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로 말해요 - 농인 아내, 청인 남편이 살아가는 이야기
가메이 노부타카.아키야마 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삼인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개봉한 영화 [블랙]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고집불통 소녀와 어느 선생님간의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가 전개된다. 영화속의 소녀는 헬렌 켈러, 선생은 설리번 선생의 역할을 연기한 것인데, 영화에선 남자 선생님으로 그려져 있다.

헬렌 켈러(1880 - 1968년)는 시각, 청각 장애자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 났지만, 생후 19 개월 쯤 고열의 중병을 앓고서 시각과 청각을 잃었지만 앤 설리번이라는 훌륭한 여선생님을 만난 뒤 학업에 정진하여 16 살에 대학교에 입학했고, 대학 졸업후 독일어 등 5 개의 언어를 구사하며 사회 진보 운동에 참여한 인물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장애인으로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전세계의 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 책은 30대 후반의 농인 아내와 청인 남편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37 살의 아키야마 나미씨는 농인인데, 컴퓨터를 끼고 살며 아트 플라워가 특기이다. 남편 가메이 노부다카씨는 38 살의 정상인이며 요리하는 것이 취미이다. 둘 사이에 아내는 고양이, 남편은 거북이라는 호칭이 재미난다. 이 부부의 일상적인 이야기 속엔 장애인이기에 겪게 되는 불편과 사회적인 냉대 그리고 법제도의 미비 등이 소개된다. 일본인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현실을 한번 생각하도록 해주었다.

 

 

귀가 들리는 사람, 청인은 목소리에 의한 청각언어를 사용하는데, 이를 "음성언어"라고 한다. 반면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손과 얼굴 표정에 의한 시각적 언어인 "수화"를 사용한다. 귀가 들리지 않아 수화로 얘기하는 사람을 농인이라고 한다. 한편, 농인이 입술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으로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발성연습을 통해 언어를 습득하는 교육법을 구화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농인 자신이 원하지 않을 때에는 절대로 구화를 요구하지 마십시요"라고 법제화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의 문헌에도 농인들이 수화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수화는 시대와 나라의 경계를 떠나 농인과 함께 있었던 듯하다. 수화는 역사를 지닌 소수 언어이다. 수화는 세계 각지의 농인 집단 속에서 자연스레 성립되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져 온 언어이다. 따라서, 수많은 언어가 탄생되었고 세계엔 적어도 112 종류의 수화언어가 있다고 한다.

 

구화법 교육은 농인을 음성언어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전 세계 농인 단체의 맹렬한 반대로 인해 현재 여러 나라에서 수화를 교육 언어로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따라서, 대학과 관공서 등 공공기관이 수화 통역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토록 법제화하고, 농인의 수화를 권리로 인정하고 보호해야할 필요가 있다.

 

말은 소통의 수단이자, 감정의 표현 방법이다. 통계에 따르면, 청인과의 대화가 불편하기 때문에 농인의 90%는 농인끼리 결혼한다고 한다. 또한, 농인은 장애로 겪는 고통때문에 청인의 악의나 편견에 무서울 정도로 민감한 행동을 보인다. 여행사에 투어 신청을 해도 거절당하기 쉽고 "여행사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제출해야 가능할 정도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농인들의 현실이다.

 

정상인인 청인들은 농인에게 목소리로 말을 걸어서도 안될 것이며, 농인들간의 수화를 빤히 구경해서도 안될 것이다. 농인들의 오랜 권리 투쟁 끝에 몇몇 나라는 헌법에 수화를 국가의 공용어로 인정하고 있다. 청인들의 농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이젠 버려야 할 때다. 출생, 습관, 세계관이 다른 두 사람이 집에서 말할 때 "두 사람 사이의 공통어는 수화" 라는 사실이 가슴에 오래 동안 남을 듯하다. 한국의 사회도 농인의 입장을 고려한 제반 제도가 하루 빨리 정착되기 바라면서 헬렌 켈러의 명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고개 숙이지 마십시요.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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