 악덕을 거론함에 있어 도덕적인 훈계나 성직자의 설교 방식을 철저히 거부한다. 단지 이러한 악덕이 우리 생활에서 어떻게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지, 또한 외형적인 가치관이 어떻게 젊은 세대에게 악영향을 주고 잘못된 믿음으로 자리잡는지 지적하고 있다.
현대인의 경험 욕구는 정신적인 가공의 과정이 결여된 경험을 추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경험이 아닌 껍데기에 불과한 체험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미와 상관없이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려고 한다. 오로지 직접 체험을 탐식함으로써 결국 정신적인 변비에 걸리고 만다. "누구나 경험을 축적하려고 하지만 거기서 교훈을 얻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42 쪽)
한편, 저자는 새로운 미덕을 제시하고 있다.
쾌락은 겸양의 미덕으로, 탐식은 금욕으로, 무관심은 부동심으로, 시기심은 기쁨의 나눔으로, 자만심은 순종의 미덕으로, 탐욕은 양보로, 분노는 열정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본인의 노력에 의한 실천에 달린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원숭이"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은 선을 향한 의지를 실천할 때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