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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실력, 장자 - 내면의 두께를 갖춘 자유로운 생산자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평점 :
세상의 주인은 대답하는 자가 아니라 질문하는 자고, 세상의 주도권은 멈춰서는 사람이 아니라 건너가는 사람이 갖는다. 실력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질문하는 자고 건너가는 자라면, 삶의 실력은 바로 ‘덕’의 발휘일 뿐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최진석은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거처 베이징대학교로 유학해 장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모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5년에 건명원建明苑을 설립해 초대원장을 맡았다. 현재 고향 함평에서 청년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총 13장으로 구성된 책은 '장자 사상의 배경'을 시작으로, 장자 사상의 철학사적 의미, 인간 장자의 내면, <장자>의 서술 방식, <우언>편, <추수>1~3편, <소요유>편, 장자 사상의 먹, <제물론>1~2편, 장자의 특별한 경지 등을 다룬다.
맨 먼저 장자 사상의 배경을 살펴보자. 책의 저자는 "장자 철학은 입체적인 철학입니다. 입체적이라는 말은 시간 관념이 다뤄진다는 뜻입니다. 입체성을 지탱하는 관념이 바로 시간을 타고 작용하는 운동이고 변화인데, 운동과 변화를 해명해주는 것이 바로 ‘기氣’라는 범주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노자와 공자에는 기氣 범주가 없다. 공자와 노자 사상에서 '기氣'자를 다 빼버려도 사상적인 구조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이와 달리 장자 사상은 기를 빼버리면 무너진다.
관념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장자는 자신의 부인이 죽었을 때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던 이유를 따지려고 한다. 진짜 따져야 할 것은 노래를 하게 된 배후에 장자가 수준 높은 관찰 능력, 그 인문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문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태도가 바로 '찰기시察其始'인 것이다.
장자 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고 싶으면, 장자의 행위를 그대로 따라 해보는 것이 아니라, 장자가 가졌던 자세와 시선의 높이를 보는 것이 더 좋다. 그것이 근원이나 근본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더 줄여서 말하면,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세히 살피고, 깊이 생각해보는 태도를 배양하는 것이다.
도가道家 철학을 잘못 배우면,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근면 성실하지 않아도 되는 줄 오해한다. 규칙도 잘 안 지키고, 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해야 도가인 줄 안다. 이같은 거짓말에 속지 말자. 장자는 '무소불규無所不窺', 즉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단련했다. 이랗게 자세히 들여다보는 훈련을 한 것이다. 그래서 아내가 죽었을 때 자신도 슬픔을 느꼈지만, 자세히 생각한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
장자는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설파한다. 이야기가 바로 그의 표현법인 셈이다. <추수秋水>편을 보자. 추수란 가을에 장마가 들어서 물이 불어난 상황을 뜻한다. 물이 불어나면 강이 넓어져서 건너편 저쪽에 있는 것이 소牛인지 말馬인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이다.
하백河伯은 황하에 살고잇는 신神이다. 가을에 물이 불어났으니 가진 게 너무 많아 신이 날 지경이다. 그래서 둥실둥실 동쪽으로 흘러가 보니 거기에도 끝이 안 보이는 듯했다. 그렇다. 바다이다. 하백은 한숨이 나왔다. 하백이 본 바다는 북해北海였다. 북해엔 '약若'이라는 신이 살고 있었다.
북해약을 보고 깜작 놀란 강의 하백 사이에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백)"지금 나는 당신의 끝이 안 보이는 크기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문전에 이르지 않았다면 큰일 날뻔했습니다. 나는 도道를 터득해서 아주 뛰어나게 된 사람들한테 오랫동안 비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북해약)“우물 안의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말해줄 수 없소. 공간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오. 여름 한철 사는 벌레에게는 얼음을 말해줄 수 없소. 시간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오. 자잘한 선비에게는 도를 말해줄 수 없소. 교육받은 내용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하백 당신은 양쪽 강변을 벗어나 큰 바다를 보고,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지경에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소. 이제 비로소 당신과 더불어 대도大道의 이치를 말할 수 있게 되었소.”
그렇다. 장자는 북해약의 입을 빌어, 사람들이 대개 어디서 사는지, 어떤 시대를 사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 기준과 관점과 한계를 갖게 되고, 그것들에 갇힌다고 말한다. '양쪽 강변'은 하백을 가두던 한계다. 하백은 자신의 한계를 비로소 벗어남으로써 한계 너머의 큰 이치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자신의 함량含量을 키우는 법
북해약과 하백의 이야기에 연관시켜 저자는 함량을 키우는 법 세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인간으로 완성되기를 꿈꿔야 하기에 포부를 크게 가져야 한다. 둘째는 좋은 습관을 갖지 않고선 인간으로 완성되지 않으므로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며 이를 수양의 규율로 삼아 평생 지켜야 한다. 셋째는 엄청나게 강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도가道家 철학을 즐기는 사람 중에 지식을 소홀히 대하는 것이 멋진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지식이 많아야 한다. 지식 없이는 성숙할 수 없다. 성숙한 척 할 뿐이다. 노자는 '주나라 왕립 도서관 관장'이었으며, 지식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었다. 장자 또한 여러 왕들이 재상으로 모셔 가려 할 정도로 지식이 많은 사람이었다.
함량이 커지면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관찰할 수 있다. 반면 함량이 작으면 그 한계를 볼 수가 없다. 함량이 커서 자기를 제삼자처럼 놓고 볼 수 있는 사람만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를 벗어나서 더 큰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결론은 함량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자기를 바라보는 능력
이 책이 거의 끝나는 무렵, 저자는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제기한다. 장자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자기가 마치 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으로 착각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같은 착각은 그만큼 자신의 영혼이 게을러지고 망가졌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기 각성이 없는 일은 어떤 것도 자기한테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사회에도 의미가 없고, 나라에도 의미가 없고, 이 우주에도 의미가 없다. 여기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일은 언제나 탁월함에 대해 논論하고 자신과 이웃을 성찰省察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한 소크라테스가 생각난다. 이에 저자는 이렇게 강조한다.
"숙고하지 않으면서 탁월해질 수 없습니다. 숙고함에서는 자신에 대해 묻는 일이 가장 근본적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위대함의 출발점은 항상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306쪽)
나를 바라보는 능력
총 13장으로 이어진 장자를 공부하면서 확인해 볼 일이 하나 있다. 책을 덮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능력이 향상되었는지를.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공부는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다. <장자>의 '인간세'편엔 제자 안희가 위나라 군주의 난폭함을 바로잡고자 위나라로 가겠다고 하자 먼저 깆춰야 할 것도 아직 갖추지 못했으면서 주제 넘은 간섭이라고 질책한다. 이어서 우선 "심재心齋하라!"고 가르친다. 실력을 더 키우려고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하면서 서평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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