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 시장을 파괴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보다
조지 쿠퍼 지음, 김영배 옮김 / 리더스하우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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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기에는 기업의 현금흐름이 빚을 갚는 데 필요한 액수를 훨씬 초과하며 그에 따라 '투기적 낙관론' 이 일어난다. 곧이어 부채규모가 차입자의 상환능력을 넘어서는 지경에 이른다. 그에 따라 금융위기가 터진다"

 

하이먼 민스키(1919 - 1996)는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자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금융위기의 본질을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경제학자이다. 투기적인 차입 거품의 결과로 은행을 비롯한 자금 대부자는 건전한 기업에 대해서도 신용한도를 급속히 줄인다. 이처럼 금융은 외적 충격 없이도 내적 불안에 따라 급속히 위축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2008년 하반기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조만간 세계적인 경제 공황이 엄습하리란 전망과 예측들이 힘을 얻으며 실물 경제도 휘청거렸다. 그러나, 강력한 구조조정과 유동성 공급이라는 극약을 처방하면서 이후 가파르게 투자 심리가 회복되면서 금융위기도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금번의 금융위기로 반성의 목소리도 거세다. 그간 "효율적 시장이론"이 우리 경제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이론에 입각한 자유시장주의자의 금융시스템은 한마디로 순한 양을 기르는 것과 같다. 그냥 내버려두면 저절로 안정을 찾아 최적의 균형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금융시스템엔 안정적인 균형점이란 아예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의 투자전략가 마크 피버는 1987년 뉴욕증시의 대폭락인 "블랙 먼데이" 를 예견하여 "닥터둠" 이란 별명을 얻었다. 여기서 둠(Doom)은 파멸, 불길한 운명이란 뜻이지만 이후 금융시장에서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닥터둠의 멘토로 군림하는 하이먼 민스키는 "금융불안정성 이론" 을 주창했다.

 

민스키는 한 나라의 경제를 금융위기 상태로 몰고가는 핵심요인으로 "부채의 과잉누적" 을 손꼽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경제단위를 "헤지 차입자", "투기적 차입자", 그리고 "폰지 차입자" 로 구분했다. "헤지 차입자"는 자신의 현금흐름만으로 당초 대출계약조건대로 빚을 상환할 수 있는 사람이다. "투기적 차입자"는 부채의 원금을 즉시 갚지는 못하더라도 이자는 충분히 납부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만기연장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다. "폰지 차입자"는 원금상환은 고사하고 이자납입도 제 때에 이행할 수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헤지 차입자" 가 많은 경제는 안정적이지만 "투기적 차입자" 또는 "폰지 차입자" 의 비중이 높다면 금융시스템이 불안정해질 것이다.

 

민스키는 "금융불안정성 이론" 에서 자본주의 경제는 오랜 호시절 동안 "투기적 차입자" 와 "폰지 차입자" 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금융구조로 바뀌는 경향을 띄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가 팽창하는 어느 순간 정부 당국이 통화 긴축을 단행하면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유지하는 정책을 펼치면 "투기적 차입자"는 "폰지 차입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기존의 "폰지 차입자"는 자신의 자산을 매각함으로써 자산가치가 급락세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거품이 터지는 순간 "폰지 차입자"의 낙관론은 한순간에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금융시스템의 경색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사태를 살펴보면, 민스키의 이론에서 언급한 내용과 닮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맥컬리도 민스키의 이론을 도입하여 이를 설명하고 있다. "헤지 차입자"는 전통적인 방식의 주택 담보대출을 받아 원리금을 착실히 갚는다. "투기적 차입자"는 담보대출 이자를 갚다가 만기를 연장하면서 계속 이자만 갚는다. "폰지 차입자"는 자신의 소득으로 이자를 갚기도 버거워 실질적인 대출원금이 계속 늘어가는 사람이다.

 

민스키의 주장은 생전에 매우 급진적인 이론으로 평가되었지만,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금번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의 발생으로 또 다시 민스키의 이론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처럼 민스키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 만든 내적인 불안에서 금융위기가 비롯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 조자 쿠퍼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자산운용사 "얼라인먼트 인베스터즈" 의 CEO를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금융시장이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는 민스키의 "금융불안정성 이론"을 전제로 하여 자산시장의 거품이 반드시 투자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로부터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며, 적절한 가치를 산정할 수 있는 지식이나 정보가 결여될 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때 금융시장이 안정을 이탈하는 시점인 소위 "민스키 모멘트" 가 지속적인 신용의 팽창에서 발생함을 지적하고 아울러 이러한 신용팽창을 방치하는 중앙은행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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