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경복궁 - 경복궁에 푹 빠진 사람의 시선
박찬희 지음, 이의렬.이가명 사진 / 빨간소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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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경복궁에 빠진 한 사람의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일부러 경복궁에 관한 세세하고 촘촘한 지식을 담지 않았습니다. 대신 경복궁을 보는 방법과 걷기에 집중하고 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처음 경복궁을 가거나, 다른 눈으로 보고 싶거나, 천천히 거닐고 싶은 사람을 염두에 두고 그를 썼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박찬희는 대학에서 역사를,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하고 박물관에서 일했다. 박물관에서 문화유산을 만나고 사람들과 박물관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며, 역사 현장을 찾을 때는 어느 때보다 눈이 반짝거린다고 한다. 현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이다.


총 8개 영역으로 구성된 책은 광화문 광장, 광화문에서 영제교까지, 근정전과 사정전, 강녕전에서 차경전까지, 경회루와 궐내각사, 향원정과 건청궁, 궁궐의 변화가 보이는 곳, 나만의 방식으로 경복궁 보기 등의 순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광화문광장


경복궁 여행은 어디에서 시작하면 좋을까? 대부분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으로 가는데, 저자는 이보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이 제격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광화문광장과 세종대로 주위로 큰 발딩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데, 조선시대에 이곳은 육조(이·호·예·형·병·공조)를 비롯한 중요 관청이 늘어선 거리이자 광장이었다. 육조거리까지 봐야 경복궁을 제대로 보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진, 육조 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 바로 앞이 세종대로 사거리로 광장처럼 굉장히 넓다. 조선 사람들은 이 사거리를 볼 수 없었다. 그 시절엔 이곳에 시청 방향으로 가는 길 대신에 ‘황토현’이란 낮은 언덕이 있었고 삼거리였다고 한다. 언덕을 그대로 둔 이유는 경복궁 안으로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는 장치, 즉 방파제였던 셈이다.


현재는 모두 복개覆蓋되어 있어 보이지 않지만, 원래는 경복궁 동쪽으로 삼청동천(중학천), 서쪽으로 백운동천이 흘렀는데 이 개천들 사이에 경복궁이 자리잡았던 것이다. 옛 선인들은 궁궐을 세울 때 물줄기와 더불어 산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시작, 왼편으로 천천히 걸으며 조선으로 타임 슬립하자면 처음 만나는 세종문화회관은 1961년에 건립된 서울시민회관이 1972년 말 텔레비전 생방송 도중 대형 화재가 발생해 새로 확장 신축한 것으로 조선 때는 형조와 공조가 있었던 자리였다.


사헌부 터를 지나면 광화문에 성큼 다가온다. 잠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정원에 오르면 경복궁의 규모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광화문 뒤에 놓인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을 찾은 뒤 그 중심을 따라 가상의 선을 그으면 엄격한 좌우 대칭이 만들어진다. 이게 바로 경복궁 만의 특징이다. 근정전 뒤의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까지 좌우 대칭이 이어진다.


(사진, 경복궁 전도)


경복궁 왼쪽 끝에 국립고궁박물관이 보인다. 조선 때는 이 일대에 여러 관청이 있었다. ‘궐내각사’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모두 헐리고 달랑 한 채만 남았다. 경복궁 좌우로 마을이 보이는데, 오른쪽이 바로 ‘북촌’

이다. 한옥이 많은데, 이는 주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이다. 경복궁 왼쪽은 서촌이다. 현재는 빌라가 많이 들어서 있는데, 옛날엔 조선을 대표하는 실세 권력 가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불렀나이다. 군자는 만 년 동안 큰 복을 받으시리라.” - <시경詩經> 중에서


이 귀절에 나오는 큰 복이 바로 경복景福이다. 궁궐의 이름을 지을 때 이성계의 핵심 참모였던 정도전이 이 시에서 차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도전은 ‘왕이 나라를 잘 다스려 살맛 나는 세상’을 기원했으리라. 하지만 이름대로 조선은 살기 좋은 시대는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엔 경복궁의 건물 대부분이 사라지고 1926년 완공된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을 막고 있었다.


(사진, 조선총독부 청사)


광복 50주년을 맞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민족정기 회복을 내세워 중앙청(조선총독부 청사)건물을 1995년 8월 15일에 철거를 시작했다. 이듬해 완전히 철거되었으며, 지금까지 궁궐 건물들이 계속 복원되고 있다.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도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져야 하므로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도 보존해야 한다는 학계의 의견이 많다.


영제교永濟橋


광화문을 통과해 경복궁 뜰을 가로질러 제일 먼저 흥례문興禮門을 만난다. 이 문을 지나 영제교를 걷게 되는데, 책의 저자는 천천히 걸으면 눈에 들어오는 게 많아도 이를 추천한다. 그 이유는 여러 동물상을 볼 수 았어서다. 다리 양 기둥에 여의주를 움켜쥔 용龍이 있고 물길을 바라보는 4마리의 서수상瑞獸像이 보인다.


흔히 ‘천록天鹿(祿)’이라고 하는데, 갑옷처럼 튼튼한 껍질과 부리부리한 눈을 지녔으며 뿔까지 달려 언제라도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다. 중국 역사서 <후한서後漢書>에 이같은 상상의 동물이 실려있다고 한다. 서쪽 개울의 북쪽 동물은 혀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마치 메롱하는 듯해, ‘메롱해치’란 별명이 붙어 있다.


(사진, 메롱해치)


영제교 아래에 흐르는 물을 금천禁川이라 하는데, 이는 궁궐 안으로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풍수 사상이 반영되었으며, 이 물길을 지키는 네 마리의 상서로운 동물 또한 사악한 기운을 막겠다는 의도가 담긴 듯하다.


책은 이제 근정전(중요한 국가 의례가 이뤄지는 곳), 사정전(왕이 일상적으로 일하는 곳), 강녕전(왕이 일상업무를 마치고 퇴근해서 쉬는 사적인 공간), 교태전(왕비가 거주하는 곳), 자경전(대비가 살던 곳) 등 본격적인 정전政殿 소개와 함께 경회루(왕의 공식 잔치 장소)와 궐내각사(내의원, 홍문관, 승정원 등 궐 안에 있는 관청), 향원정(왕과 왕비가 노니는 사적 공간)과 건청궁(흥선대원군의 정치에서 벗어난 고종이 직접 정치할 나이가 되자 지은 궁)으로 이어지면서 책을 끝맺는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감상하자


경복궁은 매우 넓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모습과 자태가 달리 다가온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내리는 날은 더욱 더 그러하다. 봄의 경복궁은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여름은 궁궐 처마 끝의 빗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들리며, 가을엔 나뭇잎이 단풍으로 갈아입고 파란 하늘과 멋지게 어울려 사진 촬영 명소가 되고, 눈내린 겨울은 온통 하얗게 변하는 경복궁은 사계절마다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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