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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인들
이세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2월
평점 :
이성재는 세 아들들을 만나면서 자신은 점차 불멸의 존재로 승화하게 된다. 그럼 이성재가 남긴 막대한 유산이 불멸의 존재일까? 아니다. 그가 남긴 진정한 유산은, 이성재가 품고 있던 그리고 끝까지 버리지 못한 그의 지고지순한 자신만의 감정이다. 이제 그 하나뿐인 감정은 각자 세 명의 아들들에게 그대로 승화되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성재 패밀리 스토리
이성재의 주치의는 암 진단을 내린다. 나이 예순의 내과의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인물로 일선에서 물러나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던 그의 입밖으로 튀어 나온 말은 ‘췌장암’이었다. 더구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4기 암이었다. 이성재는 이 사실을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지 말라고 재차 당부한다.
경기도의 한 작은 시골 출신인 이성재는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탈피하려면 오로지 공부 뿐임을 깨닫고 주경야독으로 노력한 끝에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했다. 투자의 귀재라 불릴 정도로 싼 토지와 건물에 투자해 큰 돈을 벌어 교수직을 얻었고 이후 정치인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젠 정치판을 떠나 연희동에 위치한 2층 호화 저택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병원에서 돌아온 이성재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있는 듯, 아내에게 가족모임에 아들 전원 참석시키라는 명을 내렸다. 안건은 재산문제라고 슬쩍 흘린다. 이에 장남 상진, 차남 석진, 삼남 재진 중 둘째가 겉으로 돌기만 해 연락이 좀처럼 되질 않자 셋째에게 연락을 취하라고 미션을 부여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재진은 제주 마라도에서 낚시를 즐기는 형을 찾아가 아버지 호출을 전하며 무사히 서울로 데리고 왔다.
"너희가 알거나 모르는 재산이 더 있다.
나는 그걸 천천히 정리해서 너희에게 상속할 예정이다"
이 가족들의 식사시간은 대화가 별 없다. 아버지 이상재가 원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맛있는 반찬들을 곁들이며 찹찹대는 소리와 밥그릇을 끍는 숟가락 소리만 요란하던 식사가 끝나자 이성재가 가족들을 앞에 두고 내뱉은 말이었다. 첫째 상진은 갖고 싶은 걸 반드시 제 손에 거머쥐려는 강한 소유욕을 지녔기에 대학졸업 후 직장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못하자 이성재는 자신 소유의 건물들을 관라하는 일을 맡겼다. 셋째 재진은 착한 성품의 소유자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후 아버지의 복지재단을 물려받아 젊은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유독 둘째에겐 뭔가를 물려주지 않은 듯했다. 어린 시절부터 첫째와 둘째는 불편한 사이였다. 첫째가 기름이라면 둘째는 물에 비유할 수 있었다. 불같은 성격의 첫째에 비해 흐르는 물처럼 조용하고 곧은 성품이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면이 있을 정도로 좀처럼 속을 내보이지 않았다. 비교적 차분하게 공부를 잘해 미국으로 유학까지 갔다. 귀국 후 뭔가를 하고 있지만 가족들에게 자신의 일을 굳이 알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둘째의 방에 들어온 이성재는 그런 둘째에게 "네게 했전 투자를 돌려받으려고 한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간다. 도대체 무슨 투자일까?
현재 복지재단이사장인 셋째는 여섯 살 때 보육원에서 데리고 온 입양아였다. 착한 심성이라 잠시 맡겨 놓은 셈인데, 재단의 재산은 이성재가 그간 모은 부동산과 현금 등이 그 원천이었다. 사실상 단순히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재단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셋째 재진은 새로운 자금 운용 방식을 고집하며 기존의 재단 운영진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집에 게속 들어오지 않는 둘째 석진을 만나려 아버지 이성재는 아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갔다. 두 사람은 바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었다. 이성재는 둘째에게 자신의 상속 계획을 밝히며 일방적으로 이를 수용하라고 주문한다. 이는 유산 관리를 맡기겠다는 제안이었다. 이같은 확신은 비서실장을 통한 은밀한 뒷조사 결과 미국내 아들의 재산이 수백 억일 정도로 그 재능이 뛰어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결국 둘째는 집으로 들어온다.
다혈질에다 단순한 뇌를 가진 첫째는 사고를 친다. 어렵사리 집에 들어온 둘째에게 시비를 건다. 평소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안중에 없고 미국에서 10년 넘게 지내던 동생이 순순히 집에 들어온 것은 중이 잿밥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고상한 척 행동하지만 속으론 유산 상속을 노리는 검은 속내를 가졌다고 언성을 높이다가 결국 손찌검까지 한다. 이에 억울한 생각이 든 둘째는 다시 가출해 호텔로 간 후, 여장을 챙겨 미국으로 출국하고 만다.
석진의 미국행엔 뉴욕에서 M&A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고교 동창의 연락이 있어서 였다. 같은 동양계(대만계 미국인, 일본계 미국인)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자주 어울렸지만 대학에 입학한 이후론 서로 가는 길이 달라 안 본지가 10년이나 된 사이였다. 나중에 다른 변호사를 통해 알고보니 이 둘은 M&A 계약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 소속 로펌에서도 퇴출된 변호사였다. 이들은 석진의 재력을 미리 파악한 후 의도적으로 접근했지만 냉철한 석진이 말려들지 않고 관계를 잘 정리했다. 뉴욕에서 지낸 지 한 달이 되었을 무렵 새벽에 동생 재진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다며 빨리 한국으로 귀국하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과연 아버지 이성재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걸까?
"내가 눈을 감을 때까지 네가 신경 써야 할 일은 그게 아니다.
오늘 오 변호사와 만날 때 모든 것을 분명히 확인해라"
병실에서 나온 석진은 아버지의 청에 따라 강남으로 향했다. 오재필 변호사를 만나 아버지의 재산 목록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석진을 만난 오 변호사는 부전자전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제 막 보는 재산목록임에도 부동산의 처리(매각)나 주식 정리에 대해아무런 막힘이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큰 아들을 제끼고 동생 석진에게 이 일을 위임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주식을 정리해서 생긴 현금 자신은 투자할 만한 회사에 형 상진의 명의로 투자하되 이 투자금을 형이 손댈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요청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몫은 제외키로 했다. 자식들과 함께 지낼 기간이 그리 길지도 않을 뿐더러 머지않아 다시 자식들에게 상속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나머지는 나중에 더 말씀드리라는 아버님 지시가 있었음을 오 변호사는 밝혔다. 장례식이 끝난 후 발표되었다. 바로 유언장이었다.
'모든 재산은 아들 석진에게 넘긴다.
연희동 저택은 아내 김무교와 장남 상진의 공동 소유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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