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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 있다 - 기나긴 싸움, 그리고 기적에 관하여
전범석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날씨 화창한 어느 가을 날, 관악산으로 산행을 나섰다가 나의 동서는 산에서 발을 헛딛어 굴러 떨어져 척추를 다쳤다. 머리와 얼굴은 멀쩡하지만 전신이 마비되어 지금도 간병인과 가족의 간호에 의지하고 있다. 병원에서 재활 치료에 열중이지만 한 병원에서 오래 머물지를 못한다. 재활 전문 병원이 부족한 탓에 대학 병원에 입원하여 일정 기간 치료를 받다가 기한이 되면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는다. 이런 생활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한 병원에 3개월을 넘겨 입원하기는 쉽지 않다. 3개월 이상 입원하면 의료보험공단에서 치료비 지급에 제한을 둔다고 한다. 병원 입장에서도 장기 입원환자가 있으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퇴원 지시를 내리게 되고, 기댈 곳 없는 보호자들은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한다. (185쪽)
이 책의 저자 전범석 서울의대 교수도 2004년 6월 5일 남한산성 산행시 벌봉에서 갑자기 넘어져 경추골절로 인한 사지 마비가 왔지만. 성공적인 수술과 재활 치료를 거쳐 마비된 사지가 회복되어 현재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병원에서 진료와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이 책은 사고후 9개월 동안의 입원 생활과 투병 과정을 기록한 에세이이다. 전문의로서의 지식이 충분했기에 갑작스런 사고에도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하였기에 이런 기적적인 일이 생긴 것같다.
척수를 크게 다치면 호흡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횡경막을 담당하는 신경에 문제가 생겨 호흡 마비로 사망하기 쉬운데, 저자의 경우 호흡 마비가 오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이다. 척수손상에 대한 전문 지식이 충분했기에 목 보호를 확실하게 조치하여 헬기로 사고지점에서 인근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신속하게 후송하여 국내 권위자가 척추 수술을 하도록 했다. 자신의 병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합병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고 평소 돌쇠로 불릴 정도로 건강체질 이었기에 마비로부터 일어날 수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른쪽 엄지발가락,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약간 움직일 수 있었다. 향후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생각이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쓸 수가 없기에 여동생과 간병인에게 자신의 말을 받아 적도록 했다.
완치하는데 기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철저하게 수립하여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첫째, 전문 간병인을 구한다.
둘째, 부모님에게는 이 사실을 절대 알리지 않는다.
셋째, 문병객을 받지 않는다.
물리치료는 매일 오후 2시 반부터 30분 동안 치료사의 도움으로 진행했다. 머리 한 번 감는데, 간호사, 간병인 포함하여 여섯 명이
매달려 한 시간 이상 씨름해야 한다. 치료를 거듭하면서 손이 점점 올라가 목 근처까지 올릴 수 있다. 이젠 앉을 수도 있다. 사지가 마비되어 병상에 누운 지 한 달만에 땅을 딛고 혼자 설 수 있었다. 이틀 후 처음으로 앉아서 변을 볼 수 있었다. 며칠 후 처음으로 오른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질 수 있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몸과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산책길을 걸었다.
본격적인 체력강화 훈련을 했다. 이젠 스푼으로 밥을 떠먹는다. 젓가락으로 반찬도 집을 수 있다.
5개월 만에 귀가했다. 이젠 외래 진료를 받기로 했다. 아침 여섯 시에 기상하여 식빵과 과일로 조식을 마치고 병원으로 첫 출근을 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7시 20분, 9시 부터 진료를 시작했다. 오후 2시부터 물리치료를 받아야하기에 환자 수는 20명 이내로 제한했다. 매주 외래 진료를 2회 나간다. 2005년 2월 23일, 입원한 지 268일 만에 마침내 퇴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